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122

새벽 전화벨 소리

새벽에 전화벨 소리가 잠을 깨운다. 방안은 온통 깜깜한데 가슴이 철렁한다. 수화기를 드니 고향에 계신 어머님이시다. 이젠 심장이 방망이질친다. ".....무슨 일이세요?" "응, 별 일 없나... 다음 주말에 전부 모여서 김장 하기로 했으니까 그 때 내려 온나..." 아이구..... 그렇다고 이 꼭두새벽에 전화를 하시다니..... 새벽 전화벨 소리는 너무 무섭다. 고향에는 96세 되신 외할머니가 계신다. 몇 년 전부터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서 함께 계시는 어머니가 무척 고생하신다. 금방 한 말도 잊어버려서 외할머니 옆에 있으면 똑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 우습기도 하지만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임종 소식이 올까 봐 늘 불안하다. 외할머..

길위의단상 2003.11.20

어머니의 송편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고, 어머니는 가마솥에서 떡을 찝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은 저의 몫이죠. 이내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구수한 떡 내음이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언제 느껴도 풍성하고 따스한 추석 풍경..... 그러나 세월은 많은 것을 떠나 보내고, 낡게 만들고, 지금은 어머니의 등마저 휘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어머니가 쪄 주시는 송편 맛을 볼 수 있을런지... 정다운 것과 만나는 기쁨 속에는 떠나 보내야 하는 슬픔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사진속일상 200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