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 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겨울밤 / 박용래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는 시다. 단 네 줄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애절하게 담아냈다. 고향을 떠나온 지 긴 세월이 흘렀고,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자주 찾아오는 나이가 되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년의 고향 집 겨울은 따스하다.
시인의 시대로부터 그리 많은 세월이 흐른 것도 아니다. 이제 그런 고향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찾아가지 못하는 고향이고, 누군가에게는 찾아가더라도 이미 사라진 고향이 되었다. 기억 속 고향과 현실의 고향은 괴리가 너무 깊다. 그런 불협화음이 우리를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하는 건 아닐까.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모두가 이방인이며 노마드일지 모른다. 밖에는 삭풍이 불고, 기억 창고 속 골동품은 먼지에 쌓여 삭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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