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사친(思親) / 사임당

샌. 2023. 12. 24. 12:11

산 첩첩 내 고향은 천리건만

자나 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흩어졌다 모이고

고깃배들은 바다 위로 오고 가리니

언제나 강릉길 다시 밟아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할꼬

 

千里家山萬疊峰

歸心長在夢魂中

寒松亭畔雙輪月

鏡浦臺前一陳風

沙上白鷗恒聚散

海門漁艇每西東

何時重踏臨瀛路

更着斑衣膝下縫

 

- 사친(思親) / 사임당(師任堂)

 

 

사임당은 이원수와 혼인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홀로 남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각별했을 것 같다. 원래 다정다감한 성품인지라 어머니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남달랐으리라. 사임당은 열아홉에 혼인을 한 뒤 7남매를 키우며 파주와 한양에서 살았다. 쪼들리는 살림을 꾸리고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동안 남편은 어린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도 못한 채 마음 붙일 곳이 없었으니 외로움과 고통이 심했으리라. 어머니와 함께 살던 행복했던 소녀 시절이 한없이 그리웠을 법하다.

 

'사친(思親)'은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를 그리며 쓴 시다. 사임당에게 어머니는 육친이면서 고향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아마 눈물을 쏟아내며 이 시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귀심(歸心)'이라는 말이 사임당의 애절한 마음을 대변해 준다. 지금은 KTX로 강릉까지 두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걸어서 왕래해야 했던 당시는 열흘 넘게 걸렸을 것이다. 쉽사리 오갈 수 없는 고향이었다. 사임당은 47세인 1551년에 세상을 떴지만, 어머니는 더 오래까지 장수했다. 율곡이 사임당을 대신해 자신의 외할머니를 정성껏 보살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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