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형제들이 모여 김장을 했다.
어머니로서는 한 해 농사의 마무리이고,형제들로서는모여서 얼굴 맞대고 같은 음식을 만드는 연례행사이다. 같이 음식을 먹는 행위, 또한 같이 음식을 만드는 행위는 가족이라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장이 된다. 가족이란 한 상에서 같이 음식을 먹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형제들이 모여 어머니와 함께 김장을 담그는 것에는 단순한 만남 이상의 의미가 들어있다. 아마 이것도 어머니라는 구심점이 계시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특별히 우애 있는 집안이 아니라면 요사이 같은 세태에 형제들이 김장을 하기 위해 모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는 삼형제에 대구 이모네도 같이 김장을 담궜다. 어머니와 이모가 미리 미리 배추를 다 절여 놓았고, 우리는 내려가 속을 버무리기만 하면 되었다. 각자의 몫은 스스로가 책임지고 했다. 그래도 같은 배추에 같은 양념을 쓴 김치니까 한 해 동안 이 김치를 먹으면서 우리는 같은 가족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같이 모여서 음식을 만드는 것, 그리고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긴 시간 동안 고향길을 오가는 피로를 상쇄하고도 충분히 남는다.
이번에 나는 배추를 날라주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손을 거들었다. 밖에서 들으니 김장을 하는 방 안에서는 연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동생의 넋살 좋은 말투며, 자꾸만 술을 권하는 매제의 큰소리가 더욱 정겹게 들렸다. 그러나 왠지 자꾸만 느껴지는 허전함 또한 숨길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마당의 세숫대야에 담긴 물이 하얗게 얼었다. 벌써 겨울이 다가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