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사람이 이리 기리워서 우에 사노

샌. 2008. 2. 8. 15:35



설날이 점점 쓸쓸해진다.

 

고향을 찾는 형제도 둘 뿐인데, 그나마 아이들이 커버리니 동생네는 두 부부만 참석했다. 그래서 올 설은 넷이서 차례를 지냈다. 더구나 올해는 여동생도 못 온다고 연락이 왔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그런 걸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할까. 자꾸 술을 찾으신다. 형제들이 우애있게 지내는 것보다 더한 효도는 없는 것 같다.

 

저녁에 이종사촌네가 북적거리며 찾아왔지만 반갑지가 않다. 사람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노는 것도 피곤하고 헛헛하다. 사람이 야속하기도 하고, 그만큼 나 자신이 밉기도 하다.

 

사람보다는 먼 산으로 들판으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드디어 고향에 계신 외할머니 연세가 100 세가 되셨다. 출생년도가 1909년이니 우리 나이로 올해 꼭 100 세가 되신다. 백수(百壽)를 한다는 말이 먼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외할머니가 그 시범을 가까이서 보여주시고 있다. 백수를 맞는어르신과 함께 하는 설날이 축하 자리가 되어야 할 텐데 아쉽게도 걱정과 한숨으로 집안 분위기는 우울하다. 치매로 인해 당사자 뿐만 아니라 옆에서 뒷바라지를 하는 어머니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머니의 연세도 벌써 일흔여덟, 할머니 대접을 받으며 지내셔야 할 텐데 도리어 혼자서 병든 노모를 부양하는 신세가 되어 있다. TV 인간시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우리 집에서 일어나고 있다.

 

외할머니의 치매 증상은 시도때도 없이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밤이면 잠을 주무시지 않고 사람을 찾는 통에 옆에 있는 사람은거의 잠을 설치게 된다.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밖을 내다보며 계속 누군가를 부른다. 딸도 손자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옆에 사람이 있어도 모른 채집 나간 그 누구를 한량없이 기다린다. 설날 밤에도 어머니와 나는 제대로 잠을 들지 못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게 더욱 답답한 노릇이다.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사람이 이리 기리워서 우에 사노."

 

외할머니는 논리에 맞지 않는 말들 사이에 이렇게 폐부를 찌르는 말을 하실 때도 있다. '사람이 이렇게 그리워서 어떻게 살아갈까' 라는 뜻이다. 강박관념처럼 외할머니에게 낙인 찍힌 그 그리움이란 과연 무엇일까? 외할머니의 일생을 돌아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그 한량 없는 그리움의 정체를 헤아릴 길이 없다. 그냥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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