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인왕산과 안산 주변의 문화 답사

샌. 2007. 11. 4. 09:34

날 좋은 토요일 오후, 동료들과 인왕산과 안산을 등산하며 그주변의 문화 유적지를 둘러보는 답사길에 나섰다. 참가 인원은 13명, 근래에 드물게 많이 모였다. 이번에는 무속 방면에서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는 S선생님이 안내를 했다.

 

직장에서 인왕산 입구인 자하문 고개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이다. 자하문 고개에서 인왕산에 오르는 골목길에 들어서면 바로 현진건 집터가 나온다.

 



현진건(1900-1943)은 근대문학 초기 단편소설의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소설가이다. 그분의 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빈곤한 삶을 살았고, 동아일보 기자였을 당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에 관계되어 옥고를 치른 사실 등 올곧은 삶을 사셨다는 것을 이번에 새로 알게 되었다.

 

그분이살았던 집은 지금 공터로 남아 풀들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현진건은 이곳에서 요양하며 지내다가 아깝게도 43세의 나이에 장결핵으로 세상을 떴다.

 



현진건 집터 옆에는 무계정사(武溪精舍) 터가 있다. 무계정사는 안평대군이 정치상황의 혼잡함을 피해 풍류를 즐기며 살던 별장이었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무릉도원을 찾다가 이곳에 당도하여 꿈에서 본 그곳이라 여기고 정자를 세워 글을 읽고 활을 쏘며 심신을 단련하였다 한다.

 

안평대군은 단종 즉위 후 이곳에서 사병을 모으고 군사훈련도 시켰다고 하니 정치적 야심이 없지도 않았던 것 같다.바위에 적혀 있는 '武溪洞'이라는 글씨가 당시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기차바위에서 보이는 인왕산 주봉과 안산. 저 두 봉우리를 넘으며 우리의 걸음은 계속된다.

 



시선을 아래로 하면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정도 높이에서도 청와대와 경복궁이 마치 미니어쳐처럼 작고 귀엽게 보인다.

 

경복궁의 주산은 북악산이고, 좌청룡에 해당되는 곳이 낙산, 우백호가 인왕산이다. 인왕산에 올라보니 좌청룡의 지형이 좀 빈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왕산 서편 중턱에 국사당(國師堂)이 있다. 국사당은우리나라의무속신앙을 대표하는 곳이다. 원래 남산에 있었으나 일제가 조선신궁을 세우기 위해 1925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무당들이 굿을 한다는데 우리의 전통 무속신앙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듯 건물은 작고 초라하다.

 



국사당 뒤에 있는 선바위[禪岩]은 부인들이 이 바위에서 아이 갖기를 기원하는 기자암(祈子岩)으로 유명했다. 선바위라는 이름은 바위 모습이 마치 두 스님이 장삼을 입고 참선하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는데,국사당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선바위는 무속신앙의 대상으로 되었다.

 

한양 도성을 쌓을 때, 무학대사는 선바위를 도성 안에 포함시키자고 했고, 정도전은 성 밖에 두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에서불교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와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성계는 정도전의 말을 따르라고 했는데, 이에 무학대사가 탄식하며 "이제부터 승도들은 선비들의 책 보따리나 지고 따라 다닐 것이다"며 탄식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선바위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재미있게 생긴 바위가 있다. 이름이 해골바위다. 묘하게 바위의 특정 부분에만 침식작용이 일어나 구멍이 뚫려 있다. 인왕산에는 이런 희한하게 생긴 바위들이 많다.

 




조금 더 내려오면 미륵기도도량이라고 이름 붙인 기도처가 있는데 암벽에 미륵불상이 새겨져 있다. 푸근한 인상, 큰 귀, 볼록 나온 배가 인상적인 불상이다.불상의 코는 깎여서 반 쯤 없어졌다. 이것도 아들을 낳기 위한 여인들의 고통이 남긴 흔적일 것이다.

 

인왕산은 작은 산이지만 이것저것 찾아다니며 보느라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렸다. 발걸을 재촉하며 무악재를 건너 안산으로 넘어갔다.

 



안산을 오르는 길에서 만난 남근석(男根石).

 



안산 꼭대기에서 본 서울의 중심부. 서울 시내의 조망지로서는 인왕산과 안산이 최고가 아닌가 싶다.

 



안산 정상부에는 또 하나의 기자암이 있다. 아들을 못 낳은 여인은 거북처럼 생긴 저 바위 끝에 걸터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밑은 천길 낭떠러지인데 잘못 했다가는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다.뒤에 있는 사람들이 여인의 허리를 천으로 묶고 잡아주고 있었다지만, 조선시대 여인의 잔혹사가 아닐 수 없다.

 

요사이 유행하는 우스개소리가 딸을 둔 사람은 금메달, 아들만둔 사람은 '목 매달'이라는데 세상이 참 많이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안산을 내려가는 숲길의 단풍이 무척 예뻤다.

 



 

안산 밑자락에는 태고종의 본찰인 봉원사(奉元寺)가 있다. 대원군의 별장을 옮겼다는 이 건물은 고풍스럽고 아담했지만, 신축한 건물들은 너무 크고 웅장해 뒷산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건물 안에 '靑蓮詩境'이라는 추사의 글씨가 있는데, 그래선지 마당에는 연을 많이 기르고 있다. 수련 몇 송이는 늦은 철이건만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다.

 



답사의 끝은 윤동주를 만나러 연세대학교 캠퍼스로 들어섰다. 윤동주 시비 뒷편에 보이는 건물이 1922년에 건축된 핀슨 홀(Pinson Hall)이다. 당시에는 학생들 기숙사로 사용되었다는데, 윤동주도 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사색하고 고민하며 시를 썼다고 한다.

 

인왕산과 안산 주변에 이렇게 의미 있는 볼거리가 있는 줄은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등산을 하면서 역사의 흔적을 함께 만나본 오늘의 시간이 나에게는 무척 흥미있고 유익한 경험이 되었다. 이번에 만난 것도 일부분에 불과하겠지만, 서울이 품고 있는 속내용은 관심을 갖는 정도에 따라 드러난다고 본다. 그것은 모든 사물에 마찬가지일 것이다.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만큼, 보게 되고 알게 된다는 것을.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덕궁의 가을  (0) 2007.11.08
가을에 들린 두물머리와 수종사  (0) 2007.11.07
건청궁이 복원되다  (0) 2007.11.03
KTX를 타다  (0) 2007.11.02
청량산의 단풍  (0) 2007.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