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KTX를 타다

샌. 2007. 11. 2. 09:43



동료의 모친상 문상을 위해 대구에 다녀오는 길에 KTX를 이용했다. 개통된지 3년이 넘었지만 실제 타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 KTX를 건설한다고 했을 때 나로서는 마땅찮았다. 좁은 나라에서 굳이 고속열차가 필요한지, 그리고 빠른 속도로 상징되는 문명의 질주에 심리적으로왠지 거부감이 생겼던 탓이었다. 천성산을 둘러싼 환경 파괴 논란도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고속열차 시대는 이제 현실이 되었다. 서울역으로 나가며 시속 300km의 속도감이 어떠한지, 그리고 열차 내의 분위기가 어떨지 무척 궁금했다.

열차는 예상 외로 조용했고, 좌석도 편안했다. 예전 기차에서 규칙적으로 들렸던 덜커덕거리는 소음도 없었고, 시속 300km에서 오는 속도감도 거의 느끼질 못했다. 모니터의 속도 표시가 없었다면 얼마만큼 빠른지를 전혀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새로 지은 역사들의 공항 같은 분위기, 현대적 시설의 열차, 그리고 풍요롭게 보이는 전원 풍경들은 우리가 물질적으로 얼마만큼 발전해 나가고 있는지를확연히 느끼게 해 주었다.

다만 열차 내의 분위기가 너무나 조용해서 대화를 나누는 데도 아주 조심스러웠다. 나중에는 앞 사람의 눈치가 보여 입을 다물어야 했다. 사람들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있거나, 노트북을 꺼내놓고 일을 하거나, 책이나 신문을 보는 등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맥주잔을 주고받으면서 시끌하게 떠들며 여행을 하던 예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사람 몸이 시속 300km에 이르는 속도에 쉽게 적응되기는 어려울 것이다.고속 상황이 사람을 심리적 긴장 상태로 모는 것은 아닌지, 혹은 감정의 다운 상태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너무나 조용히 있는 승객들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고속열차야말로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침없는 질주의 속도가 그렇고, 편리함과 안락이 있지만 삶의 여유나 사람 사이의 인정을 느끼기 어려운 점이 그렇다.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탄 뒷자리의 젊은 아낙은 보채는 아이 때문에 계속 들락거려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아낙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객차 안 분위기가 나에게는 무척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원자화한 인간, 지나치게 기계에 의존적이 된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동대구까지 1시간 40분이 걸렸는데, 역에 내리니 이렇게 빨리 올 수 있다는 사실이 마치 축지술이라도 써서 이동한 것처럼 신기했다. 문명의 발달에 감탄하게 되다가도 현실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만난다. 세상 참 좋아졌구나 하는 감탄 가운데서도 왠지 소중한 무언가를 두고 나온 것 같은허전한심정은 감출 수가 없었다. 역사를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음은 나 혼자만의 과민반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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