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휴가 사흘째, 오늘은 서울대공원에서 가을 정취에 푹 빠졌다.
서울대공원 길에 익숙한 아내가 안내인이 되어 대공원의 낙엽길과 산림욕장의 숲길을 한 바퀴 돌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비 속에서, 사르릉거리며 바닥을 굴러가는 낙엽들의 귀여운 모습들과 함께 한 고맙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낙엽은 나에게 살아 있는
고마움을 새롭게 해주고
주어진 시간들을 얼마나 알뜰하게
써야할지 깨우쳐 준다
낙엽은 나에게 죽음을 예비하며 살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이승의 큰 가지 끝에서
내가 한 장 낙엽으로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일까 헤아려보게 한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내 사랑의 나무에서
날마다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좀 더 의식하고 살아야겠다
- 낙엽 / 이해인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 가을 / 김용택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 가을에는 / 최영미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그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 한 말
못다 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 잎 두 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 사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 가을노트 / 문정희
낙엽 하나 떨어지면
온 세상에 가을이 오듯
목숨 하나 떨구고
온 세상에 사랑이 오게 하는
그를 따라 사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 나라를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올바르게 사는 일을 가르치기 위하여
올바르게 죽는 일을 가르치는
그를 따라서 사는 자는 행복하여라
밤마다 둥근잎 느티나무 아래 앉아
별들의 종소리를 들으며
눈물이 강물이 되도록 기도하는
사랑의 계절을 이 땅에 오게 하는
그를 따라 사는 자는 아름다워라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언제나 눈물 너머로 보이는 이여
끝끝내 인간의 사막을 걸어간
걸어서 하늘까지 다다른 이여
그를 따라 사는 자는 아름다워라
- 가을에 당신에게 / 정호승
가을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다 아름답다. 대공원에서 산림욕장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만난 조절저수지에도 한껏 가을물이 들어있었다.
이 길을 지나며 아내는 아름다운 영정사진을 찍어야겠다며 여러 번 셀프로 사진을 찍었다. 가을과 낙엽은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연상시키게 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가을 속에서 생각하는 죽음은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다. 우리의 마지막도 저 낙엽처럼 곱고 아름다울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꼭 그렇게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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