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고추장 항아리

샌. 2010. 1. 18. 13:51

고향집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고향에 내려가서 50년이 넘은 고추장 항아리 얘기를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었다. 장독대에는 그 외에도 수 대째 내려온 100년이 넘은 큰 독도 있었다. 사소해 보이는 항아리들이지만 애환이 깃든 사연을 알고 나니 그냥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알고 나면 별 볼 일 없거나 하찮은 물건이란 없는 법이다.


어머니는 열여섯에 시집 오셨다. 시집은 제대로 된 솥이나 그릇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이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면사무소에 나가시게 되면서 형편이 조금씩 나아졌지만 전에는 끼니를 때우지 못할 정도로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 어느 때는 식량이 떨어져서 온 식구가 물만 먹으며 사흘을 누워있기만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견디다 못해 아버지가 친척집으로 양식을 구걸해 와서 버텼다는 것이다. 모두들 어려웠던 그때 우애 좋은 집안 얘기는 동화책에나 나올 수 있는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다니시고 돈이 없어 더 공부를 못하셨다. 그런 경험들이 합해져서 새끼들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그렇게 죽자사자 일할 수밖에 없었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어렸을 때는 너무 일만 하시는 부모님이 불만이었다. 서울에서 유학할 때 방학이 되어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가면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이 깜깜했다. 부모님은 그 시간까지도 들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솔직히 그때는 고마움보다도 야속한 느낌이 더 했다. 부모님은 일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조금씩 재산을 불려 나가셨고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셨다.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 다섯을 전부 서울에 보내 공부시키셨으니 그 고생이 어떠하셨을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시집 온 초기에 겨우 호구를 연명할 정도의 살림이었으니 양식은 물론이고 다른 부식이나 반찬도 늘 부족했던 것 같다. 50년대 초반의 어느 해인가는 고추장이 없어서 친정에 부탁하고 중간에서 받기로 했다고 한다. 집에서 친정인 예천까지는 걸어서 꼬박 하루가 걸리는 거리였다. 어머니가 약속된 장소에 나가니 외할머니와 이모가 고추장 항아리를 번갈아 이고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고 한다. 지금은 할머니가 된 이모지만 그때는 십대의 처녀였을 것이다. 구체적인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아마 모녀와 자매간에 눈물의 해후를 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싸가지고 온 점심을 함께 먹은 뒤 이내 헤어져야만 했을 것이다. 요사이 같으면 친정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올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는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친정집 사람들과는 약속된 곳에서 잠시 만나 정회를 나누는 게 보통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도 어쩌면 고추장을 핑계로 만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와 동생을 이별하고 홀로 돌아오는 길이니 고추장이 가득 담긴 항아리가 더 무거웠을 것은 충분히 짐작이 된다.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 항아리를 내려놓기가 어려워 계속 이고 오느라고 고개가 끊어지듯 아팠다고 한다. 어머니의 기억에는 돌아오던 길의 힘들었던 일이 가장 남아있는 것 같다. 그것이 꼭 몸의 고통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난한 집과 고단한 시집살이, 그리고 친정 식구들과의 짧은 만남이 복합적으로 얽힌 감정을 단지 유추해 볼 뿐이다. 그때 내 나이가 두 살이었다고 하니 어머니는 2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더라도 그 나이의 어머니를 상상하기는 난해하기만 하다. 더구나 짧고 담담하게 설명하는 말 몇 마디로 당시 어머니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사진의 항아리가 50여 년 전의 그 항아리다. 지금도 마당 한편 장독대에 놓여 있다. 한쪽 손잡이는 떨어져 나간 채 눈비를 맞으며 말없이 있다. 나는 가만히 항아리를 쓰다듬어 본다. 그 옛날 외할머니는 시집 간 딸을 생각하며 이 항아리를 곱게 닦고 고추장을 담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손에 넘겨져 낯선 땅으로 옮겨졌다. 어머니 또한 이 항아리를 볼 때마다 외할머니를 추억하시지 않았을까. 나 또한 이 항아리를 보면서 그런 사연들을 아련히 연상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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