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다녀왔다. 내려가는 길에 단양 사인암에 들렀다가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타고 죽령을 넘었다. 봄 색깔로 물든 산야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군데군데 차를 멈추었다.
우리 지방에서는 벚꽃이 이미 졌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벚꽃이 일부 남아 있어 신기했다. 올해 날씨는 꽃이 피는 순서도 그렇고 뭔가 뒤죽박죽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며칠 더 일찍 왔다면 어머니와 벚꽃 나들이도 가능했을 것 같았다.
다음 날은 어머니와 밭에 나가 고사리를 꺾고 산소를 정리했다. 작년 같았으면 밭 전체에 농사 지을 준비가 되어 있었을 터인데 올해는 힘이 부치시다면서 일부만 손을 보셨다. "딴 소리 말거라, 일 하고 싶어도 못 할 때가 온다"라고 늘상 말씀하셨는데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산소에 난 잡초를 뽑다가 어머니는 한 소리를 하신다. "아흔이 넘도록 조상 묘를 돌봐야한다니 이게 무슨 팔잔지 모르겠다." "어머니, 얼마나 감사한 거예요. 칠팔십 대인데 거동을 못하면서 요양원에서 지내는 분들도 수두룩해요." 속으로만 읊었지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했다.
밭 주변에는 우리 토종 민들레가 많았다.
따온 고사리는 끓여서 마당에 말렸다. 날씨가 궂어지더니 바람이 세게 불면서 저녁에는 황사비가 내렸다.
"테레비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인간시대'를 보면서 아침 식사를 하신다. 이어서 '아침마당'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와 함께 오전 시간을 보내신다. 낮에는 집안 청소와 밭일을 하고, 이웃으로 마실을 가신다. 가끔 회관에서 점심을 드시기도 한다. 저녁에는 '비밀의 여자' '금이야 옥이야'라는 일일연속극 두 개를 연달아 보신다. 나는 "저 나쁜 년!" 하면서 혀를 차는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는 게 더 재미있다.
어머니는 지난달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흔셋에 새로 교회에 다니신다니 내가 봐도 놀랍기만 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다니던 교회도 그만둘 때인데 말이다. 찬송가 책을 보여주면서 한껏 들떠서 설명하시는 모습이 감탄스러웠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도 했다.
마당 한 켠에 어머니가 심은 튤립이 환하게 폈다.
마침 고향에 내려간 날, 강남에서 집으로 제비가 돌아왔다(4월 10일). 작년에 처음 찾아와서 새끼 세 마리를 낳고 떠나갔었다. 두 마리가 요란한 소리로 지지배배거리면서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무척 반갑다고 환영의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제비는 귀소본능이 뛰어난 새다. 자신들이 지은 둥지를 정확히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자연계에는 신기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번에는 고향에서 돌아오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잘 이겨내시며 생활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자식으로서는 감사하기만 할 뿐이다. 어머니를 보면 삶의 관성이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미래의 내 모습은 지금 살아가는 내 삶의 자세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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