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지구를 정화하라

샌. 2009. 11. 3. 08:51

이외수님의 글에서 공룡 멸종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을 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약 6천만 년 전의 거대한 운석 충돌로 인해 공룡이 멸종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운석 충돌 후의 충격과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한 먹이사슬 붕괴로 덩치가 큰 공룡이 아마 가장 큰 타격을 받았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런데 충돌 흔적이 남아 있는 지층 위에서도 공룡 화석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공룡의 멸종은 다른 원인이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작가는 기발하게도 세균에 의한 감염으로 공룡이 의도적으로 제거되었으리라고 상상한다. 세균이라는 존재는 생명계의 균형을 잡아주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균은 생명계의 균형이 깨지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쟁이 휩쓸고 간 지역에는 어김없이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에 지나치게 덩치가 큰 공룡은 지구 생태계의 치명적인 파괴자였을 것이다. 그대로 둔다면 공룡의 일당 독재 체제가 되고 지구의 숲은 남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세균들은 공룡이 생명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원흉임을 간파했다. 다른 생명체가 3년 동안 먹을 것을 공룡은 삼 초 안에 먹어치워 버리는 것이다. 저놈들을 제거해 버리자고 세균들은 결정했을 것이다. 결국 공룡들은 세균의 공격을 받아 순식간에 지구에서 사라졌다. 이런 가설은 ‘가이아’ 이론으로도 충분히 지지를 받을 만하다. 지구는 위기에 닥칠 때마다 세균 같은 암살자를 내세워 스스로 자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종플루가 대유행이다. 새로운 종류의 독감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전염병인데 매일 만 명 가까운 감염자가 생기면서 휴업을 하는 학교가 늘어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사망자만도 6천명이 넘었다. 이 상황을 보며 불안하게도 이외수님의 글이 떠올랐다. 지구에서 인간은 이미 공룡 이상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폭군이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지구 생명체들에게 공공의 적으로 되었다. 작금의 상황이 지구 생태계를 위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다시 세균이 등장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지구가 다시 한 번 대청소의 필요성을 느끼고 결심한다면, 그래서 인간에게 치명적인 세균이 나타나 급속도로 전파된다면 어떻게 될까? 전대미문의 세균이 등장하여 인간이 전멸에 이르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것은 소행성과의 충돌 시나리오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인간의 오만에 대한 심판은 어떤 식으로든 찾아오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번 신종플루는 그에 대한 사전 경고로 띄우는 예고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간이 지구상에서 생존해 나가려면 우선 세균들에게 나쁜 놈으로 지목되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종을 볼 때 개과천선할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으니 큰일이지 않은가. 인간이 멸종한다고 슬퍼할 존재는 인간 외에는 거의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