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께 고백하는 내용을 삶으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샌. 2009. 10. 22. 09:14

며칠 전 경향신문에 서울 용산에 있는 청파교회 이야기가 실렸다. ‘부동산 굴리는 건 이웃 꿈 빼앗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희년실천주일 참여교회 중 하나인 청파교회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희년(禧年)이란 이스라엘 민족에게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로서, 희년이 되면 가난한 이들의 빚을 탕감하고 땅을 돌려주고 노예는 자유를 얻는 해방의 해다. 이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이스라엘 땅에서 실천되도록 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날은 기독교에서 이 희년의 정신이 실종된 것 같다. 일부 교회에서 희년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희년실천주일을 지키는데 청파교회도 그중 하나다. 신자들은 부동산 과다 보유나 부동산을 통한 투기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토지 보유세 강화 정책을 지지하고, 토지임대료 수입은 가난한 이웃과 나누도록 하는 다짐을 한다.


청파교회는 김기석 담임목사의 실천적 사목관이나 교회 신도들의 신앙관이 기존 교회와는 달라서 눈길을 끈 기사였다. 기독교인의 삶이 평화의 가치로 구현되지 않는다면 믿음이나 구원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목사님의 말씀은 인상적이었다. 일부 기독교의 행태에 절망하다가도 이런 살아있는 교회가 있음으로 하여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된다. 기사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101년 전 설립된 청파교회는 ‘희년실천 주일 참여교회’ 중 하나다. 최근 23개 교회는 부동산 과다 보유, 집값 짬짜미 등 투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 목사는 “부동산으로 재산 굴리는 걸 지혜로운 재테크로 여기고, 집에 집을 더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는 게 지금 우리의 사회 모습”이라며, “내 재산 가치가 오르는 것은 곧 가난한 사람들의 꿈을 빼앗는 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런 세상에 침묵하면 안 된다는 뜻에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 김 목사는 종교의 사회적 소명을 중시하는 실천적 목회자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매주 예배를 드리는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 집행위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주요 현안 때마다 사회적 발언을 해 왔다. “평화가 깨진 현장, 고통 받는 사람들의 현장에 가서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고통을 야기하는 그릇된 정책과 가치관에 반대하는 게 복음적 입장”이라며, “기독교인의 삶이 평화라는 가치로 구현되지 않는다면 믿고 구원받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 청파교회의 2009년 표어는 ‘평화세상을 여는 녹색교회’다. 김 목사의 ‘진정한 복음’은 평화와 환경, 생태 가치와도 직결돼 있다. 청파교회는 2년 전 ‘햇빛 발전소’를 만들었다. 여기서 만든 전기를 한국전력에 판다. 수익 전액은 전기료를 못내는 에너지 빈곤층에 기부한다. 김 목사는 “환경 문제가 기독교적 신앙과 무관하다고 보는 시각은 그릇된 것”이라며 “기독교인들이 생태학적으로 개종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자동차가 없다. 집에서 걸어서 교회에 온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는 자전거를 탄다. “진정한 복음은 생명이 상호의존되었다는 걸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특히 산업사회 이후 생태계가 현저히 파괴되고 있는데,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입니다.”


- 청파교회는 매년 1억 원 가량을 기부한다. 김 목사는 “연말에 돈이 남으면 교인들이 ‘이 돈 쌓아두지 말고 어딘가에 빨리 보냅시다’라고 한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우물 파기, 케냐에 쓰레기 줍는 아이들 교육 지원, 몽골 사막화 방지를 위한 ‘은총의 숲 조성’에 주로 기부한다.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도록 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라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김 목사의 실천적 목회는 신앙관에 기반한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께 고백하는 내용을 삶으로 번역하는 과정입니다. 그 고백의 내용이 내 삶으로 구현되는 게 아니라면 신앙이 아니죠. 말장난 같지만, ‘기도(祈禱)’는 시도하고 도모하는 뜻의 ‘기도(企圖)’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기도가 나의 실행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무의미할 뿐입니다.”



이 정권이 들어서면서 종합부동산 세제를 완화하면서 땅부자들에게 세금을 돌려주었다. 이때 기독교 신자들만이라도 자신들이 환급받은 세금을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운동을 펼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이런 교회운동이 일어났더라면 기독교의 부정적 이미지가 상당 부분 바꾸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에서 부자들에게 그런 희망을 품는 것은 한낱 꿈인지도 모른다.


청파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여느 교회와는 다른 분위기였고, 인터넷으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는 더욱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청파교회의 목회방침을 소개한다.



우리 청파교회는 다음과 같은 교회를 지향합니다.


1.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내세우기보다 아는 만큼 실천하기 위해 몸을 낮추는 교회


1. 돈과 지위와 권력이 없어도 이 땅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교회


1. 내가 나를 발견하려고 애쓸수록, 내가 가난할수록, 내가 깊이 이해할수록 더욱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됨을 확신시켜주는 교회


1.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소리보다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소리를 경청하는 교회


1. 자기의 특권과 다른 사람의 특권을 보호하기 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교회


1. 가르치는 스승의 됨과 동시에 배우는 제자가 될 줄 알며,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는 모든 경험의 중심이 되는 교회


1. 내 양심의 결단을 내림에 있어 자유의 가장 폭넓은 공간을 마련해주는 교회


1. 모든 연약함에 대하여는 항상 부드러우며, 모든 위선에 대하여는 대항할 줄 아는 강직함을 지닌 교회


1. 평화 부재의 현실로 고통당하는 이웃들의 아픔을 동감하며 평화의 씨앗으로 살아가는 교회


1. 인간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세계가 파괴되는 것에 반대하여 뭇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자원을 아끼는 녹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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