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숭례문이 불타다

샌. 2008. 2. 12. 20:35



어제 숭례문이 불에 타 무너져 내렸다.

 

오늘 그 비극의 현장을 차를 타고 지나가며 차마 똑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내가 죄인이라도 되는 양 부끄럽고 참담했다. 어제 저녁에 가까이 다가가 본 동료는 그 처참한 모습에 절로 눈물이 흘러 내리더라고 했다.

 

어제 밤 12시 경에 잠꾸러기인 내가 왠일인지 잠에서 깨어났다. 무심코 TV를 켰다가 숭례문이 붉은 화염에 덮여 불타는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무너져 내리고 불이 꺼질 때까지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숭례문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히 지켜 볼 수 있었다. 임란과 호란, 6.25 전쟁을 거치면서도 600년 이상버텨온 건물이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해가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검거된 방화범은 토지보상에 불만을 가진 노인이었는데, 돈에 미쳐 날뛰는 우리 사회의 꼬락서니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숭례문은 자신을 소신공양하며 우리 사회를 고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도올 선생은 이렇게 외쳤다.

 

'웬 일일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문화재 관리 소홀을 탓하며 경비 예산이나 늘리는 호들갑일랑 이제 되풀이하지 말자! 근원적으로 문제되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죄악의 반성이요, 우리 사회의 신뢰의 부족이요, 이 민족 혼백의 타락이다. 세종대왕은 이 민족의 구원한 미래를 위해 우리 민족의 독창적 문자인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2년 후에 남대문을 신축하여 오가는 백성들에게 위용과 믿음을 주었다. 그런데 지금 새 정권은 기껏 생각한다 하는 것이 "영어몰입교육"이요, 회록지재(回祿之災)보다 더 무서운 재앙인 대운하 강행에 혈안이 되고 있다. 정부 기구 통폐합 운운도 어떤 합리적 원칙이나 철학이 엿보이지 않는다. 대선 전의 민생 공약은 실종되어 가고 있다. 과연 남대문의 흉측한 모습을 우발적 사건으로만 돌릴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숭례문이 불에 탄 날, 아내와 나는 경기도 광주에 가서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를 계약했다. 드디어 아내의 내 집 마련 소망이 이루어진 날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자중하면서 이날에 대해 자축과 애도의 건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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