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고향에서 나흘

샌. 2022. 10. 15. 13:41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나흘간 함께 있었다. 어머니의 가을걷이를 도와줄 목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들깨를 베는 일이 첫째였다. 들깨 모종 심고, 베고, 털고 하는 작업은 형제들이 나누어 내려와서 맡고 있다. 올해 내 일은 그나마 제일 쉬운 들깨를 베는 일이었다. 어머니와 둘이서 한나절이면 충분했다.

 

 

들깨 작업을 마치고 산에 올라가 밤을 주웠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심은 나무들이라는데 밤나무 고목이 산의 능선을 덮고 있었다. 이젠 마을 사람들한테도 잊혀서 오로지 어머니의 전용 밤밭이었다. 나는 10분여 줍다가 포기했는데 어머니는 30분 넘게 산을 타고 다니셨다. 아흔이 넘은 연세인데 모두가 놀라는 체력이다. 비슷한 또래의 동네 할머니들은 대부분 바깥출입하기도 벅차다.

 

자식 입장에서는 그러다가 다치실까 봐 늘 걱정이다. 어머니는 운동 삼아 다니는 거니 염려하지 말란다. 산길이 험해도 조심하면 괜찮고, 집안에서도 방심하면 넘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집에서 다치는 노인들이 허다하다. 지인 어르신 한 분은 방에 펴놓은 이불을 밟다가 미끄러져 고관절이 부러진 뒤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사람의 앞길이 어찌될 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방에서는 주워 온 밤을 까는 데 또 열중이시다. 그냥 자식들한테 주면 되지 뭣 하러 힘들게 까느냐고 짜증을 섞어 물으면 어머니의 대답은 늘 같다. "놀면 뭐 하냐." 냉장고에는 그렇게 깐 밤이 여러 개의 비닐봉지에 담겨 있다.

 

 

집 안팎으로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보건소에 가서 같이 독감 백신 주사를 맞았다.

 

돌아오는 길에 이웃 동네의 이모 집에 들렀다. 이모는 지금 수 년째 요양병원에 계신다. 집과 밭은 둘째 아들이 오가며 관리하고 있지만, 주인 없는 집은 썰렁했다.

 

 

저녁에는 서천길을 산책했다. 어릴 때 가까이 지냈던 5촌 형의 부고를 늦게 들은 터라 기분이 착잡했다. 해가 옥녀봉 뒤로 기울고 있었다.

 

 

끝날 새벽에 눈이 떠졌다. 다른 때 같으면 다시 잠을 청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테지만, 창으로 보이는 어슴프레 밝아오는 하늘에 뭔가 예감이 꽂혀 밖에 나섰다. 시야가 터진 들판으로 나갔는데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눈앞에서 화려한 아침노을의 장관이 펼쳐졌다.

 

 

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마음은 허전하고 쓸쓸하다. 거기에는 불효에 대한 자책감도 있다. 젊었을 때부터 항상 그러했다. 지금은 어느새 90대 노모와 70대의 아들이 되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 속에는 언젠가는 닥칠 영원한 이별에 대한 슬픔이 자리잡고 있으리라.

 

오는 길에 여주 당남리섬에 들러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젖은 마음을 꺼내서 가을 햇살에 잘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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