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창덕궁의 가을

샌. 2007. 11. 8. 18:49



'창덕궁은 동아시아 궁궐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인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한 점에서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 글은 창덕궁을 설명하는 팸플릿의 맨처음에 나오는내용이다. 창덕궁에 들어갈 때마다 그런 점에서 무척 고맙게 생각된다. 틀에 박힌 정형적인 궁궐이 아니라 주변 자연환경과 잘 조화를 이룬, 인공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궁궐이라는 점에서창덕궁은 늘 신선한 느낌을 준다.

 

창덕궁의 가을을 보고 싶어하는 아내를 위해 자유관람일을 택해 함께 창덕궁 나들이를 했다. 아내는 창덕궁이 첫걸음이었고, 나는 그동안 안내인을 따라 했던 관람에서 보지 못했던 천연기념물 나무들을 만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아내는 음성 안내기를 빌려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돈화문을 지나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만나는 건물이 창덕궁의 주건물인 인정전(仁政殿)이다. 인정전은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왕의 공식적인 행사를 거행하던 곳이다. 창덕궁은 태종 5년(1405)에 지어진 두 번째 궁궐로,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모든 궁궐이 불탄 후 경복궁은 400년 가까이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으나 창덕궁은 곧바로 재건되어 가장 오랫동안 조선의 으뜸 궁궐로 사용되었다.

 

곧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탓인지 인정전을 바라보며 '인정(仁政)'의 의미에 대해 잠시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仁政'이란 사람을 가치의 최우선으로 삼는정치가 아닐까. 누구나 슬로건은 사람 중심을 내세우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본이나 경제에 종속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仁政'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원의 부용지(芙蓉沚)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이곳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에 의해 만들어진 연못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각형의 연못은 땅을 의미하며, 가운데 둥근 섬을 하늘을 상징한다.

 



 

부용지를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애련지(愛蓮沚).

 

창덕궁은 아직 단풍의 절정기가 아닌데, 지금으로서는 이 부근 단풍이 제일 아름다웠다.

 



애련지를 지나면 세 번째 연못인 관람지가 나온다. 여기는 작은 정자들이 연못 둘레로 예쁘게 배치되어 있다. 정자가 결코 주변 환경을 거스리지 않으면서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한 눈에도 알 수 있다.

 



 

관람지 부근의 단풍나무와 숲길

 



옥류천(玉流川)은 후원의 가장 북쪽에 있는 개울이다.

 

임금이 신하와 더불어 여가 시간을 즐긴 곳으로 다섯 개의 정자가 있다.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이라는 글씨는 인조가 쓴 것이라고 한다.

 



후원안의 숲길.

 

내 눈에는 궁궐보다도 숲의 가치가 더 크게 보인다. 창덕궁은 이렇든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는 우리 선조들의 마음이 읽혀져 참 좋다. 궁궐의 뒷동산을 없애고 아무리 으리으리한 건물을 세워놓았다 한들 지금과 같은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살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창덕궁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네 시간 정도 걸렸다.

 

목요일의 자유관람이 좋은 점은 이렇게 내 마음대로 돌아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날은 안내인을 따라 정해진 코스로만 다녀야 하므로 아쉬움이 컸다. 다만 목요일의 입장료는 150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모르고 찾아온 사람은 비싼 입장료 때문에 그냥 돌아가기도 한다.

 

창덕궁의 가을은 아마 다음 주말이 되어야 절정이 될 것 같다. 그때면 후원으로 가는 길은 진홍의 단풍 터널로 온통 붉게 물들 것이다.

 

올 가을은 그동안 못 다닌 한풀이라도 하듯 참 많이도 쏘다니고 있다. 마음은 지금도 밖을 향하고 있지만 나이가 드니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바깥 나들이에 제한을 받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 또한 자연의 이치이니 고맙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많고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안으로 소박하게 내실을 다지라는사인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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