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2008년 2월 남도여행

샌. 2008. 2. 19. 20:28

고향은 아니지만 ‘남도’라고 하면 뭔가 아련한 그리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작년에 이어 직장 동료들과 다시 남도로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순천과 여수 지역을 2박3일 일정으로 찾아보았다.


2월 16일 오전 9시, 일행 일곱 명은 전철 한남역에서 만나 렌트한 카니발에 올랐다. 원래 일정은 곧바로 선암사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누군가가 남원의 추어탕을 잘 하는 집을 안다고 해서 방향을 남원으로 돌렸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다보면 서로 생각이 다르다보니 이런저런 의견들이 나오는데, 어쩌면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데에 맛이 있는지 모른다. 극단적인 경우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발길 가는 데로 돌아다니는 걸음이 제대로 된 여행의 의미일 수도 있다. 하여튼 그렇게 찾아간 남원의 합리추어탕 집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주 맛이 있었다. 맛있는 점심을 하고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곡성을 지나다가 기차마을을 만나 다시 예정에 없이 걸음을 멈추었다.

 



기차마을은 전라선의 폐선을 이용하여 곡성에서 가정역까지 10 km 구간에 관광객들을 위한 증기기관차를 운행하고 있다. 실제 증기기관차는 아니고 겉모양만 흉내를 낸 디젤기관차이지만 김이 뿜어져 나오는 모양이나 기적소리는 옛날 증기기관차와 거의 다름이 없다. 곡성에서 가정역까지 왕복하는데 약 1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옆으로 섬진강을 끼고 덜컹거리며 달리다 보면 절로 옛 추억에 젖게 된다. 주변 경치도 좋고 또 기차마을에는 여러 종류의 기차뿐만 아니라 60년대의 옛 거리도 재현해 놓아 볼거리도 다양하다. 옛 추억 마케팅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사라지고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잠재되어 있다. 그런 향수를 자극하는 산업이야말로 앞으로 시대가 발전하면 할수록 유망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가며 섬진강 맞은편에 나있는 산책로가 인상적이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에 적당한 옛 오솔길 비슷했는데 저런 길들이 앞으로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저 길을 걸어서 섬진강을 오르내리고 싶어졌다.

 



순천만의 해넘이는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풍경 중의 하나였다. 다행히 이번에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었다. 순천만은 여수반도와 고흥반도로 둘러싸인 만으로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고, 갈대군락과 함께 주변의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특히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갯벌의 S자형 수로와 함께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우리 일행은 대대포구 선창에서 철새 탐사선을 타고 수로를 따라 바다까지 나갔다 왔다. 아쉽게도 철새를 보기가 어려웠는데, 이렇게 통통거리는 배와 모터보트가 수시로 다니니 철새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철새 탐사선이라는 이름이 역설적으로는 철새를 쫓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어 속으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작품에서 자주 보았던 용산전망대의 노을 풍경은 예상대로 황홀했다. 비록 작은 카메라였지만 셔터를 누르고 싶은 순간들이 연속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바의 감동을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으니 안타깝기만 했다. 해가 산 뒤로 넘어가자 사람들은 이내 철수를 하는데 사실 그 이후의 어스름이 더 분위기가 있다. 그 아쉬움은 돌아오면서 달래야만 했다.

 



저녁은 벌교의 외서댁식당에서 꼬막정식으로 했다. 어느 식당에 들어갈까 망설였는데 동료 중 한 사람이 자기는 낯선 동네에 가서 식사를 할 때는 약국에 들어가서 박카스를 사면서 맛집을 추천받는다고 했다. 외서댁식당도 그 방법을 써서 소개받았는데 역시 성공작이었다. 남도 음식이 맛있다는 얘기도 듣고 경험도 했지만 그 맛에는 늘 감탄을 하게 된다. 여행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먹을거리와 잠자리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불편해도 여행의 즐거움은 반감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행은 숙박이나 음식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는데도 모두들 아주 만족하였다.


숙소로 가는 길에 동료 H와 벌교의 저녁거리를 걸어서 갔다. 낯선 거리를 보면 나는 늘 걷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혼자서도 좋고,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면 함께 걸어도 좋다. 처음 와 본 벌교는 나에게 새로운 추억을 하나 더 선물해 주었다.

 



둘째 날은 벌교역 앞에 있는 역전식당에서 짱뚱어탕으로 아침을 먹고,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된 현장을 차례로 찾아보았다. 나는 예전에 읽었던 태백산맥의 내용을 대부분 잊어버렸는데 동료 중 한 사람은 기막히게 잘 기억하며 현장을 소설과 연관시켜 설명해 주었다. 철다리, 중도방죽, 현부자네 집, 소화네 집, 소화다리, 홍교를 차례로 들렀다. 그 중에서 보물 304호인 홍교(虹橋)가 가장 눈에 띄었다. 이 다리는 조선 영조 5년(1729)에 돌로 만든 무지개 다리인데,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홍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그런 역사성과 함께 이 다리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무척 빼어나 보였다. 현대적으로 복원한 부분과 비교해 보면 그런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보통 과거를 뒤떨어진 시대였다고 폄하하기가 쉬운데 그 때에는 작은 물건을 만들 때에도 혼과 정신이 들어있었다. 물건을 통해서 그 시대정신을 알 수가 있다고 오디오 취미를 가진 동료가 말해 주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낙안읍성 민속마을이었다. 처음 토성을 쌓은 것은 조선 태조 6년(1397) 왜구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서였고, 현재의 석성은 인조 4년(1626)에 임경업 장군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한다. 사적으로 지정된 이 마을은 현재 100여 세대가 실제로 생활하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성벽에서 바라보는 초가지붕의 마을 풍경이 정겹고 따스했다. 특히 오래된 나무들이 여럿 있어 나에게는 더욱 친근한 곳이다. 1년 전 이맘때에 여기를 들렀을 때 찍었던 나무 사진들이 날아가 버려 아쉬웠는데 이번에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일행 중 한 명이 서울로 돌아갈 일이 생겨 순천까지 나가 바래다주고 우리는 주암호를 거쳐 송광사로 갔다. 똑같은 물이지만 강과 호수와 바다는 서로 분위기가 판이하다. 강은 한 방향으로 쉼 없이 흐르는 물이고, 바다는 끝없이 밀려오고가는 반복운동을 하는데, 호수는 움직임이 없는 물이다. 그래서 호수에 서면 마음도 따라서 차분하고 고요해진다. 넓은 주암호는 주변 산세와 어우러진 풍경이 뭔가 고요하면서도 어떤 서러움을 새기고 있는 듯했다. 어느 전라도 시골 마을에서 바라보는 주암호의 심상이 그러했다.

 



송광사(松廣寺)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로 승보사찰(僧寶寺刹)에 해당되는 큰 절이다. 지눌, 진각을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요일이어선지 관광버스를 타고 온 단체 순례객들로 가득해서 조용한 절집의 분위기를 느끼지 못해 아쉬웠다. 절의 건물들도 크면서 밀집해 있어 조금 답답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계절이나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송광사를 보고 돌산도의 향일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해졌다. 임포항의 깔끔해 보이는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라는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러나 저녁이 지나면서 갑자기 몸과 마음이 다운되어 버려서 일행과 떨어져 혼자 쉬어야만 했다. 몸도 피곤했고 마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사람의 소음이었다. 이럴 때 나로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며칠간의 단체여행은 내 체질로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체력적인 면도 있지만 그보다도 정신적으로 워낙 개인적이고 홀로 있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날은 일출을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일행은 향일암으로 올라가고 나는 몸을 핑계대고 남아서 모텔 옆 공터로 나가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만났다. 거기에는 역시 일출을 보러온 한 가족이 외에는 사람이 없어 조용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향일암에 올라갔을 것이다. 나는 어떤 유명세를 타며 북적대는 장소보다는 알려지지 않았어도 호젓한 곳이 더 낫다. 그리고 혼자였던 덕분에 자유롭게 마을 골목길도 걷고 부두에 나가 임포항의 아침 풍경을 볼 수도 있었다.

 




속을 비우는 게 나을 것 같아 동료들이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미리 향일암로를 따라 걸었다. 오른쪽으로 남해 바다를 낀 그 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공기는 맑고 상쾌했으며 꼬불꼬불한 길이며 주변 풍광은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이 아침의 산책길이었다. 동료들 식사 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향일암에서 방죽포해수욕장까지 걸을 수 있었다. 차로 뒤따라온 동료들이 언제 이렇게 많이 걸을 수 있었느냐며 놀라워했다. 사실 사람의 걸음이 작은 한 보폭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모이면 엄청난 거리가 된다. 아무래도 나는 앞으로 걷기 중심의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여수로 나가는 길에 돌산대교 전망대에서 여수 시내를 구경했다. 시내를 통과할 때와는 달리 멀리서 보는 여수는 깔끔하고 흰색 톤의 건물들이 바닷가 도시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바로 발아래 전망 좋은 위치에 아담한 집 한 채가 있었는데 저런 데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잠시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

 



여수 시내에 있는 진남관에 들렀다. 진남관(鎭南館)은 1599년,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였던 이시언이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진해루 터에 세운 75칸 규모의 큰 객사 건물이다. 길이가 50 m나 되는 건물의 규모가 웅장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선암사(仙巖寺)에 들렀다. 원래 일정으로는 첫날에 잡혀 있었으나 계획 변경으로 끝날에 찾게 되었다. 같은 조계산 언저리에 있는 절이지만 어제 들렀던 송광사와 여러 점에서 대비가 되었다. 내 짧은 식견으로는 선암사 쪽에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절집의 분위기도 그렇고,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서도 그렇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데 지금은 태고종의 본찰인 청정도장이다.

 



절 입구에 있는 승선교(昇仙橋)는 특히 유명하다. 이 다리는 보물 400호로 조선시대에 화강암으로 만든 아치형 석교다. 전체적으로 견고하고 웅장하며, 반원형의 다리는 계곡의 물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이 다리를 보면 인공미와 자연미의 절묘한 조화를 느끼게 된다. 이번 여행에서 벌교의 홍교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두 무지개다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승선교에는 아치형 꼭대기에 남성의 심볼처럼 튀어나온 돌조각이 인상적이다. 용머리라고 부른다는데 그것이 건축학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무척 궁금하다.

 



선암사 들어가는 길머리에 있는 진일기사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주 메뉴가 6천 원 하는 백반인데 역시 소문대로 무척 맛이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반찬이 푸짐해 아무리 먹어도 반 이상이 남는다는 것이었다. 그대로 남기기가 안타까울 정도로 음식이 아주 맛났다. 선암사는 봄에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절이다. 그리고 진일기사식당의 음식 맛 또한 마찬가지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이란 결국 자기 자신으로 회향하는 길이다. 몸은 밖을 향해 떠돌지만 낯선 풍경과 사람들을 통해 마음은 내면으로 향한다. 일상을 벗어난 경험들이 자신을 보는 거울이 되는 셈이다. 나 또한 이번 여행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좀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한없이 부족하고 모자라는 내 모습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좀더 넉넉해져가는 내가 되어보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한 길이만큼 내 자신이 내면적으로 성장한 것 같은 느낌도 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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