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저기 좌측통행이 간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내 별명은 '좌측통행'이었다. 입학해서 담임 선생님이 가르쳐 준것 중 하나가 좌측통행이었던 것 같다. 아마 선생님은 학교 복도에서만이 아니라 등하굣길에서도 좌측통행을 하라고 했을 것이다. 집과 학교는 걸어서 30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신작로와 마을 골목길을 지나는 동안 나는 선생님 말씀을 따라 왼쪽만 고집하며 걸었던 모양이다.그래서 어른들이 붙여준 별명이 '좌측통행'이었다. 당시 코흘리개들이 선생님 말씀을 하느님 말씀처럼 따랐을 테지만 개구쟁이들이 어디 그런가. 선생님 눈길을 벗어나면 천방지축이 되었을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그런데 나만 유독 왼쪽으로만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아이였다는 뜻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런 기질은 아직도 남아 있어 세상 사는 것이 불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두루뭉술하게 살지를 못한다.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가지를 않는 원칙주의자에 가깝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앞뒤가 막힌 답답한 사람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보수주의자나 도덕주의자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는 도리어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다. 좌측을 지키려는 기질은 비슷하지만 기성 체제나 권위에 저항하며 내 길을 가려는 것이 어렸을 때와는 달라진 점이다. 한 마디로 말 잘 듣는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아닌 것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좌측통행을 고집하며 걸었던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반면에 한편으로는 그런 내 모습이 귀엽게도 느껴진다. 만약 그런 아이를 길에서 만난다면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다. 돌아보면 초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기질적 면에서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유전자 배열을바꾸지 않는 한 타고난 성향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다. 그런 내 성향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어찌 하겠는가. 아둔하고 융통성 없는 것도 나의 개성인 것을, 예전 같으면 안타까워 했을 그 어떤 것도 이젠 관대히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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