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1994 독일 연수기(1)

샌. 2010. 2. 22. 13:11

1994년에 전국의 과학 교사 40 명이 독일로 연수를 다녀왔다. 그해에 시작된 과학 교사의 해외 연수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운 좋게도 1차에 참가할 수 있었다. 처음 두 주 동안은 뒤스부르그 대학에서 연수를 받았고, 나머지 두 주 동안은 독일의 동서남북을 순회하며여러 시설들을 견학했다.그리고 주말에는 파리와 네덜란드 관광도 했다.나로서는처음으로 해외에 나가는 경험을 했으며 선진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실제로 과학 연수보다는 독일이라는 나라의매력을여러 방면에서 맛 본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그때 함께 했던 동료들이 처음에는 모임을 갖다가 지금은 흐지부지 되었다. 10년 뒤에 다시 독일을 가기로 했는데 역시 뜻대로 되지 못했다. 그때의 일기를 보며 아련히 추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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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94 토 맑음

어제까지만 해도 설레던 마음이 오늘은 차분해 진다.

9:00. 동생 차편으로 공항으로 출발. 아내와는 집 앞에서 헤어지다. 공항까지 못 나오게 한다고 몇 번씩이나 투정을 부리지만 어디 가까운 거리여야지 괜한 일로 아내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

10:30. 김포공항 도착. 국제선 2호 청사에는 벌써 여러 사람들이 나와 있다. 우주여행사로부터 여권 및 100만 원에 해당하는 마르크화와 달러를 받다. 추가로 20만 원을 마르크화로 환전하여 총 120만 원을 가져가는 셈이다. 개인 여행을 불허한다고 하니 이 정도면 넉넉하리라.

12:10. 게이트 앞에서 탑승권을 받고 출국. 몇 개의 검사대를 거쳐 면세점에서 필름 2통을 추가로 사다. 달러로 필름값을 지불하니 마음은 벌써 해외에 나가있는 것만 같다.

12:40. 런던 행 KE907(KAL B747-400)에 탑승. 13년 전 신혼여행 때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본 경험밖에 없는 나에게 392인승 보잉기의 거대한 내부가 우선 놀라게 한다. 이 많은 사람들과 짐을 하늘로 띄워 올리는 추진력이 어떻게 그 간단한 비행의 원리로 얻어질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13:05. 김포 공항 이륙. 잠시 동안의 긴장이 지나니 비행기는 이내 한반도를 지나 일본 열도에 다가서고 있다. 몇 달 후면 중국과의 항공 협정이 체결되어 이렇게 빙 돌아 유럽으로 가는 낭비는 없어진다고 하니 다행이다. 지금은 냉전 시대의 마지막 비행 코스를 타고 있는 셈이다.

13시간 5분 동안의 비행동안 두 번의 식사와 두 편의 영화 상영. 그러나 지루함을 못 이기는 승객들에게 비행기에서 보여주는 삼류 영화는 더욱 짜증만 나게 한다. 여름 방학 때 에어 프랑스를 타고 유럽에 다녀온 후배가 비행기 내의 영화는 볼게 못 된다더니 이런 사정은 모든 비행기에 공통인가 보다. 그래도 끝없이 이어지는 시베리아의 너른 벌판이 우리를 감탄케 하고, 윙윙거리며 쉼 없이 날아가는 비행기의 힘이 따분함을 잊게 해준다. 한 잠을 자고나도 비행기는 아직 시베리아 상공을 날고 있다. 앞 화면에는 고도 10km, 속도 900km/h, 외부기온 -60도라는 것과 함께 런던까지의 남은 시간 및 거리가 지도와 함께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이런 정보가 그나마 답답함을 덜어준다. 스튜어디스로부터 엽서를 얻어 아내에게 편지를 쓰다. 옆의 사람들도 모두가 마찬가지인데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더해서 애처가도 되는 모양이다.

현지 시각 8/27 18:10 몇 번의 선회 끝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 거대한 공항 크기에 비해 건물들은 낡고 보잘 것 없다. 이런 것도 외양보다 내실을 중시하는 서구의 특징으로 볼 수 있을까? 버스를 타고 또 한참을 걸으며 Transfer로 이동하다. 긴 회랑을 따라난 평면 에스컬레이터가 이채롭다.

19:30. 독일 Lufthansa LH4051에 탑승. 작으나 아담한 비행기다. 우리 일행 외에는 전부 서양인들이다. 기내 방송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독어와 영어로만 나오니 어느새 이방인이 되어 버렸다.

19:55. 히드로 공항 이륙. 금방 저녁 식사가 나온다. 처음으로 독일 맥주 맛을 보다. 입맛이 없어서인지 씁쓸한 느낌뿐.

독일 시각 22:00. 1시간 만에 쾰른 공항(Cologne airport) 도착. 독일과 영국은 1시간의 시차가 난다. 밤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공항은 예상외로 조용하다. 우리 일행 외에는 거의 사람을 보기 힘들다. 밖에 나서니 이슬비가 먼저 반긴다. 비 오는 밤의 외국 공항. 옆의 젊은 남녀의 긴 포옹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계속 쳐다보기가 민망하다. 14개의 짐이 미도착. 내일 숙소로 보내 주기로 약속받고 버스 편으로 뒤스부르그(Duisburg)로 이동하다.

23:55. 숙소인 Haus Friedrichs Hotel에 도착. 3층 301호에 배정받다. 2인용 방인데 간이침대를 놓아 3인용으로 꾸며 놓았다. Y선생, K선생과 같은 방을 쓰게 되다. 독일은 우리와 달리 맨 아래층을 0층이라 부른다. 따라서 우리 식으로는 4층에 묵고 있는 셈인데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지 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습관이 되면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밤 12시 지나 아래 식당서 전체 모임을 갖다. 단장 인사. 독일 측 연수 운영자인 샤만(Scharmann)씨와 타냐(Tanya)양 소개. 호텔 지배인의 인사. 그리고 간단한 식사. 방에 돌아와 TV를 켜니 포르노 영화가 쇼킹하다. 공공 전파를 타고 이런 내용이 방송되어도 괜찮은지 의아하다. 피곤하여 바로 잠자리에 들다.




8/28/94 일 맑음

8:00. 기상. 장시간의 여행으로 피곤할 터인데 외국 생활에 대한 긴장감 때문인지 예상외로 몸이 가뿐하다. 커튼을 여니 바로 앞이 기차역이다. 역에는 도착하고 출발하는 열차들로 분주하다.

9:00. 호텔에서 첫 아침 식사를 하다. 딱딱한 빵과 버터, 우유, 주스, 계란 등인데 내가 싫어하는 종류만 모아 놓은 것 같다. 먹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억지로 삼켜야 하는 신세가 되다. 요구르트도 입맛에 맞지 않는데 꿀을 섞으니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식사뿐만 아니라 식수도 걱정되는데, 유리병에 담긴 식수란 것이 탄산수여서 영 마시기가 거북하다.

12:00까지 자유 시간. 몇이서 뒤스부르그역과 주변을 돌아보다. 작은 도시 같은데 역 규모는 꽤 크다. 슈퍼에서 그림엽서 몇 장을 사다. 우여곡절 끝에 50 DM짜리 전화 카드를 사서 집에 안부를 전하다. 도시의 첫 인상은 무척 깨끗하고 질서 있다는 것. 도로마다 설치된 자전거 전용로도 인상적이다. 특히 자동차들의 운행 모습은 충격적이다. 횡단보도 앞 정지선을 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2, 3m 전에서 대기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위반에는 완전히 무감각해져 있는데...


12:30. 인근 빌딩 16층에 있는 중국 음식점 Lotus Garten에서 뒤스부르그 대학의 Born 총장 및 조교들과 인사. 총장의 소탈함이 또한 인상적이다. 음식점의 중국 여종업원을 보니 같은 동양인으로서 무척 반갑다. “China or Taiwan?"이라고 물으니 China란다. 그러나 사회주의 중국에서 어느새 여기까지 진출했는지 의심스럽다.

14:00. 여러 대의 택시에 분승한 일행은 내륙 항으로서는 세계 최대라는 뒤스부르그항에 가서 유람선을 타고 라인강을 오르내리며 관광하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현장인데 강 지류를 따라 유난히 높은 공장 굴뚝들 외에는 특별한 경치는 없다. 다만 공장 지대인데도 강변은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맥주를 마시며 차가운 강바람을 즐기는 남녀노소 독일인들의 평화로운 모습은 한강 유람선의 풍경과 비슷하다. 강바람을 피해 선내에 들어가 K선생과 맥주 한 잔씩 하다. 맥주를 나르는 아가씨가 무척 친절하다.

17:00. 전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다. 전차는 도로 가운데로 다니는데, 전차가 정지하면 타고 내리는 승객들을 위해 자동차들이 전차 뒤쪽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는 모습도 새롭다. 어떻게 저리 잘 훈련되어 있는지 무서움마저 든다.

19:00. 이태리 식당 Costa Azzura에서 저녁 식사. 주문한지 1시간 30분이 되어서야 음식이 나온다. 이럴 때는 한국 생각이 절로 난다. 그래도 독일 사람들은 태연작약이다. 이 사람들은 식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다리기 위해, 얘기하기 위해 음식점에 들어오는 것 같다.

불행히도 나온 음식조차 대부분의 식탁에서는 입맛에 맞지 않아 거의 못 먹다. 다행히 우리 식탁에서 시킨 스파게티 종류는 그런대로 괜찮아서 접시를 다 비우다. 모두들 음식에 대한 불평이 대단하다. 독일 측에서는 가능하면 여러 나라 음식을 맛보여 주기 위해서라는데 해외에 나왔으니 여러 경험을 위해 이 정도는 참아야 하지 않을까?



8/29/94 월 갬

뒤스부르그 대학에서 강의가 시작되다. 대학까지는 전차(지하철)로 이동하는데 호텔 옆 지하역(HBF역)에서 전차를 타면 세 번째 정거장인 Zoo/Universität역에서 내리면 된다. 전차는 지하와 지상 선로를 달리는데 2-3량만 연결된 소규모이다. 좌석은 우리나라 좌석버스 식으로 되어 있고 출근시간인데도 앉아 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 마치 유원지에서 꼬마 기차를 탄 것처럼 기분이 좋다. 독일의 전차나 버스는 티켓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승객의 양심에 맡기고 자유롭게 오르내리는데 간혹 외국의 배낭여행족들이 무임승차하다가 적발되어 몇 십 배의 벌금을 무는 일이 있다고 한다.

9:15. 대학 총장인 Born교수의 인사말. 대학과 뒤스부르그시를 소개하다. 1655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지리학자 메르카토르를 기념하여 Mercator Universität로 부르기도 한다. 뒤스부르그는 독일의 철강 산업 중심지로서 전체 철강의 50% 정도가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인구는 54만으로 독일에서 11번째로 큰 도시이다. 독일 최대의 도시는 인구 200만의 베를린인데 한국과 같이 국가 기능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각 지방에 골고루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없다고 한다.

9:30. "Physics teacher education in Germany" Prof. Born

11:00. "Management of the section didactics of physics" Prof. Harreis

11:15 "Motivating low cost experiments in physics" Prof. Harreis

13:00. 대학 구내식당인 Mensa에서 점심. 점심 식사는 먹을 만하다. 고기 한 조각과 감자튀김, 야채 등인데 한국에서 먹는 양식과 비슷하다. 그 대신 물이 없고 자판기에서 콜라나 주스를 뽑아가서 마신다. 국제화가 되어서인지 무관심인지 우리들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다.

14:00. "Suprising home experiments" Prof. Treitz

16:00. "Deductive simulation as a tool for understading experiments" Prof. Treitz

첫 날 강의는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물리에 심취하여 즐기면서 하는 열강.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한 표정들. 물리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동원된 많은 장난감들. 강의에 사용되는 컴퓨터, OHP, TV, Camcorder등 다양한 기구들. 다른 교수나 조교들도 같이 참관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도 보기 좋고 총장, 교수, 조교 사이에 신분상의 거리감이 없는 자연스러움이 부럽다. 그러나 총장 강의에 앞자리에 앉은 여조교의 껌 씹는 모습은 우리 식으로라면 대단히 버릇없게 비친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본 이야기이다. 미국에 이민 간 한 학생이 교사에게 꾸중을 들을 때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더욱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어른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동양에서는 미덕이고 서양에서는 건방지게 비친다니 단순한 문화적 차이가 서로 간에 오해를 생기게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닐 듯싶다.

17:30. 호텔로 돌아오다. 아직은 길이 어두워 우리를 안내해 주는 타냐 뒤를 국민학생 마냥 따라 다닌다.

19:00. 호텔서 저녁 식사. 식사 후 Y선생, K선생과 셋이서 역전 거리를 돌아보다. 모든 가게는 문을 잠갔는데 내부 조명은 밝게 켜놓아 아이 쇼핑하기에는 좋다. 우리나라와 같이 셔터를 내린 가게는 없어 내부는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인적이 끊어진 거리가 덕분에 환하다. 절약이 생활화된 이 사람들이 밤새 불을 밝혀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텔 복도의 전등도 사람이 다니지 않을 땐 자동으로 꺼져 버리고, 지하철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도 사람이 없으면 저절로 멎어 버리도록 절전 시설이 잘 되어 있는데...

그리고 저녁 8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중심가에서 사람 보기가 힘들다.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인파로 뒤덮여 있을 서울의 거리와 너무 대조가 된다. 다만 드문드문 있는 맥주 집에서만 서너 명의 사람들이 맥주잔을 앞에 놓고 담소하는 모습이 들여다보인다. 우리 측 요청으로 금주 토, 일요일 일정이 취소되고 자유 시간을 가지게 되다. 하루도 쉼 없는 일정에 불만이 많았는데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인근 국가로의 여행 계획이나 세워 보아야겠다.


8/30/94 화 흐림

9:30. “Perpetuum mobile" Prof. Born. 신문 기자가 와서 강의 장면을 촬영해 가다. 후에 신문에 우리의 연수 장면이 크게 보도되다.

11:00. 시청 방문. 접견실인 Mercator room에서 부시장의 인사말. 뒤스부르그 대학에서 전자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정군이 처음 통역에 나서다. 중학교 때 이민 왔다는 그는 한국말이 서툴러 통역에 힘들어한다. 부시장의 길고 관료적인 인사말이 지루하다. 시청의 엘리베이터가 개방된 연속식인 것이 특이하다. 즉, 에스컬레이터식 엘리베이터라 할 수 있다. 시 의회 회의실에서 담당자로부터 의회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다. 시청 앞서 30분간의 자유 시간. 모두들 쇼핑하기 바쁘다. 의류 백화점에 들어갔더니 가죽 제품가격이 한국보다 싼 것 같다. 언제 와서 아내의 지갑이라도 하나 사야겠다. 한 낮이어서인지 거리에 사람들이 많으니 활기차 보인다. 오고 가면서 전차의 탑승 절차를 익히다.

13:00. Mensa에서 점심.

14:00. "Introduction into training; holography, Zeeman effect, Bragg reflexion, oscillation" Prof. Treitz. 영의 실험과 렌즈에서의 파면을 편광판을 이용하여 OHP로 보여주는 것이 흥미 있다.

같은 방을 쓰던 Y선생이 새 방이 나서 옮겨 가다. 넓은 방을 K선생과 둘이서 사용하게 되니 아주 여유가 있다. 창가로 테이블을 옮기고 한껏 기분을 내보다.



8/31/94 수 맑음

6:30. 아침 식사. 이젠 빵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다. 그러나 아직 잼의 단 맛 덕분으로 그 딱딱하고 맛없는 빵을 삼키고는 있지만. 그리고 물 대신 주스를 마시는 것도 자연스러워진다.

7:30. 버스 편으로 노이스(Neuss)로 출발. 잘 발달된 도로망이 부럽다. Neuss는 복합시로 인구는 44만. 땅이 비옥하여 2천 년 전인 로마시대부터 발달된 도시라고 한다. 1시간 걸려 RWE Energie AG사에 도착. 이 회사는 독일 최대의 전기 회사라 한다. 이 회사는 학교 교육을 위해 자료를 개발하고 교사 연수도 무료로 시킨다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말 그대로 산학 협동이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10:00. 노이스 기술 학교(trade and technical school) 방문. 우리 식으로는 공업 고등학교와 전문학교에 해당한다. 특이한 것은 학생들이 3일간은 회사에서 실습을 하고 2일만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학교는 전기 기술 분야에서는 독일 내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노이스 시장과 학교장의 인사말을 들은 뒤 실습장을 돌아보다. 역시 깨끗하고 멋진 시설들이다. 그러나 직접 학생들의 실습 장면을 보지는 못하다. 교정에는 담배꽁초들이 많이 눈에 띈다. 우리가 지나가기 전 청소를 시키는 것을 보니 손님을 의식하는 것은 동서가 마찬가지다. 또 시장의 인사말에서 한국을 경제 발전국으로 인식하고 있고, 포항제철 때문에 독일의 철강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데서는 가슴 뿌듯함을 느끼다.

12:00. RWE로 돌아와 점심. 회사에서 제공하는 음식이어서인지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모두들 맛있게 포식. 특히 흑맥주 맛에 완전히 매료되다. 말로만 듣던 독일 맥주 맛이 바로 이거구나! 병 라벨에 Frankenheim이라 적혀 있다.

13:00. 교외의 Neurath 호수에 있는 RWE 태양 전지 연구소 방문. Mr. Gross로부터 전반적인 설명을 듣다. 그러나 연구소라는 명칭에 어울리지 않게 시설이나 내용이 빈약하다.

15:00. Dormagen으로 이동하여 Knechtsteden 수도원 관광. 건물의 크기로 보아 옛날에는 꽤 번성한 듯한데 지금은 관광객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그나마 건물 일부에는 김나지움이 들어서 있다. 물질의 풍요는 종교의 쇄락을 강요하는 것인지, 지난 일요일 교회를 찾은 H선생이 미사 중인 큰 성당에서 할머니 몇 분밖에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 고장에서는 밀려난 기독교가 한국에 와서 지금 만개중인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의 이런 양적 팽창도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 것인지...

16:30. 뒤스부르그로 돌아오다.

18:00. 호텔에서 저녁 식사

19:00. 일행은 Bochum으로 이동하여 뮤지컬 Starlight Express를 보러가다. 피곤하여 호텔에 남다. 돌아온 K선생이 뮤지컬에서 너무 국수주의적 냄새가 난다고 경계한다.



9/1/94 목 흐리고 비, 강풍

6:30. 아침 식사.

7:30. Mülheim에 있는 Willy Brandt Schule Gesamtschule 종합 학교로 출발. 연일 빡빡한 일정으로 모두가 지쳐 있다. 제 시간에 집합은 잘 안되고, 독일 쪽에서는 우리가 시간을 안 지킨다고 불평이 크다.

8:50. 종합 학교 제 9학년 화학 수업 참관. 학생수 19명. 수업 내용은 별 특징이 없으나 학생수와 화학실의 시설은 참으로 부럽다. 칠판 중앙에 시범 실험 시설이 되어 있고 학생들 실험 테이블은 벽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데 일부는 위험 약품 취급시에 대비하여 유리 칸막이로 되어 있다. 이런 교실이라면 얼마나 멋진 과학 수업이 가능할까? Born 총장이 와서 우리들 기사가 난 신문의 복사본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제 12학년 물리 수업 참관. 학생수 7명. 교류의 진동수와 저항과의 관계를 알아보는 내용이다. 2명이 앞에 나와 대표 실험을 하고 나머지는 대형 전류계와 전압계로 그 과정을 지켜본다. 결과는 TP용지에 그래프로 그려 OHP로 보여주며 설명한다. 여기서는 어딜 가나 OHP가 보편화되어 있다. 실험기구들이 전체적으로 매끈하고 견고해 보인다. 또 수업 중에 분필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물 묻은 스펀지로 칠판을 닦는 게 특이하다. 그러니 분필 가루가 날리지 않고, 칠판도 깨끗하니 참 좋아 보인다.

10:40. 교장실에서 학교장, 교사들과 대화. 교장이 직접 커피를 날라 와서 따라주는 것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교장실 크기도 예상대로 작다. 이 학교는 학생수 870명, 교사 70명이며 물리 교사는 5명인데 주당 수업시수는 24시간 내외라고 한다. 대학에서 물리 교육 과정을 이수한 학생이라도 보수가 좋은 기업체로 나가려고 해 교사가 부족하다고 한다. 밖으로 나오니 교통안전 교육으로 교내가 축제 분위기다. 무대에서는 공연이 있고, 음식도 파는 등 여러 행사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일년에 두 번씩 교통안전 교육을 겸한 이런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교정은 낙서도 많고 깨끗하지 못하다. 시내 거리는 깨끗한데 교내는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와는 반대인 것 같다.

13:00. 에센대학으로 이동하여 mensa에서 점심.

14:00. 교사 양성 수업 참관하다. 3상 교류 모터에 대해 조사한 것을 발표하고 토의한다. 교수 연구실을 돌아보면서 교수들의 연구열이 대단함을 느끼다. 물리 교육의 방향이 이론 중심에서 생활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16:00. 대학 부설 CAI 교육 프로그램 제작소 방문. CD ROM 교재를 개발 중이라는데 컴퓨터로 보여주는 것이 우리 것과 대동소이하고 새로운 것이 없다. 일찍 호텔로 돌아온 까닭에 앞 은행서 TC(800DM) 환전하다. 집으로 엽서 부치다. 파리 여행 경비로 200DM 지불하다.


9/2/94 금 흐리고 비

K선생과 둘이 대학으로 가는 전철을 잘못 타서 다시 찾아가느라 20분 지각하다.

오전에 우리 조는 홀로그램 사진 제작을 실습하다. 조교들이 각 조를 맡아 설명은 전부 영어로 하는데, 다행인 것은 실험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짧은 영어 실력과 눈치로 겨우 겨우 이해하다. 각자 홀로그램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찍은 시계 사진이 가장 멋지게 나오다. 이론으로만 접하던 홀로그램 사진을 간단한 장치로 직접 촬영해 보니 모두들 좋아한다.

오후에는 Zeeman effect, Bragg reflexion, Computer assisted data acquisition에 대한 실험 및 설명이 있었다. 처음으로 15:40에 일찍 끝나다. P선생, K선생과 시청 앞으로 나가 eye shopping. 노상서 맥주를 한 잔씩 하는 맛이 좋다. 김나지움 책을 구하러 서점 직원과 대화를 시도했으나 서로 뜻이 통하지 않다. 영어 회화를 공부해 두지 못한 잘못을 탓할 수밖에.



23:20. 파리 행 야간열차로 뒤스부르그 출발. 컴파트먼트식 열차 한 방에 6명씩 들어가 의자를 당겨 펴 침대를 만들고 서로 교차해 자는데 너무 불편하다. 몸이 꼭 끼여 움직이기도 힘들고 상대방 발 냄새도 지독하고, 한국 같은 열차 좌석이 그립다. 가이드 하는 정군이 소지품을 조심하라고 겁을 줘 출입문도 잠그고 모두들 짐은 의자 밑에 감춰두다. 선잠을 자고 깨기를 반복하면서 고달픈 파리 행.


9/3/94 토 맑은후 비

6:30. 7시간 만에 파리 Nord역에 도착. 신세계에 대한 기대감인지 피곤한 몸에 다시 생기가 돈다. 역 건물이 역시 파리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건물 벽을 조각으로 장식한 것이 예술의 도시답다. 역 앞 환전소에서 60$를 288프랑으로 환전. 그러나 여행 안내소에서 호텔을 예약 받는데 무려 2시간 30분이나 걸리다. 아침 식사는 다른 사람이 준비해 온 식빵 한 조각으로 때우다.

익숙하지 못한 정군을 따라 지하철편으로 먼저 노트르담성당으로 가다. 도로에서 사진 찍기에 분주한 우리 일행을 보고 한 프랑스 젊은이가 웃으며 카메라 앵글에 담는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죽기 살기 식으로 사진 찍기에 분주한 모습들이 내가 보아도 완전한 코미디감이다. 70년대에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카메라 메고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초기 일본인들의 모습도 저랬을 것 같다. 시간은 짧고 볼 것은 많고, 그러니 관광 자체가 또 하나의 전쟁인 셈이다.

별 준비 없이 온 파리. 독일에서의 바쁜 일정이 전혀 마음의 여유를 못 갖게 했다. 전문 가이드도 없어 노트르담성당도 학생 시절에 본 영화 ‘노트르담의 꼽추’를 연상하며 건물 구경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주변에 있는 거리의 화가들이 눈길을 끈다. 옆을 흐르는 세느강이 생각보다 폭이 좁다. 이에 비하면 서울의 한강은 스케일에서는 정말 자랑할 만하다. 다시 지하철편으로 루브르박물관으로 이동. 안에는 시간 부족으로 들어가 보지 못하다. 다음 파리 여행을 위해 진수는 남겨두자고 자위해 본다. 그러나 루브르에 가서 건물 구경만 하고 사진만 찍고 왔다면 모두가 웃을 것 같다.

점심때 예약 호텔(Hotel Hausmann)로 찾아가 체크 인. 허름한 뒷골목 3류 여관이다. K선생, A선생과 한 방을 쓰게 되다. 새로 시설한 듯한 샤워실이 벽에서 툭 불거져 나와 있는데 세면대 옆에 낮게 붙어있는 변기 비슷한 모양의 용기의 용도는 끝내 알지 못하다. 공동 화장실이 각 층마다 있는데다 변기의 구조와는 다른 점이 많아 누구 하나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나중에 들으니 거기에 소변을 본 사람, 대변을 본 사람도 있고 발을 씻은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진실을 알고 나면 한바탕 웃음거리가 되리라. 점심 식사는 호텔 옆 멕시코 식당서 하다. 비쌀까봐 음료수로 와인을 못 시키고 주스를 시킨 사람들이 많았는데 계산할 때 보니까 주스가 와인보다 2배나 더 비싸다. 오렌지 주스 한 잔이 20프랑, 우리 돈으로 3천원이니 그들의 벌레 씹은 얼굴 표정이 재미있다.

개선문 행. 파리의 지하철 노선은 복잡하다. 13개 노선과 국철 5개 노선이 지나는데 파리장이라도 노선도가 없이는 다니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지저분하고 더럽다. 땅 속에까지 찾아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로 더욱 어수선하다. 지하철을 나서니 바로 개선문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더 웅장하다. 나폴레옹이 전승 기념으로 건설했다는데 안 쪽 벽으로는 수많은 군인들의 이름이 셀 수 없이 적혀 있다. 바깥쪽 벽에 붙은 조각상도 볼 만한데 규모의 거함과 함께 단순함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다. 우리의 독립문이 이것을 모델로 했다던가. 그리고 북한에서는 개선문을 본떠 지으면서 자존심 때문인지 높이 49m인 개선문보다 더 크게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럴 바에야 남의 것을 모방해 지을 것은 또 무엇인가. 다시 지하철로 에펠탑으로 이동. 샤이요궁에서 바라보는 에펠탑의 전망은 가히 일품이다. 기념엽서에 주로 나오는 사진이 이쪽에서 찍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가서 바라보면 거대한 철골 구조의 기하학적 형상밖에 없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행렬이 길어 올라가는 것은 포기. 자유 시간이 많아 탑 주변에서 느긋하게 보내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웃 나라지만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 전체적 분위기가 독일은 질서 있고 하드(hard)한데, 프랑스는 자유분방하고 소프트(soft)하다. 독일 여성들의 검소한 의복이 인상적이라면, 프랑스 여성들의 미와 멋 내기는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독일의 철저한 교통질서가 프랑스에서는 흐트러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의 눈동자는 공통적으로 너무나 선명하다. 갈색을 띄는 것 같기도 하고 푸른색을 띄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유리를 박은 듯한 그 눈동자는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유기체가 아닌 반짝이는 무기질 광물 같은 느낌. 그래서 그런지 서양 아이들을 보면 인형에 더 가깝게 보인다.

17:00. 맑던 하늘이 흐려지며 비가 내리기 시작. 시테섬까지 가는 유람선을 타다. 보슬비가 내리는 세느강을 오르며 고풍스런 주변 경치에 감탄하다. 역시 파리는 도시 전체가 관광 자원임을 실감하다. 후에 꼭 다시 와보고 싶은 도시. 강변에서 포옹하고 있는 연인의 모습도 정겹다.

호텔로 돌아오니 20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밖에 나가니 모든 가게와 음식점이 다 문을 닫았다. 30여분을 헤맨 끝에 겨우 중국집을 발견하고 만세를 부르다. 부산스럽게 왔다갔다하는 중국인 주인의 모습을 보는 것도 왜 그리 즐거운지, 딱딱한 서양 스타일은 정말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 훅 불면 포르륵 날아갈 것 같은 서양 쌀밥에 질린 우리들에게 이 집의 밥은 그래도 좀 찰기가 있어 두 그릇이나 시켜 포식하다. 고추가 들어간 양념장이 있는데 그걸로 밥을 비벼먹는 것을 보고 주인 아주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사실 더 매웠으면 좋았는데. 호텔에 들어오니 피로가 몰려온다. 와인이고 캉캉쇼고 그저 잠만 푹 자고 싶다. 일행 중 일부는 밖에 나가 추억을 남기려고 한 모양인데 아는 사람 없이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뜻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 샤워를 하고 단잠에 빠지다.




9/4/94 일 맑은 후 흐려짐

호텔 체크아웃. 3인실의 1인 부담액이 120프랑(약2만원)이다.

길 안내를 해주던 정군이 어제 밤 독일로 돌아갔다. 오늘은 베르사이유궁전 관광. 지하철 이용은 어느 정도 익숙해 졌으니 불어는 몰라도 일행들의 눈치 실력이면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 P선생이 적극적으로 리더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베르사이유궁전은 파리 시내에서 국철로 30여분 걸리는 거리에 있는데 궁전과 정원의 규모가 정말 대단하다. 옛 프랑스 왕조의 호사스러움을 알 것 같다. 궁전 내부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이것도 뒷날로 미뤄두니 마음 편하다. 옛날 민중을 착취해 지은 궁전, 원성이 자자했을 이 궁전이 지금은 프랑스에 달러를 벌어다 주는 보물단지로 변해 있다.

후에 본 책에는 베르사이유궁전 소개가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1662년 태양왕 루이 14세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큰 궁전을 짓겠다며 시작된 공사는 50년이 걸렸다. 늪지대를 메우고 나무를 옮겨 심고 강의 흐름을 바꾸는 대공사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밤낮없이 혹사당했다고 한다. 1682년 왕궁이 베르사이유로 옮겨지고 궁전에서는 반기를 들지 모르는 봉건 귀족들의 진을 빼기 위해 매일 밤낮으로 질펀한 파티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300ha가 넘은 광대한 정원은 루이 14세가 지극한 정성을 쏟은 것으로 공사 기간 중 매일 현장에 나와 간섭했다고 한다. K선생, R선생과 2시간 정도 산책하며 구경하다.

14:30. 파리 Nord역으로 돌아오다. 시간이 남아 K선생과 노트르담성당으로 나가 수채화 2점을 70프랑씩에 사다. 역 앞 맥도날드 가게에서 햄버거로 점심 겸 저녁을 때우며 파리 여행을 마감하다. 다음에는 아내와 함께 오고 싶다. 그리고 닷새 정도는 머물며 차분히 돌아보아야겠다.

16:32. 파리역 출발. 열차는 마찬가지로 8명 1실의 컴파트먼트식이다. 유럽에 이런 열차가 많은 것은 마차 문화의 영향이라는 설이 있다. 벨기에를 거쳐 22:30에 뒤스부르그에 도착하다.

이번 1박 2일의 파리 여행 경비는 다음과 같다. 기차비등 공동경비 210DM, 호텔비 120F, 식사 150F, 입장료 및 유람선 80F, 그림 220F. 합계 19만원.





9/5/94 월 비 후 흐림

대학으로 가는 길에 만난 국민학생들이 우리를 보고 손을 모아 합장하며 인사하는 시늉을 한다. 아마 동양인들은 모두 그런 식의 인사를 하는 줄 아는가 보다.

9:00. “Astronamy in school" Prof. Szostak 독일에는 지학 과목이 없고 물리에서 지학 내용을 다룬다고 한다. OHP를 이용한 별자리 설명이 흥미롭다. 편광판을 이용하여 여러 색깔을 내고 별 빛을 반짝이게 하는 등 아이디어가 아주 기발하다. 기구들을 판매하는데 값이 비싸 망설여진다.

11:00. “The problem of teaching the origin of seasons" 빛을 받으면 색깔이 변하는 지구본으로 계절 차이를 직관적으로 설명.

13:00. mensa에서 점심

14:00. "Tracing the solar path above horizen"

16:00. "Measuring the excentricity of the terrestrial orbit by simple means"

오후 강의를 대부분이 지겨워하는데 나에게는 굉장히 흥미 있었다. 노교수의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치지 않고 하는 진지한 강의가 존경스럽다. 두 주째 들어서면서 여기 저기 불만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약간의 마찰도 생긴다. 통역으로 따라온 교원 대학의 정 교수가 수고는 하지만 그의 말투나 태도 때문에 뒤로는 좋지 않은 소리가 들린다. 그는 이 곳 뒤스부르그 대학에서 5년간 유학한 사람인데 이번 우리 일정과 프로그램을 독일 측과 상의하여 작성한 장본인이다. 또 독일 측에 대해서는 융통성 없는 빡빡한 일정 운영이 원성의 대상이다.

저녁 식사는 한국 식당에서 할 예정이어서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출발 시간을 착각하여 일행을 놓쳐 버리다. K선생과 둘만 남아 난감해 하는데 다행히 호텔 안내양이 시내 한식당들을 전화번호부로 조사해 주어서 아리랑 식당임을 확인하고 물어물어 찾아가다. 오랜만에 보는 김치, 쌀밥에 모두들 뿅 가다. 한국 식당이라고 한국 흉내를 내는 건지 음식이 나오면 앞에서 차지해 버리고 무질서의 극치를 보이다. 얼마나 “여기, 여기” 외치는 소리가 많았으면 타냐 양이 이 말을 배워 우리 일정이 끝날 때까지 심심하면 “요기, 요기”하면서 웃는다. 확실히 한국인의 조급성은 독일에 와보니 더욱 드러나 보인다. 하여튼 나도 김치로 밥 한 그릇, 생선찌개로 또 한 그릇을 비우다. K선생과 아이 쇼핑하며 천천히 돌아오니 23시. 이번 주 토요일도 자유시간을 준다는 소식이 반갑다. 세 번째로 집에 보낼 엽서를 쓰다.


9/6/94 화 흐리고 비

9:00. “Energy bands in solid ststes" Prof. Harreis

11:00. 대학의 audio visual media centre 방문.

13:00. mensa에서 점심

14:00. presentation of audiovisual production

오늘 내용은 가장 실망스럽다. 11시부터 17시까지의 미디어 센터 방문은 아무 내용이 없는 것으로 시간이 아까웠다. B선생은 지루하다며 먼저 돌아가다. 호텔로 돌아오며 H선생과 우체국에 들러 엽서 부치다. 아이들에게 줄 독일 우표를 종류대로 사려다 대화가 통하지 않아 포기하다.

207호에 가서 맥주를 하며 주말 네덜란드 여행 계획을 세우다. 8명 정도가 교민 한 분을 가이드로 해서 가게 될 것 같다. K선생과 호텔 아래 바에서 맥주를 3잔씩 하다. 여기서는 안주가 없는 대신 맥주 값은 비싼 편이다. 흑맥주를 Alt bier라고 부른다는 걸 처음 알다.

독일 생활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것이 호텔의 샤워 시설이다. 대체로 모든 시설이 탄탄하고 실용적으로 되어 있어 독일놈들 대단하다고 우리를 감탄케 하는데 이 샤워 시설은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 욕탕이 없는 것이나(고급 호텔에만 욕탕 시설이 되어 있다고 함), 화장실 바닥에 배수구가 없어 물을 흘리면 안 되는 불편이야 감수를 하겠는데, 물이 밖으로 나갈까 봐 커튼을 치고 하는 샤워실이 너무 좁아 몸을 돌리기도 불편하다. 몸을 움직이면 물 묻은 커튼이 몸에 달라붙어, 매일 하는 샤워 시간이 영 편치 못하다. 후에 돌아 본 다른 호텔들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덩치 큰 저네들이 샤워실은 왜 이리 답답하게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


9/7/94 수 흐린 후 비

8:45. Remscheid-Lennep로 출발. 마침 타냐 양이 옆 자리에 앉아 기념으로 우리나라 500원 짜리 동전을 선물하다. Beautiful! 이라며 아주 좋아한다. 단장 이하 몇 명이 어제 사우나탕 다녀온 얘기로 웃음. 독일의 사우나탕은 남녀 혼욕이라 좋은 구경에 대한 자랑이 대단하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잘 발달된 도로망에 다시 감탄. 거미줄같이 얽힌 고속도로가 어디를 가더라도 불편이 없게 되어 있다. 주행선, 추월선을 철저히 지키는 차들의 운행에서는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날씨가 조금만 흐려도 거의 모든 차들이 라이트를 켜고 운행한다. 어지간해서는 야간등을 켜지 않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또 여기서는 클랙슨 소리를 들을 수 없다. 하여튼 교통에 관한한 선진 모범국임에 틀림없다.

9:45. Lennep 도착. Röntgen 박물관 견학. 뢴트겐은 1845년 이 곳에서 태어났으며 X선을 발견한 공로로 1901년 노벨 물리학상을 최초로 수상했다. Hennig 관장으로부터 뢴트겐의 생애와 박물관 시설 안내를 받다. 그의 명성답게 체계적으로 잘 꾸며놓았다. 그 중에서 자동차 전체를 X선 촬영한 것이 있는데, 그 사진을 찍는데 자동차 값보다 더 비싼 경비가 들었다는 관장의 설명이 재미있다. 또 뢴트겐이 젊은 시절 찍었다는 풍경 사진들이 1800년대였던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수준이다.

12:30. Cafe Grah에서 닭고기 카레라이스로 점심. 거리 산책을 나갔더니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12시에서 14시 까지는 점심시간이므로 폐점한다고 한다. 부지런한 한국사람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또 18시면 완전히 문을 닫는데 그렇게 장사해도 돈을 벌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우리 머리로는 그저 불가사의할 뿐이다.

14:00. 빗속을 국교 교사인 Schtein씨의 안내로 Lennep 시내를 관광하다. 작지만 고풍스럽고 깨끗한 도시이다. 보도는 원형 물결무늬로 잔 돌이 깔려있고 건물 벽은 검은색 점판암을 사용한 게 특이하다. 집집마다 베란다 창문을 꽃으로 장식하여 도시 전체가 장중한 느낌을 주면서 매우 아름답다. 그러나 빗속에 두 시간 동안 걸어서 돌아다니니 모두 지치다. 일정표대로 정확히 16시에 안내를 마친다. 뢴트겐 생가 말고는 별로 우리들의 관심을 끌만한 것은 없는데. 지금까지 경험한 대로 예외 없는 독일인의 철저함에 모두들 질리다.

16:00. Klostergasse에서 커피와 간식. 모두들 피곤해 빨리 호텔로 돌아가 쉬고 싶어 한다. 18시 출발 예정에 대해 모두들 불평이 대단하다. 비가 와서 밖에는 나가지도 못하고 커피숍서 2시간 동안 갇혀 있다.

17:50. 뒤스부르그로 출발.


9/8/94 목 흐리고 비

9:00. "Theoretical and practical foundations of electrophotography" Prof. Szostak.

electrophotography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했는데 오전 내내 복사기의 원리에 대한 강의였다. 그러나 간단한 도구로 복사를 해서 보여 줌으로써 원리를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13:30. mensa에서 점심. 자판기에서 뽑아 온 환타 병에 찌꺼기가 잔뜩 들어있다. 한국 환타는 이렇지 않은데 독일 환타는 이런 종류도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불량품인지 헷갈린다. 겁이 나 반밖에 먹지 못하다. 반벙어리로 지내니 답답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15:00. Prof. Kleemann의 Institute for applied physics 방문. 3군데 실험실을 잠깐씩 돌아보다.

16:30. "Modern physics in everyday life" Prof. Pflug. 온갖 장난감을 동원해 현대물리 쪽을 설명하려 애쓰다. 강의가 독불장군식으로 통역이 끼어들 틈도 없이 혼자서만 쉴 틈 없이 지껄인다. 습관이 그런지 건의를 해도 변화가 없다. 그러나 내용도 지나치게 소도구를 사용해서 물리학을 위한 장난감인지, 장난감을 위한 물리학인지 모르겠다고 K선생과 농담하다.

18:00. 대학 앞 식당 Lindenwirtin에서 저녁 식사. 밖의 빗소리가 요란하다. 독일의 비는 이슬비만 있는 줄 알았더니 오랜만에 비다운 비를 보다. 이 곳 날씨는 우리나라보다 한 달 정도는 더 빠른 것 같다. 특히 비가 오고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한국의 늦가을 날씨를 연상시킨다. 가져 온 반소매 옷은 꺼내 보지도 못하겠다. 역의 슈퍼에 나가 식수와 캔 맥주 4개를 사와 K선생과 나눠 마시다. 500cc 1개에 1.65DM, 가게에서 파는 맥주 값은 한국보다 싼 편이다.


9/9/94 금 비

8:00. Hürth로 출발.

9:10. Leybold Didactic사 방문. 이 회사는 독일 유수의 과학 교구 제작 회사이다.

9:30. 2개조로 나누어 생산 현장 견학 및 기자재 사용 실험 견학. 흰 머리의 노인 기능공이 선반을 다루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공장이지만 분위기가 사무실처럼 깔끔하고 잘 장돈되어 있다. 전자 회로 기판을 완성해 나가는 여자 기능공의 능숙한 손놀림은 우리의 산업 현장을 연상시킨다. 생산 제품들이 탄탄하고 뒷마무리가 잘 되어있는 느낌이다. 빛의 성질을 설명할 수 있는 광학세트는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탐스럽다.

13:00.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

14:30. Köln 시내서 자유 시간 1시간. 사람들은 우르르 쾰른대성당을 보자고 달려간다. 16시부터 시내버스 투어 관광이 예정되어 있는데도 미리 안달을 하는 모습들이 마땅찮다. K선생과 라인강변을 따라 느긋이 산책하다.

16:00. 쾰른 시내버스 투어. 영어로 가이드를 해서 잘 알아듣지를 못하다. 그러나 로마 시대의 유적이랑 고건물들이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의 식민지에서 유래된 것인지 쾰른을 Cologne라고도 부른다. 쾰른성당의 위용은 정말 대단하다. 쾰른 시내 건물 중에서 단연 압권이다. 1200년대에서 1800년대까지 600여년에 걸쳐 지었다는 사실도 놀랍고, 도저히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크고 정교하다. 특히 강 건너 Hohenzollern교에서 건너다보는 성당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17:00. 자유 시간. 모두들 쇼핑하러 우르르 몰려간다. 일행에서 빠져 홀로 성당에 들어가다. 마침 성가대의 합창이 있어 내부의 장엄한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의자에 앉아있으려니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그 육체는 왜소하지만 인간 정신의 위대함은 성당의 첨탑 끝만큼이나 높아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또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한쪽 편 어디에선가 미사 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성당 안 대부분은 관광객이 차지하고 있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종교의 쇄락. 이 큰 성당에서 느끼는 허전함이 이제 영세 준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도 무척 아쉽게 느껴진다. 수첩에 몇 자 적어본다.

‘한 쪽 구석에서 미사 드리는 소리가 허전하다./ 옛 사람의 거대한 꿈은 어디로 사라지고/

이젠 관광객에게 자리를 넘겨줘/ 오르간 파이프의 울림도/ 신의 찬양이 아닌 종교의 조종

소리인 듯 하다./ 그러나 높이 선 돌기둥 하나하나에/ 불멸의 인간 정신이 쌓여 있거늘/

세속에 물든 우리들/ 겸허히 고개 숙여야 하리라./ 지극히 높은 것에, 그 절대 진리에/

19:00. 성당 앞 Alt Köln에서 저녁 식사. 분위기가 무척 자유스럽다. 모두들 맥주를 몇 잔씩 비우다.

21:00. 뒤스부르그로 출발.



9/10/94 토 갬

7:30. 교민 한 분을 가이드로 해서 일행 8명(김묵환 단장, 김상철, 김우경, 전병길, 김용숙, 김화영, 전건호)이 봉고차를 타고 네덜란드 관광에 나서다. 회비는 200DM. 북해에 면한 국토의 약 40%가 바다보다 낮은 나라. 고속도로를 따라 40분 정도 지나서 국경 통과. 그러나 국경을 나타내는 아무 표시도 사람도 없고 차량들도 그냥 프리 통과다. 아무리 유럽이 한 나라같이 생활한다지만 이렇게까지 개방되어 있는 것은 의외이다. 이에 비하면 같은 동족인 남과 북이 몇 겹의 철조망으로 서로를 갈라놓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

맑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소나기가 내린다. 걱정도 잠시 금방 또 해가 나고, 또 비가 오고 하기를 10여회나 반복한다. 날씨가 변덕스럽다더니 정말 대단하다. 고속도로를 따라 끝없이 계속되는 푸른 풀밭이 부럽다. 거기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젖소와 양떼들. 매우 단조로운 풍경이지만 이국적이어서 그런지 신기하다. 몇 시간을 가도 언덕 하나 없이 한없이 펼쳐진 초원, 한국의 산악지대에 익숙한 우리 눈에는 육지 모양이 이럴 수도 있다는 게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


우선 헤이그에 도착하여 시내 공동묘지에 있는 이준 열사 묘를 참배하다. 이국땅에 잠든 열사 생각에 모두가 잠시 숙연. 묘는 잘 단장되어 있어 후손으로서 그나마 면목이 있다. 그러나 앞에 크게 서 있는 박대통령 친필 비석은 볼썽사납다. 이런 데까지 세워 놓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저네들의 공동묘지는 소문대로 잘 되어 있다. 시내에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니 언제나 찾아가기 쉽고, 한 무덤 안에 가족들이 밑에서부터 차례차례 묻힌다니 몇 대 조상들이 같은 데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우리도 본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점심은 암스테르담 근교 풍차 마을 입구에서 하다. 가이드 하는 분이 쌀밥에 김치를 푸짐히 싸와서 모두가 포식. 너무 먹어 J선생은 배탈까지 나다. 풍차 마을은 말 그대로 이제 네덜란드에서 사라진 풍차를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 풍차 3대가 실제 작동되는 것을 안에 들어가서 볼 수 있다. 바람이 세게 불기는 했지만 풍력에 의해 나무로 만든 거대한 톱니바퀴, 축들이 돌아가면서 연자방아를 돌리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건물 안 방앗간 규모가 엄청나다. 시간이 없어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지는 못하다. 여러 기념품 가게와 박물관을 둘러보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기념품 가게에서 로열제리 한 통을 81$에 사다.

암스테르담은 독일에 비하여 무질서하고 지저분하다. 교통 혼잡이나 주차의 어려움등도 서울과 비슷하다. 관광용으로 밖에 쓸모없을 것 같은 운하 때문인지 거리는 좁은데다 전차까지 다녀 더욱 복잡하다. K선생은 사람 사는 동네 같다며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한다. 거리에는 한국의 자동차들도 눈에 띈다. 주로 현대에서 나온 차들이다. 담 광장을 옆으로 돌면서 안네 플랑크의 집에 들리다. 30분 가까이 줄을 서 기다리다 입장했는데 안네가 2년 동안 숨어 지냈던 내부 구조가 당시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여유 있게 돌아보지 못해 아쉽다.

중앙역 앞에서 운하 관광 유람선을 타다. 꼬불꼬불 운하 길을 따라 1시간 동안 시내 관광. 안내 방송으로 나오는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의미는 모르고 고작 건물 구경에 그치다. 지난주의 파리에서 세느강 유람과 비교하면 풍경이 너무 초라해 그저 덤덤하다. 그리고 강변에서 마약 주사를 놓고 있는 남루한 사내의 모습이 충격적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마약까지 자유라니 우리 수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배에서 내리니 탈 때 한 사람 한 사람 찍은 사진을 어느새 엽서로 만들어 팔고 있다. 싸지 않은 값이지만 모두들 기념으로 좋다고 하고 사다. 암스테르담의 명물인 공창 거리를 구경. 얘기로만 듣던 Sex Shop도 눈요기하다. 허나 나 같은 동양인의 눈에는 성의 개방도 좋지만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저녁은 서울 식당에서 생선 매운탕으로 즐기다. 1인당 38DM이니 약 2만원으로 좀 비싼 편. 그러나 점심, 저녁 연속 한식에 너무 기분이 좋다. 식당에서 내준 한국 신문이 반갑고, 김포 공항을 떠난 후 처음으로 고국 소식을 접하다. 서울의 늦더위 소식에는 모두들 피서를 잘 왔다고 자위하다. 서울 식당의 주인장은 조금 특이하다. 외국 생활을 하면 애국자가 된다는데 독일 광부로 왔다가 정착했다는 그는 무슨 전력이 있는지 지나칠 정도로 한국 현실에 비판적이다. 물론 일부 정치 지도자들과 재벌들에 한정한다고 얘기하지만, 말 속에 고국에 대한 애정이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다.

밤에는 50DM로 Live Sex Show를 구경하다. 쇼 자체보다 쌍쌍이 들어온 관객들이 더 신기했고, 환호를 질러대는 우리 여고생 또래 아이들의 외침에는 그저 질릴 따름이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실감하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동양인 아가씨들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놀라운 표정으로 무대를 주시하던 -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관광길에 들렀을 그 쇼를 보며 그녀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뒤스부르그로 돌아오니 밤 12시. 친절한 가이드 덕분에 주마간산 격이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았다. 몰려오는 피곤한 포만감. 침대가 아늑하고 포근하다.




9/11/94 일 맑음

뒤스부르그에서의 2주간의 생활도 오늘로 끝이다. 이제 남은 2주 동안은 독일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연수를 받게 되어 있다. 지루해질 때 쯤 되어 이동하게 되니 모두가 좋아한다. 큰 여행 가방에 짐을 모두 챙기다. 우리를 안내할 독일 측의 피셔 양과 샤먼 군, 그리고 버스 기사가 2주 내내 우리와 동행한다. 아침에 집으로 전화를 하니 보낸 엽서를 모두 받았다고 한다. 더 쓰고 싶은데 우체국에 갈 시간이 없다.

9:00. 독일 북부에 있는 Kiel로 출발. 속도 제한이 없는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승용차들. 그러나 우리 버스는 절대로 시속 100km는 넘지 않는 것 같다. 안전 운전도 좋지만 우리 눈에는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휴게소 식당에서 점심 식사. 1인당 15DM씩 나누어줘 조별로 나누어 식사하다. 외국에서는 음식 주문할 때 가장 애로를 느끼는데 음식 내용도 모르고 말도 잘 안 통하니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뭔지도 모르는 것을 시켜 먹다.

Hamburg를 거쳐 15:30에 Kiel 교외의 Molfsee에 있는 Kuche Hotel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다. 시골 분위기가 나는 게 킬 시내에서는 많이 떨어져 있는 것 같다. 배정된 방은 침대가 셋 있는 3인용인데 K선생과 둘이서 사용하게 되어 아주 여유가 있다.

잠시 휴식한 후 버스 편으로 40분 정도 이동하여 해변가를 돌아보다. 킬 시민들의 해수욕장으로 이용되는 것 같은데 바다와 넓은 백사장을 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첫 인상은 역시 깨끗하다는 것, 우리나라의 바다하면 연상되는 지저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백사장에 놓여 있는 2인용 간이 방갈로의 모양이 특이하다.

뒤쪽의 주택가를 돌아보니 일요일이어서인지 집집마다 집을 단장하고 정원을 손질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이 여유 있고 평화로워 보인다. 계속 느껴 온 것이지만 작은 정원이 딸린 집들이 장난감같이 아름다워 저런 집에서 살고픈 욕심과 부러움이 떠나질 않는다. 덩치 큰 독일인들이 집을 아기자기 꾸미는걸 보면 그 체구와는 잘 조화가 되질 않는데, 어느 책에서 본대로 독일인의 취미는 차 닦고 집 단장하는 게 맞기는 맞는가 보다. 또 하나 독일 집의 특징은 그 형태가 다 비슷하다는 것이다. 2-3층 정도의 사각형 건물에 경사각이 큰 지붕, 같은 창 모양에 비슷한 색깔. 왜 개성 있는 다양한 주택이 나오지 않는지도 의문이다. 이것도 독일 국민의 전체주의적인, 또는 집단주의적인 국민성과 연결시켜도 될지 모르겠다.

동네 슈퍼에서 과도 5개를 선물용으로 사다.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나고, 그 소나기후 하늘에 걸린 선명한 쌍 무지개가 너무 아름답다. 서울에서는 이제 잊혀져 가는 건데..... 저녁 식사 후 호텔 아래 바에 맥주 한 잔하러 내려갔더니 사람 좋게 생긴 주인장이 기분이 좋은지 여러 나라 술을 맛보게 해 준다. 러시아주, 터키주, 덴마크주등.... 덕분에 공짜로 7-8가지의 술 맛을 즐기다. 그 중에서도 불을 붙여 먹은 술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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