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공기를 가르며 날으는 새들의 날갯죽지 위에
첫차를 타고 일터로 가는 인부들의 힘센 팔뚝 위에
광장을 차고 오르는 비둘기들의 높은 노래 위에
바람속을 달려나가는 저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는 나그네의 저 지친 어깨 위에
시장어귀에 엄마 품에서 잠든 아가의 마른 이마 위에
공원길에서 돌아오시는 내 아버지의 주름진 황혼 위에
아무도 없는 땅에 홀로 서 있는 친구의 굳센 미소 위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수없이 밟고 지나는 길에 자라는 민들레 잎사귀에
가고 오지 않는 아름다움에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소녀의 겨울 밤차 유리창에도
끝도 없이 흘러만 가는 저 사람들의 고독한 뒷모습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 사랑일기 / 하덕규
2016년에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화제가 되었다. 대중가수가 노벨상을 받다니 순수문학을 폄훼하는 일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스웨덴 한림원은 음유시인인 밥 딜런의 노래를 '음률로 그린 시'라고 말하며 '노래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 양식을 창조해 냈다'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시보다 더 뛰어난 시적 감성의 노랫말을 가진 곡을 자주 만난다. 이 노래도 그중 하나다. 하덕규 씨는 '시인(市人)과 촌장'의 멤버로 많은 아름다운 노래를 직접 만들고 노래 불렀다. 대표곡인 '가시나무' '풍경' '한계령' 등을 지은 우리나라의 음유시인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일기'는 1986년에 발표한 2집 앨범에 들어 있다.
나 같은 세대의 사람에게는 7, 80년대의 노래가 주는 감성이 있다. 그 시절의 추억과 어우러지기 때문에 생기는 그리움이라 할 것 같다. 하찮고, 외롭고, 쓸쓸하고, 가련한 것에 대한 애틋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조그만 병아리를 가슴에 안아보는 따스함 같은 것이다. "가고 오지 않는 아름다움에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 고향으로 돌아가는 소녀의 겨울 밤차 유리창에 / 끝도 없이 흘러만 가는 저 사람들의 고독한 뒷모습에" - 나 역시 "사랑해요"라고 곱게 쓰련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끝판 / 한용운 (0) | 2024.02.07 |
---|---|
오백년 도읍지를 / 길재 (0) | 2024.01.29 |
새해 인사 / 나태주 (0) | 2024.01.01 |
사친(思親) / 사임당 (0) | 2023.12.24 |
다는 아닐 거야 / 방주현 (0) | 2023.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