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청량산의 단풍

샌. 2007. 10. 30. 15:47

가을을 따라 청량산으로 단풍 여행을 다녀왔다.

아내와 동행한 2박3일의 여정이었는데, 일정을 무리하게 잡은 탓이었는지 막바지에는 체력이 달려서 무척 힘이 들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달라지지 않건만, 몸은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청량산은 가을이 한창 무르익어 가을빛이 온 산을 물들였다. 가을 단풍하면 설악산만 찾아가곤 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는 비경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청량산 역시 한 구비를 돌며 시야가 열릴 때마다 탄성이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이번 여행에서는 청량산 속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첫째 날[-온달산성-마구령-부석사-]


중부고속도로 일죽IC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달렸다. 서울을 빠져나오는데 1시간여의 정체가 있었다. 먼저 도착한 곳은 단양의 온달산성이었다. 산성 입구에는 드라마 ‘연개소문’의 촬영 세트장이 있었는데, 이미 드라마는 끝났지만 건물은 관광객 유치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하고 산성에 올랐다.

 



온달산성은 길이 680m 정도의 소규모 산성으로 삼국의 영토 확장이 치열했던 시대에 고구려 온달장군이 신라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라고 한다. 이런 외진 곳에 왜 산성이 필요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으나 성에 올라보니 이곳이 교통의 요충지였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수로의 중요성이 컸던 옛날에는 더했을 것이다.


산성에 다녀오는 데는 1시간여가 걸렸다. 그리고 산성은 예상보다 규모가 작았다. 새로 축조한 성곽은 모양이 너무 단정해서 옛 성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베틀재를 넘어 의풍을 거쳐 마구령으로 향하는 길은 문명의 침입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길은 군데군데 확장 및 포장공사를 하고 있었고, 특히 베틀재는 완전히 길을 새로 만드는 대공사중이었다. 언제나 오지 마을로 남아있으라는 요구를 할 수는 없으나, 뭔가 옛 정취가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허전하다. 이 오지 마을도 이제 아스팔트길을 따라 몰려오는 도시 사람들의 세례를 받을 것이다. 마구령 입구가 남대리라는 마을이다. 마구령은 같은 부석면이지만 남대리와 부석사 쪽을 연결하는 길이 7km 가량 되는 고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통행했고, 따라서 남대리에는 주막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마구령은 차량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폭이 좁은 길이 숲 사이로 나있다. 특히 남대리 쪽 계곡을 따라 난 길은 단풍이 고왔다. 소백산맥을 넘는 길이 죽령, 고치령, 마구령이었는데, 마구령은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마구령의 길이가 가장 짧아, 시간 여유만 있다면 걸어서 넘어보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되는 길이다. 아마 넉넉잡아 세 시간이면 될 것 같다.


다시 부석사에 들렀다. 옆의 동료는 부석사를 엄청 좋아하는데 내 눈에는 아직 부석사의 아름다움이 들어오지 않는다. 부석사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찬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실제로 느껴보고 싶지만 번번이 실망만 했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부석사가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절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절을 찾아온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 고즈넉한 절집의 저녁 분위기를 느껴보려던 기대는 입구에서부터 깨져 버렸다. 안양루에서의 조망도 사람들 어깨를 부딪치며 봐야하니 감흥이 생길 리가 없었다. 이번에도 도망하듯 부석사를 빠져 나왔다.

 



봉화를 지나다가 봉성에서 돼지구이로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작은 마을은 식당이 온통 돼지구이집이었다. 마을이 돼지 굽은 연기와 냄새로 덮여 있었다. 연기가 배인 고소한 고기 맛 탓에 과식을 했다.


숙소를 구하지 못해 시골 마을 허름한 여관에서 일박을 했다.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는 옆방 사람들 소리에 잠을 설쳤다.


둘째 날[-청량산-불영사-덕구온천]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자욱했다. 간단히 세수만 하고 일찍 청량산 입구에 도착했으나 식사가 준비되지 않아 슈퍼에서 컵라면으로 요기를 했다. 그리고 점심으로는 햇반을 사가지고 배낭에 넣었다.


청량산은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기암 봉우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단풍의 물결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퇴계가 공부했고 평생을 두고 사랑했다던 산, 수많은 영남의 문인들이 찬탄했다는 그 산의 명성이 전혀 빈말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산행 코스는 선학정-청량정사-자소봉-탁필봉-청량사-입석이었다.

 







 

호젓했던 산행길이 청량사에 내려오니 등산객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 아래로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는 이른 아침에 산을 오른 탓에 조용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청량사의 예술적이며 단아한 분위기도 무척 좋았다. 곱게 빗질하듯 쓸어놓은 마당하며 작은 텃밭을 가꿔놓은 모양새까지 스님들의 정성어린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절 마당에서는 마침 주지스님이신 지현 스님께서 자신의 저서인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도 길은 있다’에 사인을 해주시고 계셨다. 이런 절 분위기는 스님의 영향이 아니었는가 싶다.

 



불영사를 거쳐 덕구온천에서 여장을 풀었다. 몸이 천근같이 무거웠다.


셋째 날[-동활계곡-만항재-]


피로가 쌓이니 짜증이 생기는가, 작은 일에도 아내와 다투었다. 더구나 아내가 집 열쇠를 잃어버려 더욱 낭패가 되었다. 돌아가는 길에 들린 바닷가에서도 아내는 차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동활계곡의 멋진 단풍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자동차가 올라가는 가장 높은 길이라는 1300여 m 높이의 만항재는 벌써 겨울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김삿갓 유적지에 들러보기로 했으나 둘 다 심신이 피곤해 취소했다.


여행이 꼭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티격태격은 젊은이들만 하는 것도 아니다. 속속들이 잘 아는 부부관계에서 도리어 작은 일로 도리 없이 서운해지고 야속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또 안쓰러운 연민을 느끼게 되고, 사는 것이 그런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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