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샌. 2009. 12. 7. 10:00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똥은 귀하게 대접받았다. 벌거숭이 아이들이 골목에다 똥을 누면 일차적으로 개들의 먹이가 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지나는 어른들이 삽으로 떠다 거름에다 던져 넣었다. 오죽했으면 다른 집에 가더라도 똥은 내 집에 와서 누라는 말이 있었겠는가. 똥은 거름으로 되어 땅을 살찌우고 영양가 있는 먹을거리를 생산한다. 사람은 그 먹을거리를 먹고 다시 똥을 눈다. 옛날에는 그렇게 생태적으로 완벽한 순환계가 이루어졌다. 쓰레기나 폐기물이란 있을 수 없었다. 똥이 처치 곤란한 혐오물이 된 것은 도시가 발달하면서부터였다. 거리에 쌓이는 똥 때문에 하이힐이 생기고 향수가 생겼다는 설도 있으니 말이다. 결국 수세식 화장실이 발명되었지만 정화조와 하수처리장을 거치면서 소비되는 어마어마한 물과 환경오염을 생각하면 지금의 방법은 하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작고하신 권정생 선생은 예수가 다시 오신다면 십자가 대신 똥짐을 지실 것이라고 했다.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똥은 땅을 살리고, 땅은 사람을 살린다. 자연계 전체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때 사람의 참생명도 살아난다. 다른 말로 하면 똥을 모실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똥을 푸대접하는 문명은 결코 건강하다 할 수 없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한때 똥에 관련된 꿈을 자주 꾼 적이 있었다. 꿈만 꿨다 하면 비슷한 똥꿈이 무려 몇 년간 계속되었다. 볼일 보러 화장실에 간다. 대개가 공중화장실이다. 문을 열면 변기에 똥이 가득하고 넘쳐난 오물로 발 디딜 자리도 없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결국은 똥 구경만 실컷 하고 나온다. 이런 패턴의 꿈이 밤이면 끈질기게 나타났다. 꿈을 깨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에게 무슨 욕구불만이 있는지 스스로 심리분석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똥꿈은 길몽이라는 말도 있어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어떤 사람은 똥이 재물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때 복권이나 사 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둘째가 어렸을 때 방에서 놀던 아이가 조용히 있어 혼자서 잘 노나 싶어서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방에 들어가 보니 웬걸 아이는 똥을 눠놓고는 똥을 가지고 노느라 온 몸이 똥칠이 되어 있었다. 얼굴도 온통 똥 범벅이 되어 있었다. 상상하지도 못한 장면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아마 그때 찍어둔 사진이 앨범에 남아있을 것이다. 똥이 정말로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이라면 아이가 천연덕스럽게 만지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엄마들에게도 자신의 아기가 눈 똥이 더럽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똥보다는 도리어 어른들의 기호식품인 술이나 담배가 아이에게는 치명적이다. 똥이 놀이도구도 될 수 있음을 그때 아이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안도현 시인은 ‘대변을 똥이라고 부르는 것이 시’라고 시를 정의했다. 잘난 체, 고매한 채, 품위 있는 체하는 이들은 절대로 ‘똥’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목소리를 낮추어 ‘대변’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눈짓이나 손짓으로 그 말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들은 똥을 똥이라고 시원스레 말한다. 똥은 똥물, 똥짐, 똥보, 똥줄, 똥구멍, 똥자루 등으로 말을 새끼 치면서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 별명이 ‘똥자루’였다. ‘똥’이 삶의 실체적 진실이라면 ‘대변’은 가식의 언어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래서 똥을 똥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사람은 만나면 절로 친근감이 든다. 적어도 두꺼운 가면을 쓴 사람 같지는 않다.


이번 달 ‘과학 동아’에 ‘똥’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우리의 친구 ‘똥’의 얘기를 들어보자.


이름

대변. 일명 ‘똥’


외모

키는 때에 따라 다르고 몸무게는 100-200g 정도. 잘 빠진 몸매에 비해 얼굴은 ‘대략난감’하다.


사는 곳

사람 몸속 대장 안. 곧 출가 예정.


취미

여행. 입에서 항문까지 9m나 되는 먼 길을 남자 몸에서는 50시간, 여자 몸에서는 57시간 동안 이동한다. 바깥세상으로 나가면 빙글빙글 물 미끄럼틀을 탈 수 있다는 말에 잔뜩 기대하고 있다.


특기

사람 불쾌하게 만들기. 사람들은 나만 보면 코를 쥐고 눈살을 찌푸린다. 나를 몸속에 만들어 넣고 다닐 때는 언제고, 왜 밖에서 만나면 다들 싫어할까.

그런데 ‘장이 건강해야 오래 산다.’는 말을 아는가. 내가 황금색으로 탄탄하게 만들어져서 바깥으로 나와야 몸에 독소가 덜 쌓이고 건강하단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뱃속이 불편한 것은 물론 몸속에 독소가 많이 쌓여 쉽게 피로해지고 결국 온갖 병의 근원이 될 테니까. 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내가 정상적으로 바깥에 나가는 일이 사람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면 모두들 내가 더러워도 더 이상 하찮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가장 많이 듣는 말

“에잇, 더러워.” “아유, 냄새 나.” “보기 싫어.” 등. 하지만 내가 며칠만 안 보여도 다들 전전긍긍할 만큼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출생의 비밀

나는 예전에는 먹음직스럽게 생겼었다. 음식을 먹으면 침에 있는 아밀라아제가 탄수화물을 잘게 자르면서 소화가 시작된다. 위는 위액을 분비하면서 식도를 타고 내려온 음식물을 주물럭거리면서 위산과 섞는다. 위액은 강한 산성으로 세균을 죽이고 그 안에 들어있는 펩신이 단백질을 잘게 부순다. 위산과 섞인 음식물, 즉 유미는 소장으로 이동한다. 위의 뒤에 있는 이자는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소화효소를 소장으로 분비한다. 이때 대부분의 영양소가 소장 안쪽에 털처럼 나 있는 수많은 미세융모로 흡수돼 혈액으로 들어간다.

소화과정을 거친 음식물은 대장으로 이동하는데, 여기가 내가 태어나서 사는 곳이다. 대장은 영양소가 거의 빠져 버린 음식물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콜레스테롤이나 담즙산, 호르몬 등을 이루는 스테로이드를 흡수한 뒤 간으로 보내 재순환시킨다. 결국 나의 정체는 흡수되지 않은 음식물 찌꺼기와 세균 등이 뭉쳐진 덩어리다. 음식물로 들어와 내가 태어나기까지 50여 시간이 걸린다. 하루에 대개 1번씩 태어난다.


가장 친한 친구

나의 ‘절친’은 물이다. 몸속에서 약 9m를 여행하다가 만난 친구인데, 내가 예쁜 몸매를 유지하게 도와준다. 가끔은 우정이 너무 뜨거워서 내가 팥죽처럼 묽어지기도 한다. 물은 음료나 음식을 통해 소화기관으로 들어오거나 침이나 위액, 이자액, 쓸개즙, 십이지장액처럼 몸속에서 태어나기도 한단다. 위와 장에서 살고 있는 걔네 가족을 모두 합하면 9-10L나 된다. 그중 약 99%가 소장과 대장에서 흡수된다.

거의 모든 물 가족이 소장이나 대장에 머무르기 때문에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는 물은 겨우 0.1L 정도다. 만약 대장에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전염원, 독소처럼 몸에 해로운 물질이 있다면 더 많은 물이 나를 도와주러 달려온다. 나와 함께 해로운 물질을 바깥으로 내보내 사람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외모 중 가장 자신 있는 부분

피부다. 매끄럽게 윤기가 나는 것은 물론 색깔도 고귀한 황금색이다. 대변의 피부색은 주인의 건강을 나타내는데, 황금색이 가장 건강하다는 증거다. 가끔 몸이 까만 변들이 있는데, 이는 식도, 위, 그리고 소장 윗부분인 십이지장 부위에서 출혈이 일어나 혈액이 위산과 섞인 결과다. 빨간 변들은 소장이나 대장, 직장 부위에서 출혈이 일어났음을 알린다. 그 외에도 유미가 우리 집을 너무 빨리 지나가 쓸개즙이 충분히 흡수되지 않으면 그대로 배설돼 녹색이 되거나, 간질환이나 담도폐쇄 질환을 앓는 경우에는 회색인 애들이 있다. 사람들에게 건강 이상 유무를 알릴 수 있으니 우리 대변들의 피부색은 중요하고 특별하다.


가족 소개

우리 대변 형제는 모두 7명인데, 어떤 조건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모양과 크기, 굳기 등이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굳었는지, 일주일에 몇 번이나 나오는지, 얼마나 많은지 등에 관심이 많다.

첫째 형은 키가 호두알처럼 짤막한데다 딱딱하게 굳었다. 둘째 형은 키는 소시지처럼 크지만 첫째 형만큼 딱딱하다. 사람들은 두 형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데 까다롭게 굴 때를 변비라고 부른다. 나와 가장 친한 셋째 형은 둘째 형과 닮았지만 성격은 부드럽다. 나는 넷째로 성격이 가장 온화하다. 외모도 가장 매끈하게 잘 빠졌으니 7형제 중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스타일이라 자부할 수 있겠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사람에게 미리 나가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는 편이다. 또 주인이 의식적으로 힘을 주지 않아도 쑥쑥 빠져나간다. 내 동생들도 나처럼 성격이 온화한 편이다. 하지만 너무 물러 터져서 걱정이다. 다섯째는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뚝뚝 끊어지면서 부서진다. 설사라는 별명을 가진 여섯째는 더 물러서 진흙처럼 생겼다. 가장 걱정되는 건 막내다. 주로 식중독이나 콜레라에 걸린 환자 몸속에서 나오는 막냇동생은 그마저도 형체가 없다. 마치 미숫가루를 탄 물처럼 묽다.


고마운 존재

나를 키운 건 8할이 장내세균이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데, 그들은 식구가 많아 언제나 득실득실 붐빈다. 약 10조-100조 마리가 있으며 400여 가문이라고 하니 대단하다. 산소를 싫어하는 세균이 가장 많고 발효균인 효모도 있다.

장내세균은 주로 대장 윗부분에서 산다. 거기에 맛있는 탄수화물이 많아서다. 그들은 탄수화물을 발효시켜 에너지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물과 수소, 이산화탄소 등이 발생해 장운도을 자극시키고 덩달아 나도 바깥구경을 나간다. 우리 집의 벽을 이루는 대장세포는 짧은 사슬 지방산을 영양소로 이용한다. 결국 장내세균과 대장세포는 서로 돕는 관계다.


내가 가야 할 길

대장 안에서 장내세균들과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곧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만약 내가 대장 안에 오래 머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사람들은 우리한테 독소가 있어 몸이 피로해지고 질환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독소가 정확히 발견된 적도 없고 실험적으로 입증된 적도 없다. 물로 내가 태어나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 정상적으로 바깥에 나가는 일이 사람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장내세균들에게 직접 물어보니 짧은 사슬 지방산은 대장세포를 튼튼하게 만들어 암 같은 질환이나 심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을 줄인다고 한다. 대장을 산성으로 유지해 병원균의 활성을 억제하기 때문이라나. 특히 대장세포의 주요한 에너지원인 부티르산염은 대장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지 않게 해 대장암의 위험도를 낮춘다고 하니 우리 집에서 장내세균들이 우쭐대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우리가 독소는 아니지만 대장에서 너무 오랫동안 머물면 사람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생각에, 어서 빨리 바깥으로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내가 나가고 싶다고 신호를 보낼 테니 미루지 말고 화장실로 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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