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독일 부자들의 부유세 청원

샌. 2009. 11. 8. 10:00

지난달 신문에 눈길을 끄는 기사 하나가 실렸다. 독일 부자들이 부유세 도입을 청원했다는 보도였다. 최근 경제 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는 독일정부가 충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자신들에 대한 세금을 올려줄 것을 촉구하는 인터넷 청원운동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들은 ‘필요하지 않은 돈이 너무 많다’며 50만유로(한화 약 9억원) 이상의 개인 재산을 가진 부자들이 올해와 내년에 5%의 재산세를 내면 1천억유로(한화 약 180조원)의 국가 세수가 생긴다는 말한다. 독일의 세금 정책이나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지난 달 실시된 독일 총선에서 부유세 신설을 공약으로 내건 정당이 패배했고, 감세를 추진하는 친기업 정당이 승리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비록 일부일지라도 세금을 더 내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부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에도 ‘책임지는 부자’(Responsible Wealth)라는 단체가 있다고 한다. 빌 게이츠를 비롯해 1천 명이 넘는 부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상속세나 주식 배당 소득세 폐지 반대, 공평과세, 근로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확대, 최고경영자들의 연봉 축소 등을 주장하며 스스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다. 이들은 솔직히 이렇게 말한다. “부자들이 계속 욕심을 부리면 미국 자본주의는 망한다. 부자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계속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이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뉴욕타임스에 상속세 폐지 반대 광고를 실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보도들이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와 반대로 돌아가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정부는 가진 자를 위해서 세금을 깎아주며 친재벌 정책을 펴나간다. 부자들은 불법 상속이나 탈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기들 배만 불리려 한다. 작년에 종부세를 폐지하고 세금을 돌려주니까 부자들은 환호를 했다. 세상은 점점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로 되고, 여기서 사회적 불만이나 박탈감, 허무주의가 생겨나 우리 사회의 불안요소로 커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문제의 원인을 풀기보다는 도리어 반대로 나가고 있다. 성장과 돈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정권이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부유세는 우리에게도 낯선 명칭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도입을 주장하는 공약 중 하나다. 그러나 이 공약은 경제적 빈곤층에게조차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의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필요하지 않은 돈이 너무 많다’며 세금을 더 내게 해 달라는 독일 부자들의 요구가 한국에서는 불가능할까? 그냥 쇼라도 좋으니 우리나라 부자들에게서도 그런 목소리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돈이 너무 많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 사람이 진짜 부자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부자가 되고 싶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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