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1994 독일 연수기(2)

샌. 2010. 2. 22. 14:24

9/12/94 월 비

8:00. 덴마크에 인접해 있는 Flensburg로 이동. 독일 북부에 있는 역사가 오랜 국경 도시이다.

9:00. 과학 전시관인 PHÄNOMENTA 방문. Fiesser 교수의 설명을 듣고 전시실을 관람하다. 그는 감각을 통한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직 건설 중에 있는 이 전시관은 시민을 위한 개방된 과학 시설이라고 한다. 벽 속에 갇혀 있는 전시물이 아니라, 홀 가운데에 설치되어 시설물 전체를 만지면서 배우게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이나 시설물이 그리 돈을 들이지 않았으면서도 관람객들이 스스로 생각하면서 과학적 원리를 터득하게 되어 있다.

점심 후 시내 가이드 관광. 그러나 희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유 시간을 주어서 대부분이 쇼핑하러 삼삼오오 헤어지다. 나를 포함해 4명이 옛 프렌스부르그 거리를 중심으로 안내를 받다. 그러나 가이드가 뉴욕 출신의 미국인인데 설명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답답했다. 길 가에서 건물을 신축하는데, 앞면은 옛 건물의 벽을 크레인으로 받쳐두고 공사를 하는 게 인상적이다. 내부는 현대식인데 겉은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 고풍스런 분위기를 이어오고 있다. 시간이 남아 몇 가게를 둘러보다. 대구의 L선생은 독일 밥통을 샀고, 누구는 어떤 가게에 들어가 쌍둥이 칼을 싹쓸이했더니 독일 주인이 놀라더라는 얘기도 들린다. I선생은 한국 창피 시키는 짓이라며 혀를 찬다. 모두들 시간만 나면 쇼핑가로만 돌아다녀야 하는지 의문이다.

18:00. Stradtrestaurant에서 저녁 식사. 사람들 기분이 풀어진 자유분방한 분위기. 종업원에게 Alt Bier를 시켰더니 무슨 말인지 모른다. 맥주를 부르는 이름이 지역마다 달라서 일반적으로 흑맥주는 Dunkel Bier라고 한다는 걸 배우다.

21:00. 호텔에 돌아오다. 독일인들은 축구와 자동차 경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독일 TV의 스포츠 프로에서는 이 두 가지밖에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잠깐 TV를 보다가 내일을 위해 바로 잠자리에 들다.



9/13/94 화 맑음

9:00. 짐을 챙겨 Kiel로 이동. 이틀 만에 또 짐을 싸야 하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무거운 가방을 계단을 따라 옮기는데도 힘들고, 버스에 싣는 것도 늦으면 넣을 자리도 찾기 힘들다.

10:00. 과학 교육 연구소 IPN 방문.

10:15. “The use of computers in physics classes" Dr. Härtel

11:00. "PING - practise of integrated science education" Dr. Reinhold

11:45. "Lessons about chaos theory" Disp. Komorek

13:30. 해변가에 있는 식당 Fördeblick에서 카레로 점심 식사.

14:30. Potsdam으로 출발. 정군이 구해온 한국 테이프의 음악 소리가 모두의 가슴을 울린다. 김수희의 트로트,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이 이국에서 들으니 더욱 감상적이게 한다. 한참을 달리니 구동독 지역이라는 것이 확연히 표 날 정도로 주변 풍경이 다르다. 몇 년 전만 해도 여기는 우리에게 금단의 지역이 아니었던가? 시골 가옥은 남루하고 도로 사정이 나빠 차의 진동이 심하다. 군데군데 고속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느껴지는 궁핍의 냄새. 서독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인가?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구동독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생활에 만족하며 사람들은 살았을 것 같다. 통일 후 급격한 사회 변화로 동독인들은 통일을 후회한다고 듣고 있다. 그들에게는 돈만 아는 서독인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게으름뱅이라 하고. 하여튼 독일 통일이 주는 교훈을 우리는 잘 새겨야겠다.

20:30. 포츠담 교외에 위치한 Haus Havelblick 호텔에 도착. 가로등도 없는 앞길의 음산한 분위기와 함께 호텔 방에 들어서며 충격을 받다. 좁은 방에 간이침대 두개만 놓여있고 그나마 있는 라디오도 우리나라에서 50년대에나 썼을법한 구식으로 다이얼을 돌리니 찍찍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빗물에 삭은 창문도 잘 열리지 않고 퀴퀴한 냄새와 날아다니는 모기도 신경 쓰이게 하는데, 화장실과 샤워실도 각 층에 하나 밖에 없어 공동으로 이용해야 한다. 잘 사는 공산주의 국가였다던 동독에서 국민들의 생활의 질이 이 정도 밖에 안 된다는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공산 체제가 수십 년간이나 버텨온 게 차라리 기적 같다.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이런데 구경시켜줘야 한다고 누군가 말한다. 하여튼 반공 교육 하나는 확실히 될 것 같다. 다행히도 아래 식당은 깨끗하고 음식도 괜찮다. 식당 옆에 붙은 넓은 홀을 지날 때면 공연히 공산당 집회장 생각이 나서 쓴 웃음이 지어진다. 도저히 잠 들 것 같지 않은 방인데 피곤한 탓인지 바로 잠에 떨어지다.


9/14/94 수 맑음

9:10. 베를린으로 출발. 포츠담을 거쳐 10:45에 브란덴부르거 문(Brandenburger Tor)에 도착하다. 베를린 시내는 서울과 비슷하게 교통 체증이 심하다. 대도시는 어디나 다 마찬가지인가 보다. 독일 최대의 도시인 베를린은 동과 서로 분단된 비극도 겪었으나 통일 후 다시 독일의 수도로 지정되어 활기를 띠고 있다. 브란덴부르거 문은 동서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의 시작과 끝 지점으로, 프러시아 시대의 개선문이다. 즉, 분단과 통일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도 통일이 되면 판문점이 아픈 역사의 상징물로 남을 것이다. 1시간 동안의 자유 시간에 브란덴부르거 문과 그 주변을 돌아보다. 베를린 장벽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한 쪽 구석에 길이 약 5m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브란덴부르거 문의 동독 쪽 광장에는 좌판 행상들이 손님을 끈다. 구소련이나 동독군의 모자나 군복부터 시계, 쌍안경등 역사의 강물과 함께 떠내려 온 유물들을 판다. 값이 싼 편이어서 모두들 한두 개씩 구입하다. 아이들에게 줄 우표를 샀는데 디스카운트를 요구하면 두 말없이 깎아주는 게 시원시원하다. 웅장한 국회 의사당의 안과 밖도 돌아보다. B선생은 기념사진을 찍는데 가장 열심인데 이 큰 건물을 몽땅 사진에 넣으려는 욕심 때문에 100m는 뛰어 갔다가 사진 한 장 찍고 다시 달려오는 모습이 우습다.

12:30. Leibniz-Klause 식당에서 점심. 점심 후 모이는데 조금 늦은 사람이 있다고 버스 기사가 마이크를 잡고 뭐라고 큰 소리로 야단을 친다. 시간 약속에 철저한 저네들이지만 그렇다고 기사가 큰소리치는 것도 동양적 기준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14:20. 과학관 SPECTRUM과 교통 기술 박물관 관람. 4층으로 된 과학관에는 대체로 우리의 과학관과 비슷한 내용의 전시물이 비치되어 있다. 그러나 1982년에 개관하였다는 교통 기술 박물관은 규모도 컸고 다양한 실물과 모형들이 많이 설치되어 배울게 많았다. 특히 기관차의 발달 과정을 볼 수 있도록 시대 순으로 실물 기관차를 다량 전시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시간이 짧아 대충 훑어보기만 해서 아쉽다. 어제의 하루 종일 이동과 오늘 내내 걸어 다니기만 한 탓에 사람들이 전부 지쳐있다. 박물관내에서도 의자만 보면 앉기가 바쁘다.

18:00. 박물관 옆 식당에서 저녁 식사.

20:30. 호텔에 돌아옴. 전기 포트를 빌려 옆방의 단장, K선생과 셋이서 사발면을 끓여 먹다. 잔뜩 가져온 라면을 이제야 먹어 보다. 소주를 구하러 몇 방을 돌았으나 허사, 모두들 바닥났는가 보다. 작은 키에 부지런한 인상의 57세인 단장은 강의 시간이면 무척 힘들어한다. 그러나 걷는 시간이 많았던 오늘은 등산하는 셈치고 즐겁게 다녔다고 한다.


9/15/94 목 비

비가 내린다. 집을 떠난지 20일 가까이 되는데, 외국의 아침 비 내리는 풍경이 쓸쓸하다. 그러나 바쁜 일정이 그것마저 짧은 단상에 그치게 한다.

8:30. 포츠담으로 출발.

9:30. 원래는 Einstein Turm을 방문하게 되어 있으나 빗속을 헤매다 찾지 못하고 체칠리엔호프(Cecillenhof)성을 구경하다. 이 성은 크기는 작으나 1945년 포츠담 회담이 열린 곳으로 유명한데 당시의 회담장과 각 집무실이 잘 보존되어 있다.

10:50. 산수시(Sanssouci) 궁전에 도착하여 2시간여 가이드를 받으며 걸어서 돌아보다. 1745년에 세워진 이 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궁전을 본떠서 지은 것인데 프리드리히2세가 여름 별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베르사이유와 마찬가지로 드넓은 정원이 인상적이고 궁전 앞쪽에 있는 계단식 포도밭이 특이하다. 또, 중국과 중국인을 상상해 만든 건물이 서양인들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잘 말해주고 있다.

궁전 내부의 화려함은 입을 벌어지게 한다. 300여개의 방이 보석이나 광물, 그림 같은 진기한 것으로 장식되어 있다. 자기 세를 과시하기 위해 크게 만들었다는 식당 건물은 지금은 포츠담 대학으로 쓸 정도로 규모가 대단하다. 하여튼 옛날 왕족들의 호사스러움은 그 시대 수준을 생각할 때 너무 지나친 감이 든다. 사회주의적 이념이 아직 남아서인가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의 말 속에도 그런 비판이 여러 군데 내비친다. 궁전 밖에 있는 돌로 만든 조각들은 관리 소홀인 듯 많이 파손되고 시커멓게 변색된 채로이다. 구동독 지역인 탓에 아무래도 신경을 못 썼으리라. 다른 유적들도 이제야 보수 공사를 하는 곳이 많다.

13:00. 포츠담 대학 구내식당에서 점심.

14:00. "Suprising effects in physics lectures" Prof. Müller

15:00. "Using computers in physics lessons" Prof. Winter

16:15. 영화 박물관 관람. 독일 영화만의 박물관이라 흥미를 끌지 못하다. 밖에 나와 박물관 앞뜰에서 휴식하던 중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한국인 신혼 여행객 한 쌍을 만나다. 이 곳까지 신혼여행을 와 자전거를 빌려 시내 관광하는 그들의 여유가 부럽다.

19:00. 포츠담 시내서 저녁 식사. 우연히 버스 기사와 한 테이블이 되어 독어 사전을 찾아 가면서 대화를 해보다. 어제 큰소리치던 것과는 달리 소탈한 성품이 좋다. 운전 경력 20년이라는 그는 유럽 전부를 돌아다녔고 몇 개 나라 말은 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영어는 전혀 못해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맥주가 음료수라는데도 아무리 권해도 운전 때문에 한 모금도 하지 않는다.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칭찬해주면 흐뭇해하는 표정이 천진하다. 우리와 숙식을 함께 하는 그는 강의 시간이면 언제나 뒷자리에 앉아 미소를 띤 채 강의 내용을 경청한다. 우리 일행 중에는 강의 중 조는 사람도 있고 지루해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의 모습은 언제나 진지하다. 자세가 흐트러지더라도 그의 모습을 보면 정신이 화들짝 든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과학에 문외한인 그를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지 신기하다.

22:00-24:00. K선생의 생일을 축하하는 서울 교사의 모임을 호텔 식당에서 가지다. 간단한 맥주 파티.


9/16/94 금 맑음

다시 이동하는 날이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짐을 꾸리고 간단히 식사하다. 집으로 전화하다.

7:00. 프랑크푸르트로 출발. 점심은 고속도로 휴게소서 하다.

14:00.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도착하여 강의 듣다.

“Turbulence" Mrs. Korneck

"Newton dynamics in middle classes" Mrs. Wodzinski

"Learning difficulties in physics classes" Mr. Wiesner

"Flying" Prof. Weltner

"About the idea of entropie" Mr. Görnitz

인상적인 것은 한 대학원생이 자작한 제트 엔진을 시동시키는데 교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펌프질하고, 버너 불을 들고 있는 등 조수의 역할을 기꺼이 해 주고 있는 점이다. 20대 학생과 60대 교수가 위치가 거꾸로 되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은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는 감동적이었다. 누구나 ‘만약 한국에서라면?’이라는 가정을 해 보았을 것이다. 비록 시동시키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많은 박수를 받다.

19:00. 시내 식당에서 저녁 식사.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중앙부에 있는 경제의 중심지라고 한다. 시내에는 유명한 괴테 하우스가 있는데 가 볼 엄두도 못 내고 강의만 듣고 떠나게 되어 아쉽다. 저녁에 자유 시간이 나면 시내에 있는 교민 가게에서 쇼핑을 할 계획이었으나 자유시간은 고사하고 이 사람들을 쫓아다니기도 벅차다.

21:00. Aschaffenburg로 출발.

22:30. 길을 못 찾아 한참을 헤맨 끝에 Klingerhof 호텔에 도착. 매우 피곤하다. 1박만 할 호텔인데 버스에서 큰 짐을 안 내렸으면 좋으련만 기사가 분실시 책임을 못 진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시골 언덕 위에 세워진 호텔인데 고급스럽고 깨끗하다. 샤워 후 좋은 기분으로 잠들다.


9/17/94 토

아침에 일어나니 호텔에서 바라본 주변 전망이 아주 좋다. 공기도 상큼하고 어디 휴양을 온 기분이다. L선생은 베란다에서 주변 경치를 스케치하느라 여념이 없다.

9:30. 다시 뮌헨으로 출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구릉 지대가 나타나며 산 비슷한 형태를 볼 수 있다. 따라서 나무들도 보이고, 많지는 않지만 포도밭도 군데군데 볼 수 있다. 독일 나무들은 정말 탐스럽다. 자로 그은 듯 쭉 뻗은 것이 기하학적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한다. 산악 국가인 우리나라의 산에는 대개가 쓸모없는 잡목인데 독일과 비교하면 아쉬운 점이 많다. 마침 옆 자리에 단장이 앉아 긴 시간 그 분의 해외여행 얘기를 재미있게 듣다.

13:00. Rothenburg에서 1시간 동안 쉬다. 이 도시는 인구가 12000명밖에 안되지만 중세 시대의 건물이나 성벽이 잘 보존되어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한다. 잠깐 둘러보니 역시 아름답고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눈에 많이 띤다. 한 가게에 그림엽서를 사러 들어갔더니 일본인 점원이 일본말로 맞이한다. 거리 구경을 하다가 맥도날드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다.

17:30. 출발한지 10시간 만에 뮌헨 시내에 있는 Adria hotel에 도착. 내일이 맥주 축제인 October Fest 날이라 호텔 잡기가 어려웠다고 세 사람씩 한 방을 쓰게 되다. 2인실 방에 간이침대를 하나 더 놓았는데 불편하긴 하지만 포츠담에서를 생각하면 견딜 만하다. 저녁 식사는 전철을 타고 나가 뮌헨 중앙역 앞에 있는 Augustiner Gaststätten 식당에서 하다. 축제 전야이어서인지 아니면 남부 지방의 특징인지 독일답지 않게 시내 분위기가 자유롭고 들뜬 모습이다. 식당도 시끌벅적하다. 돌아오는 전철 내에서는 술 취한 젊은이들의 고함 소리로 시끄럽다. 파리나 뮌헨의 전철보다는 서울의 전철이 훨씬 깨끗하고 조용하다. 또 안내 방송이나 지하철 운영 상태도 서울 쪽에 훨씬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다만 가장 중요한 안전 문제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K선생이 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야간 축제장에 나가자고 하는 걸 사양하다. 내일 일정을 생각하면 체력적으로 자신이 없다. 그러나 K선생도 가는 중에 축제장 분위기가 험상궂다는 얘기를 듣고 그냥 돌아오다. 술 취한 독일 젊은이들이 외국인들에게 말을 붙이며 시비를 건다는 것이다. 잠자리에는 들었으나 한 방을 쓰는 나이 많은 J선생이 12시 너머까지 TV를 보는 바람에 한참을 잠을 설치다.


9/18/94 일 흐림

뮌헨의 세계적 축제인 10월 축제(October Fest) 날이다. 맥주를 마시며 노래 부르는 이 맥주 축제는 본래 농민의 수확제였는데 어제 첫째 날은 맥주 회사의 입장 퍼레이드가 있었고 오늘 둘째 날은 민속 의상 퍼레이드 등이 시가지에서 펼쳐진다고 한다.

오전은 자유 시간. 거리로 나서니 민속 의상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이 이 곳 저 곳에서 퍼레이드에 참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가족이 함께 참가하는 게 많이 눈에 띄고, 남녀노소 없이 한껏 즐거워하는 분위기이다. 복장이나 소도구들이 다양하고 재미있다. 막스밀리안 거리(Maxmillian Strasse)에 나가니 마침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서울로 치면 종로쯤 되는 거리인데 안내서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세련된 거리로 나와 있어 큰 기대를 했었는데 고풍스럽긴 하지만 별 특징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10월 축제의 퍼레이드는 정말 대단하다. 행렬의 질적인 내용도 좋고 연도에 빽빽이 늘어선 사람들의 환호는 모두가 하나로 되어 이 날을 즐기는 것 같다. 독일인들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다. 평시에는 딱딱하고 개인주의적이기만 한 것 같은 사람들인데. K선생은 히틀러의 망령이 연상되더라고 하는데 그것은 지나친 오버센스일지도 모르겠다. 오후 일정 때문에 퍼레이드의 끝도 보지 못하고 돌아오다. 뒤로도 끝없이 이어지는 행렬, 밴드, 행렬이 질리게 한다. 전 시민이 모두 여기로 모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다. 돌아오는 길에 본 기아 자동차의 대리점 간판이 반갑다. 외국에서 보는 우리나라 이름들은 언제나 가슴 뿌듯하게 한다. 앞으로는 이런 것들도 무덤덤하게 보아 넘길 정도로 우리의 국력이 커지길 빌어 본다.



12:30. 독일 과학 기술 박물관(Deutsch Museum) 방문. 구내식당에서 점심. 1903년에 건립된 이 박물관은 과학 기술에 관한 박물관으로는 유럽 제일이라고 한다. 규모도 방대하여 전시실을 모두 돌아보자면 며칠이 걸린다는데,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와 1층에 있는 지하자원, 항공기, 선박관을 관람하다. 거대한 선박과 항공기 실물을 실내에 모아 놓았고, 교육적 효과가 높게 내부 구조까지 볼 수 있게 한 것이나 선박의 엔진을 실제로 작동시켜 주는 것 등이 좋다. 지하 광산을 똑 같이 재현시켜 모형이 아닌 실제 기계가 작동되는 것은 마치 광산 내부에 들어와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명성에 걸맞게 실망을 주지 않는다. 그간 너무나 많이 새로운 것에 접하며 만성이 된 우리들이지만 이 과학박물관의 규모와 전시 내용에는 배울게 많다.

처음으로 저녁 시간과 식사가 자유로이 허용되다. 몇 명과 박물관에서부터 마리앤 광장(Marien platz)을 거쳐 칼스 광장(Karls platz)까지 걸어가며 구경하다. 저녁 식사 때문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 이방인에게는 식당에 들어가기가 제일 두려운데 이름을 모르는 채 아무 것이나 시켰다가는 비싼 값 내고 먹지도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에 - 결국 맥도날드 가게에서 햄버거와 맥주로 시장기를 때우다. 한국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맥도날드가 여기서는 그렇게 반갑고 마음 편할 수 없다.

20:00. 지하철로 호텔에 돌아오다. TV를 켜니 오늘 낮의 축제 퍼레이드를 재방송해 주고 있다.


9/19/94 월

오전 자유 시간. 대부분 쇼핑하러 나가다. 룸메이트는 먼저 보내고 혼자 마리엔 광장까지 걸어가다. 약간 불안하기는 하지만 혼자 다니면 자유스러워서 좋다. 50DM짜리 전화 카드를 새로 사서 집과 전주에 전화하다. 아내와 아이들은 몇 시간 후면 추석을 쇠러 시골로 내려가겠지. 집 생각, 고향 생각을 애써 지우다. 은행에서 600DM T/C를 환전하다. 마리엔 광장에 있는 시청사는 약 100년 전에 세워진 네오고딕식 건물로 종루에 있는 인형 시계로 유명하다. 11:00에 작동되는 이 인형 시계를 보기 위해 광장에는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그러나 대단한 것은 없고 그저 종소리를 내며 인형들이 춤추며 회전하는 것 뿐, 관광객 숫자에 비해 볼거리로는 초라하다. 롯데 백화점 입구 윗벽에 설치된 것이 이것의 축소판인 것 같은데 굳이 한국적인 것을 외면하고 외국 흉내를 내는 것이 아쉽다. 우리에게도 세종 시대의 자격루 같은 훌륭한 것이 많지 않은가. Kaufhof 백화점에서 아내의 목걸이, 쌍둥이 부엌칼 3개, 가방을 사다.

13:00. 뮌헨대학 구내식당서 점심.

14:00. “Survey of the university education of teachers in Bavaria" Mr. Gleixner

16:00. Visit of the physics lab course for freshmen. Dr. Becker

19:00. 시내 식당에서 저녁 식사. 모두들 기분이 들떠 술을 많이 마시다. C선생은 와인 병을 들고 한국식으로 테이블을 돌며 술을 권하다가 본인이 먼저 KO되다. 식사후 몇 명이 어울려 유명한 맥주 홀 Hofbräuhaus를 찾아가다. 관광 안내서에 보면 이 맥주홀은 1589년에 개업했고 히틀러가 나치 깃발을 치켜든 것도 이 주점이라는데 7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생음악에 남녀노소 온갖 사람들이 어울려 노래하고 떠들고 매우 시끌벅적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런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좋다. 옆 테이블의 덴마크 젊은이들이 건배를 제의해 덴마크어와 한국말을 서로 가르쳐 주며 건배를 외치다. 독일인들과는 알코올도수 측정기로 각자의 음주 정도를 재보며 즐기다. 3000cc를 마신 나보다 1000cc를 마신 P선생의 알코올도수가 더 높게 나오는 게 이상하다. 사진사가 지나가며 사진을 찍어주고 곧 열쇠고리와 카드를 만들어 온다. 기분으로 20DM에 사다. C선생은 저녁 식사 때의 과음으로 토하며 고생인데 2시간여 화장실 신세를 지며 우리를 걱정시키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빌딩 사이로 보이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 고향에는 지금쯤 추석날 새벽일 텐데 아내는 잠도 못자고 차례 준비에 바쁘겠지. 지구의 반대쪽에 떨어져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몸은 2만 km 가까이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바로 옆인데..... 밤 12시. 고향으로 전화해 어머님, 아내와 통화. 추석날 아침에 맞춰 전화하기 위해 잠 안자고 기다리는 일행들을 보며 조상이 무엇이고, 가족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다.


9/20/94 화 맑음

식당에 내려가니 어제의 과음으로 실수한 얘기들이 많이 들린다. 아직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쎈으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짐을 꾸리다. 짐은 자꾸 무거워지는데 머리는 점점 텅텅 비어 간다는 누군가의 농담에 모두가 가가대소.

9:00. Deutsches Museum 재방문. Kerschensteiner 강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전시실 관람. 물리실과 천문실을 중점적으로 보다. 특히 천문실이 규모는 작으나 전시 내용이 수준 높게 잘 짜여져 있다. 어제의 음주 탓인가 속이 불편하여 몇 번을 화장실 신세를 지다. P선생은 아예 밖에 나가 쉬더니 점심도 사양한다.

12:30. 박물관 구내식당에서 점심. 독일 음식은 대체로 짠 편이다. 오늘 나온 수프는 너무 짜서 많은 사람들이 먹지 못하다. 아이스크림 디저트는 생략하고 일찍 나와 매점에서 아이들 선물 몇 가지를 사다.

14:00. Giessen으로 이동.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로 독일 와서 경험하는 유별난 날이다. 한국의 맑은 가을 하늘이 연상된다. 잔디밭에 웃통을 벗고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독일인들의 모습이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다.

20:00. Köhler hotel에 도착. 여기서도 방 하나에 3-4명이 사용하도록 되어 있어 마침내 참았던 분노가 폭발하여 독일 측에 격렬히 항의하다. 일이 이 정도까지 된 것은 프로그램을 이렇게 만들고, 여기 와서는 독일 측과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한 정교수의 책임도 크다. 독일 측 비난만 하는 그의 자세가 마땅찮다. 독일 측 해명을 들으니 그 쪽 얘기도 일리가 있는데, 사소한 트러블은 상호간의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생긴 것 같다. 지금까지의 일정을 보면 그들도 나름대로 많은 것을 보여 주려고 애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독일 측도 융통성이 없이 원칙만 내세우고 자신들 입장만 변호하니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길거리에서 1시간 이상을 기다리며 절충을 한 끝에 한 방에 둘씩 사용하고 나머지는 다른 호텔에 새로 방을 얻도록 하다. 덕분에 길 건너편의 호텔로 옮겼는데 배정받은 방이 특실로 응접실까지 딸린 넓은 방이어서 대만족이다. 자주 이동하며 여러 호텔, 식당을 전전하다보니 물리 연수가 아니라 호텔과 식당 연수를 하게 된 것 같다.

22:00. 호텔 식당서 저녁 식사. 연수 막바지에 들면서 서로가 피곤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탓인지 오늘 예에서 보듯 여러 가지로 독일 측과 마찰이 많다. 독일 쪽에서는 통역인 정 교수를 못 믿겠다고 우리들과 직접 대화로 일정을 진행하겠다고 한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며칠 남지 않은 연수의 끝을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9/21/94 수 맑음

9:30. 기쎈 대학으로 이동. 출발 시간이 30분 앞당겨 지면서 작은 소동. 정교수는 독일 측이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그런다는데 서로간의 감정이 너무 대립되어 있다.

10:00. “Transport mechanism in solids" Prof. Schwarz

11:30 "Physics education" Prof. Kuhn

쿤 교수는 독일 물리 교육계의 거장이라고 한다. 정교수의 표현대로라면 자신이 통역을 맡는 것도 영광이라고 하는데, 그러나 강의 내용과 명성은 비례하지 않는가 보다.

13:00. 대학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당으로 걸어가는 내내 쿤 교수와 우리 버스 기사가 나란히 걸으며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다. 직업의 구별은 있지만 차별이 없는 사회, 아직은 우리보다는 독일이 앞서가지 않나 생각된다. 또 하나 항상 느낀 것이지만 이 곳에 주차한 차들을 보니 그 흔한 오토매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이 스틱 기어인데 여기서도 독일인의 실용주의적인 면을 볼 수 있다. 편의성보다는 견고함과 경제성을 우선하는 저들의 사고방식, 세계 정상급의 소득 수준에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성이 부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14:00. 리비히 박물관을 방문하다. 화학 시간에 리비히 냉각기라는 기구로 교과서에서 본 과학자이다. 1803년에 태어난 리비히는 21세 때 기쎈 대학의 교수로 있으면서 이 곳을 세계 화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은퇴한 노교사가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는데 내용에 대한 관심보다 성의가 미안해서 전시실을 따라 다니다. 4주째 대하는 이런 내용들에 이젠 지쳐가는 느낌이다. 연수 일정이 6주에서 4주로 줄었을 때 실망이 컸지만 여기 와서 생활해 보니 그렇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모두가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휴식 없는 빡빡한 일정이 더욱 그렇게 만드는가 보다.

16:00에 관람이 끝나고 짧은 자유 시간이 주어져 L선생과 시내를 돌아보다. 도중의 맥주집에서 한 잔하다.

19:00. El Gaucho 식당에서 저녁 식사.

호텔로 돌아오니 방 청소가 안 되어 있다. 카운터 아가씨에게 얘기하니 왜 그리 못 알아듣는지, ‘My room is not cleaned'라고 적어 주어도 모르겠다고 한다. 방에 데리고 가니 그제야 I am sorry를 연발한다. 그 후에 이 아가씨 날만 보면 Sorry인데 그 소리도 너무 들으니 도리어 내 쪽에서 미안해진다. 빌린 커피포트로 라면을 끓여 먹다.



9/22/94 목 맑음

9:00. 기쎈 대학으로 이동.

9:30. 기쎈 대학 물리 연구소 방문.

“Ion engines in space" Dr. Freisinger

"Industrial applications of ion engines" Dr. Groh

11:30. 반데그라프 가속기와 이온 발생 장치 견학. 미래의 우주선 추진 장치라 관심이 많았는데 잘 이해되지 않는다.

13:00. mensa에서 점심. 식당 앞에서 한국 여자 유학생을 만났는데 이 아가씨는 우리와 헤어지기가 아쉬운지 버스까지 따라온다. 이국의 기숙사 생활이 얼마나 외로울까? 나이든 몇 몇 사람이 자기 딸 생각이 났는지 짐 속에서 고추장, 반찬 등을 꺼내주니 아주 고마워한다. 뒤스부르그에 있는 교민 가게에 전화하여 쌍둥이 칼 여러 자루를 신청해 놓다.

14:00. 뒤스부르그로 출발. 요 며칠간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햇빛이 비치고 바람도 불지 않으니 서늘한 감도 많이 가시다. 뒤스부르그로 가는 것이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

16:30. 2주간 묵었던 Haus Friedrichs 호텔에 도착. 은행에서 마지막 남은 200DM T/C를 환전하다. 저녁 식사 때 보른 충장이 찾아오다. 이 분의 말은 언제나 구수하다. 자신의 저서를 한 권씩 기념으로 준다. 이제 이틀 밤만 자면 길었던 연수 일정이 다 끝나는데 먼 이 곳까지 찾아와서 그간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배웠는지 아쉽기만 하다. K선생이 맥주 한 잔 하자는 걸 쉬고 싶어 사양하다. 밤늦게서야 신청한 칼이 도착하다. 중간과 작은 크기의 15자루를 230DM에 구입. 이로써 선물 준비도 대체로 마치다.


9/23/94 금 맑음

귀국 하루 전이다. 돌아갈 준비도 해야 하고, 오늘은 자유 시간을 주었으면 좋으련만 우리의 희망 사항일 뿐, Soest로 이동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다. 교통 체증이 예상된다며 계획보다 1시간 빠른 7:30에 출발.

9:10. Nordrhein-Westfalen주의 교사 재교육 기관에 도착.

10:00. “New ways of teaching physics" Mr. Langensiepen

독일 교육의 문제점을 얘기하는 것 중에 독일 사회의 종교 부재 현상이 관심을 끈다. 물질의 풍요가 종교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져 현재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 수는 독일 전체 국민의 2.8%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전 유럽이 마찬가지일 텐데 겉으로는 기독교 국가이나 실제로는 대부분이 일년에 한번 교회에 나가는 크리스마스 신자라는 것이다.

12:00. 구내식당에서 점심. 자체 교육을 받고 있는 독일 교사들로 식당이 가득하다. 도서실에 들러 물리책을 열람하다. 그 중 한 교과서의 광학 부분을 복사해 오다. 개방식 도서실에 복사기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 참 좋다.

13:00. "Computer aided formation of models and simulation in teaching physics" Mr. Dönhoff

16:00. 소에스트의 옛 시가지를 돌아 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건물들이 잘 보존되고 있다. 옛 성곽 밖으로 파놓은 해자에는 지금은 물 대신 수목이 울창한 공원이 잘 만들어져 있다. St. Maria 성당 외벽은 지금 수리중인데 공사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첨탑 끝까지 올라가 시내 전경을 구경하다. 붉은 지붕의 주택들이 참 아름답다.

18:00. St. Petri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를 감상하다. 우리를 위해서 특별히 연주자를 초대해준 성의가 고맙다. 약 30분간 오르간 선율에 젖다. 독일에서의 마지막 저녁으로 분위기 만점.


19:00. 뒤스부르그로 출발.

20:00. 서울 식당에서 독일 측과 마지막 만찬. 보른 총장 이하 관계자들, 김나지움의 교장들이 참석하다. 총장의 유머러스한 환송사와 우리 측의 기념패 증정, 선물 증정 등의 순서가 있었다. 오랜만의 한식이라 음식과 맥주를 포식하다.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교차한다. 호텔로 돌아오니 밤 11시. 호텔 사정으로 방을 독실로 옮기다. 마지막 밤을 홀로 지나게 되는구나. 모두들 피곤하여 서로 회포를 나눌 여유도 없다. 1시에 잠자리에 들다.



9/24/94 토 맑음

드디어 귀국하는 날이 밝아오다. 일정표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말, ‘Fleight back to Korea’ 하는 날이다. 나의 가족이 있는 우리나라로 향하는 심정은 마치 어린 아이의 어머니 품을 향한 감정과 같은 것이리라. 오전의 짧은 자유 시간. 백화점에 나가 아내의 핸드백과 아이들의 학용품을 구입하다. 그리고 짐 싸기. 여러 자료와 책 때문에 올 때보다 가방의 무게가 더 나간다. 저울로 달아보니 23kg. 사람들이 25kg를 오버하지 않으려고 저울을 들고 이리 저리 부산하다.

13:00. 뒤스부르그에게 아듀. 나의 첫 해외여행으로 인연을 맺은 도시여, 아듀. 다시 유럽에 오는 날, 꼭 한 번 들러 이 때를 기억해 보리라.

14:00. Düsseldorf 공항에 도착하여 독일 측과 환송 인사.

17:50. Lufthansa 편으로 Düsseldorf 공항 출발. 기내에서 저녁 식사.

18:55(영국시간 17:55). London 히드로 공항 도착. 면세점에서 몇 가지 물품들을 마지막으로 구입하다. 서울에서 마련해온 120만원을 다 쓰고 주머니에는 동전들만 남아있다.

19:40. KAL KE908편 탑승, 히드로 공항 이륙.

자리에 앉으니 좌석만큼이나 마음도 편안하다. 그리고 한 달간의 독일 생활을 돌아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독일의 동서남북 전국을 순회하며 보고 느낀 것들, 배운 것들, 만난 사람들. 특히 잊을 수 없는 독일의 맥주 맛. 또 맥주 맛에 못지않게 인상 깊었던 독일의 국민성과 그들의 삶. 이렇게 우물 안 개구리의 첫 나들이는 새로움에 대한 작은 충격들로 이어졌다고나 할까? 이번 기회를 마련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한국 시간 9/25 17:20. 김포 공항 도착.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일  (1) 2010.03.06
보신탕  (1) 2010.03.01
1994 독일 연수기(1)  (0) 2010.02.22
좌측통행  (0) 2010.02.17
은퇴하면 10년이 젊어진다  (3) 2010.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