시읽는기쁨

장선리 / 양문규

샌. 2005. 12. 7. 11:38

마당 한가운데 너럭바위 있다

댓돌 위 검정 고무신 있다

마루 한쪽 맷돌 확독 있다

뒤뜰 크고 작은 독 있다

외양간 코뚜레한 소 있다

사랑채 흙벽 종다래끼 뒤웅박

키 호돌이 삼태기 있다

뒷간 똥장군 똥바가지 있다

정짓간 쇠솥 있다

조왕신 절구통 절굿공이 있다

헛간 벽 쇠스랑 갱이 갈쿠리 걸려 있다

도리깨 홀태

족답식 탈곡기 있다

쟁기 지게에 얹혀 있다

닭장 닭둥우리 있다

개울 나무다리 놓여 있다

뒷산 서낭당 있다

상엿집 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흑백사진 속의 풍경처럼

천태산 남고개 너머

더 깊은 골짝

장선리

 

- 장선리 / 양문규

 

30년 전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처음 읽었을 때 정보, 지식 혁명에 대한 개념들은 무척 낯설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제3의 물결이 단순한 물결이 아니라 쓰나미가 되어 우리를 덮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산업혁명과 크게 시차를 두지 않고 두 개의 쓰나미를 동시에 맞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세상의 변화는 엄청나게 컸다. 전통적 가치관이나 삶의 양식이 통째로 바뀌고 있다.

 

맷돌, 코뚜레, 종다래끼, 뒤웅박, 삼태기, 똥장군, 조왕신, 절구통.....

수천 년간 우리와 함께 했던 이런 도구들이 불과 백 년도 안되는 시기에 사라져갔다. 토지나 노동에 대한 개념도 변하고, 곧 전통적인 농촌은 없어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혁명의 와중에 살고 있는 증인이며 목격자인 셈이다. 또한 그만큼 가치관의 변화에 허둥댈 수밖에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사라져가는 것들, 새로 생겨나는 것들 가운데서 그래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사람 사이의 정이 아닐까 싶지만 그것 마저도 자본의 공세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화려해 보이는 세상의 변화나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열광하기 보다는 차분한 성찰이 지금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릴 때 내 꿈은 / 도종환  (2) 2005.12.16
성가족 / 임영조  (0) 2005.12.11
우리도 쿠바의 새들처럼 / 서정홍  (3) 2005.12.01
다시 남자를 위하여 / 문정희  (0) 2005.11.25
神은 망했다 / 이갑수  (0) 200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