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어느대학에서 회사에서 은퇴한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그 연구에 의하면 은퇴하고 난 뒤평균적으로 10년 정도 젊어지고 건강해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상은 프랑스의 전기회사에 근무한 뒤 은퇴한 사람들 1만여 명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정반대여서 흥미롭다. 우리의 인식으로는 은퇴하고 일을 놓게 되면 빨리 늙게 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일이 없어진 공허감을 이기지 못해 심지어는 병까지 걸리는 경우도 보았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독특한 '일 중독'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번에 전주에 내려가서 친지들을 만난 자리에서 명퇴 문제가 화제로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만류했는데 그 이유가 일이 없어지면 사람 노릇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퇴임을 한다고 하면 누구나 제일 먼저 그러면 무엇을 하면서 살 거냐고 묻는다. 아무 일 없이 놀겠다고 하면 마치 외계인을 보듯 한다.사람들은 하는 일이 없어지면 거의 인생이 끝나는 것으로 착각한다. 물론 일에 생계가 달린 사람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 일이 아니어도 넉넉히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까지 죽을 때까지 일에 매달려야 한다고 믿는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프랑스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직장에서 은퇴해도 기본 생활에는 문제가 없다고 알고 있다. 그게 우리와 다른 점이다. 즉, 노후에 대한 불안이 덜 하다. 그런 고려를 하더라도 한국 남자들의 일에 대한 집착은 너무 심하다.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은퇴하고 나서 생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 지 모른다. 중년의 여자들은 활발하게 인생을 즐기며 사는 반면에남자들은 아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곁에서 귀찮게 한다. 그래서 시중에 회자되는 그 많은 우스갯소리들도 만들어진다. 일만 하는 것이 남자의 정체성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나 몰두가 심한 나라도 없다고 본다. 그것은 외국인들로부터 지금도 흔히 듣는 말이다. 6, 70년대에 공단 지역에서 새벽에 떼를 지어 출근하는 인파를 보며 개미떼나 레밍떼와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시대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고 미덕으로 칭송되기도 했지만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되는 지금까지도 그런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는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 오직 돈 벌고 잘 살기 위해서 하나밖에 생각할 줄 몰랐다. 그런 관성은 아직까지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떠나 일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단순히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선하고 성실한 것이 체제의 충직한 노예 노릇과 다름 없는지도 모른다. 지배체제가 무엇으로 노동자를 세뇌시키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노동이나 일을 바라볼 때 우리는 좀더 다른 시각으로 나와 세상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관점을 바꾸면 세상이 변한다. 일에서 해방된 60대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기가 될 수 있다. 의무적으로 나가야 할 직장도 없고,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고, 더는 부자가 될 욕심도 없고, 그때는 내가 진짜 '나'를 살 수 있는 시기다. 돈이 적든 많든 자족하며 인생을 즐길 자유가 은혜처럼 주어진 시기다. 생각을 바꾸면 은퇴 후의 60대는 누구에게나 충분히 그럴 수 있는나이라고 본다. 그런 노후를 위해서 지금 힘들더라도 참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하는 속임수에 속지 말라. 지금 행복하게 인생을 즐길 수 없는 사람은 늙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행복해질 수 없다. 그는 여전히 돈과 일을 찾지 못해 안달일 것이다.
은퇴한 뒤에 10년이 젊어졌다는 프랑스 사람들의 조사 결과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아직도 우리 현실은"저 사람 은퇴하더니 10년은 더 늙어 보여."라던가,"그래도 예전에 직장에 다닐 때가 좋았어."라는 푸념을 흔하게 듣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하여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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