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히말라야를 포기하다

샌. 2009. 10. 15. 09:10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 허리가 불안하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허리를 굽히기가 힘들고 다리 근육이 결린다. 겨우 직장만 오가면서 집에서는 누워있는 게 일이다. 덕분에 푹 쉬기는 하지만 짜증이 없을 수가 없다. 남자 허리가 부실하면 인생 종쳤다는 말이 실감나게 받아들여진다. 어제 아침에는 누워서 아령을 몇 번 들었다 놓았는데 그것도 운동이라고 팔까지 뻐근하다. 한 달 전만 해도 나름대로는 건강에 자신을 가졌는데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지난겨울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뒤로 내 몸에 대한 과신이 지나쳤다. 실로 올해만큼 산에 자주 다니고 많이 걸은 때도 없었다. 주제파악도 못하고 까불어댔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허리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 이번 통증은 네 체력에 맞게 살라는 몸의 경고라고 생각한다. 어떤 점에서는 고마운 신호다. 올해는 몸 상태로는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 체력적으로 절정에 올랐다가는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내 인생을 히말라야 전과 후로 나눈다고 큰 소리 쳤는데 겨우 1년도 버티지 못했다.


몸이란 게 참 묘하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하루에 8 km 이상씩 걸으며 펄펄 날았다. 그때는 하루만 제대로 걷지 않아도 몸이 찌뿌듯한 게 꼭 볼 일을 못보고 화장실을 나온 그런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차를 몰고 다니며 거의 걷지를 못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 몸과 마음이 적응하는 게 놀랍다. 그때는 걷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는데 그것도 착각이었다. 도리어 지금은 걷기 중독에서 해방된 자유마저 느낀다. 물론 다시 걷기를 시작하겠지만 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올 겨울 히말라야 트레킹은 포기한다고 팀원들에게 알렸다. 지난겨울에 열두 명이 랑탕과 고사인쿤트를 다녀왔고 이번에는 안나푸르나를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나는 탈락하게 되었다. 무리를 한다면 못 갈 것도 없겠지만 옛날의 고생했던 디스크 수술 경험이 떠올라서 고집을 부리지 못하겠다. 또 잘못하다가는 팀에게 피해를 줄지 모른다는 것도 걸리는 부분이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는데,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히말라야를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야. 다만 일 년 연기한 것뿐이라고.”


카페에 올린 글에 팀원들이 걱정하는 댓글을 달아주었다. 히말라야 설산과 아름다웠던 산길, 그 길을 함께 걸었던 동료들이 보고 싶다.


- 저도 허리로 고생인데요. 허리 보강운동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해주면 좋아요. (sanzigi)


- 오리온좌에 이상이 생겼군요. 미리 포기하지 마세요. 열심히 치료하면 가능할 것입니다. (금오인)


- 그런 일이 있었나요? 하긴 나도 일본 북알프스 가기 한 달 전, 그리고 안나푸르나 끝나고 캄보디아에서 허리로 고생 많이 했어요. 그때 무슨 침대로 된 의료기로 열심히 치료 받아 갔다 왔지요. 잘 드시고, 치료 열심히 받고... 그래도 언제 얼굴 좀 보고 싶어요. (지스나)


- 꾸준히 치료해서 함께 산행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산마루)


- 허리가 많이 아프다니 걱정입니다.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았으니 미리 포기하지 마시고 허리 보강 운동을 많이 하세요. 그리고 이번 주 단악회 산행도 못하나요? 가능하면 같이 갔으면 합니다. 허리 컨디션 점검차 한 번 움직이는 것이 어떨까요? (장길산)


- 허리가 아프시다니 걱정이네요. 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율리아나)


- 오리온님 빠른 완쾌를 빕니다. 등산이 어려우면 평지길이라도 천천히 도보하시면서 건강 보살피기 바랍니다. 다시 트레커 산행에서 뵐 수 있기를 기대할게요. (여연)


- 빨리 쾌유하시고 히말라야에 같이 갈 수 있기를.... “힘내세요, 오리온님!” (스마일)


- 건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빨리 회복하셔서 한 번 뵈었으면 합니다. (솔바람)


- 쾌차를 기원합니다. (산인)


- 어쩌나! 저도 근 보름 감기 몸살에 시달리고 팔을 다쳐 시달리고.... 기분이 저조해지는 것을 격려하며 일상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마음 조급하게 가지시지 말고 여유를 가지시길! 쾌차하시길! (벗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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