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96

어느 휴일 하루

경안천을 산책하다가 하늘에 홀려서 석양을 기다리다. 한 시간 산책길이 세 시간으로 늘어났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그림에 가슴이 뛴다. 그냥 흘낏 일별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이 야속하다. 이전, 평화로운 청석공원이다.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가 새로 생겼다. 건너편으로 산책길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새로 걸을 수 있는 길이 생겨 좋다. 가을이 되면 경안천은 억새와 갈대밭이 된다. 여기는 인간이 손 대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아직은 남아 있다. 더 이전, 둘째가 찾아와서 한강변 '강마을 다람쥐'에 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진속일상 2018.09.28

광교저수지 한 바퀴

수원에 다녀오는 길에 광교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광교산 기슭에 있는 광교저수지는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1943년에 건설되었다. 지금은 아래가 전부 주택가로 변했으니 아마 수원시의 상수원으로 사용되지 않나 싶다. 제방 아래는 광교공원이 잘 꾸며져 있다. 광교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좋다. 제방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은 나무 데크로 된 길이다. 벚나무가 있어 한여름에도 그늘이 진다. 한 바퀴 도는 데 3.4km다. 개망초도 꽃밭이 된다. 금계국, 코스모스와 어우러진 모습이 자연스럽다. 저수지 왼편은 산길로 녹음 사이를 걷는다. 흙으로 되어 있고 적당한 오르내림이 있어 나무 데크 길과는 다른 맛이다. 가볍과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광교저수지 둘레길이다. 한 바퀴 도는 데 50분 정도 걸렸다.

사진속일상 2018.06.20

물의정원 산책

신현회 넷이 모여 물의정원을 한 시간 정도 산책하다. 원래는 예봉산 등산 예정이었지만 내 발이 온전치 못한 관계로 가벼운 한강변 걷기로 바꾸다. 물의정원 공원은 아직 꽃양귀비가 피기 전이라 꽃밭은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더없이 청명한 날이다. 언제 미세먼지 걱정이 있었나 싶다. 비 내린 뒤 연사흘 이런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자꾸 심호흡이 깊어진다. 발걸음 가볍다. 그끄저께까지 내린 비로 팔당호 물은 많이 불어나 있다. 애기똥풀이 군데군데 무더기로 피어 있다. 강에 시멘트 바르는 일 말고 이런 수변 공원화 사업은 아주 고맙다.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며 새삼 감탄한다. 늘 이래야 정상 아닐까. 예전에 이곳에는 용진나루터가 있었다. 남양주 조안면 송촌리와 강 건너 양평을 연결하는 나루터다. 조선시대..

사진속일상 2018.05.21

석촌호수 한 바퀴

봄 환절기에는 부음이 잦다. 인천 작은집에 다녀오는 길에 석촌호수에 들렀다. 버드나무 연초록 이파리가 돋아나는 호수길을 한 바퀴 돌았다. 석촌호수 벚꽃축제가 4월 1일부터 시작된다는데 너무 이르지 않나 싶다. 개나리는 피기 시작하는데 벚꽃은 아직 꽃망울 단계다. 공기는 매캐해도 봄을 맞으러 나온 사람은 많았다. 롯데월드타워가 4월 3일 개장을 앞두고 있다. 뒷말이 많았지만 이왕 만들어진 것, 서울의 랜드마크로서 명소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석촌호수 위를 지나는 잠실호수교 아래는 어둡고 칙칙했는데 최근에 예쁜 벽화로 새단장되고 있다. 마침 첫째가 이 작업을 주관하고 있어 유심히 바라보았다. 누수 문제가 잘 해결되어서 천장도 예쁘게 꾸밀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사진속일상 2017.03.31

박물관 산책

전 직장 동료 두 분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났다. 정례적으로 만나던 모임이 흐지부지되고 고작 셋이 모였다. 그것도 1년 반만이었다. 한 분은 여전히 여일한 생활이고, 다른 분은 손주 때문에 삶이 확 바뀌었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건 젊게 사신다는 점이다. 생각이 젊다는 건 옆 사람에게도 생기를 준다. 국립박물관 뜰을 산책하고, 삼각지까지 서울 거리를 걸었다. 쌀쌀해진 맑은 가을날이었다. 도중에 설렁탕으로 점심을 하고,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전쟁기념관까지 한 바퀴 둘러본 다음 헤어졌다. 오랜만의 만남인데 컨디션이 좋았으면 저녁 맥주가 곁들여졌을 것이다. 그런 것이 나이 든 뒤의 달라진 점이다. 마침 한글날이어서 한글박물관도 의미 있게 관람했다. 만약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

사진속일상 2016.10.10

낮술에 환해지다

점심 모임에서 와인으로 반주를 했다. 기분이 들떠서 뒤에 가서는 소주도 추가했다. 햇살 속 낮술에 세상이 환해졌다. 낮술에는 금기를 깨는 짜릿함이 있다는 시인의 권주가를 따라 읊으며.... 낮술에는 밤술에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이라거나, 뭐 그런 것. 그 금기를 깨뜨리고 낮술 몇 잔 마시고 나면 눈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햇살이 황홀해진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아담과 이브의 눈이 밝아졌듯 낮술 몇 잔에 세상은 환해진다. 우리의 삶은 항상 금지선 앞에서 멈칫거리고 때로는 그 선을 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것.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라. 그 선이 오늘 나의 후회와 바꿀 만큼 그리 대단한 것이었는지. 낮술에는 바로 그 선을 넘는 짜릿함이 있어 첫잔을 입에 대는 순간 입술에서부터..

사진속일상 2016.09.23

한 달 만에 외출하다

꼭 한 달 만에 바깥에 나섰다. 느린 걸음으로 뒷산 언저리를 한 시간 정도 돌았다. 산길은 이미 녹음 터널이 되었고, 아까시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살랑거렸다. 몸 상태는 여전히 온전치 못하다. 바람을 쐬면 기침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온다. 폐렴은 진정되었다고 하는데, 아직 남아 있는 편도염 때문인지 모른다. 간 수치도 나쁘다고 하니까 내일 병원에 가서 최종 확인을 받아봐야 한다. 몸이 부실하니 마음도 불안정하다. 책 읽기가 제대로 안 되는 걸 보면 안다. 요사이는 팟캐스트를 통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연속으로 듣고 있다. 이런저런 인생사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찡해진다. 스님의 설법에는 카르마와 과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유익한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다. 둘..

사진속일상 2015.05.18

석촌호수 산보

저놈은 뭐길래 저리 힘차게 솟아오를까. 딱딱하게 발기하는 거시기 같기도 하고, 오만한 정치꾼이 물고 있는 시거를 닮아도 보인다. 바람에 흔들릴 줄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물건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제 키만 높이지는 않을 것이다. 낮술을 식힐 겸 석촌호수를 산보했다. 조그마해진 사람들은 러닝머신에 선 것처럼 종종걸음을 쳤다. 별을 잊어버리고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쓸쓸해졌다. 밤에는 맹수에 쫓기는 꿈을 꿨다. 사자 우리에 갇혀서 도망 다니다가 결국은 먹잇감이 되었다. 비명을 지르다가 깼다. 그 뒤로 잠들지 못했다.

사진속일상 2015.03.24

경안천에 나가다

걷기 위해서 밖으로 나간 게 한 달도 훨씬 더 전이었다. 추위 핑계를 대며 오랫동안 방에서 칩거했다. 눈 내린 뒤로는 산 출입도 삼갔다. 오늘은 작심하고 경안천에 나갔다. 바깥바람은 싸늘하지만 상쾌했다. 폐에 고인 곰팡내 나는 공기가 신선한 공기로 바뀌었다. 비록 완전한 야외는 아니지만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서 걷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경안천 산책로는 눈이 얼어 빙판으로 된 곳이 많아 멀리 나가지는 못했다. 쉬운 길을 따라 두 시간 정도 산책했다. 덤덤하게 지나가는 크리스마스다. 신앙도 거의 냉담 수준이다. 지금 내 마음은 거센 토네이도가 지나가고 난 뒤의 폐허 같다. 얼마 전부터 머리가 띵 하며 아픈 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어쨌든 한 해의 막바지에 와 있다.

사진속일상 2014.12.25

곤지암리조트 화담숲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리조트 안에 있는 화담숲은 LG상록재단에서 만든 수목원이다. 약 23만편의 면적에 17개의 다양한 주제정원이 있어, 사계절내내 다양한 식물과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숲을 지나는 산책 코스도 잘 만들어져 있다. '화담(和談)'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다. 집에서 멀지 않아 아내와 함께 오후에 가볍게 찾아가 보았다. 입장료가 8천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정성들여 잘 가꾸어 놓았고 분위기도 좋았다. 너무 인공적이어서 아쉽지만 자연과 함께 하루를 즐기는 장소로는 괜찮을 듯하다. 우리는 숲속산책길을 걸어 올라가서, 제일 외곽의 힐링숲길 2코스를 돌아 테마원을 구경하며 내려왔다. 거의 4시간 가까이 걸렸다. 길 식물 분재 힐링숲길 2코스에 독바위 전망대가 있었다. 여기서 보면 곤지암 스키장..

사진속일상 2014.10.08

가을 산책

9월의 마지막 날, 광릉수목원과 동구릉으로 아내와 가벼운 나들이를 나갔다.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햇빛과 공기가 먼저 가을이 가까이 와 있다는 걸 전해 주었다. 걷는 게 좋아서 수목원과 동구릉을 한 바퀴 돌았다. 이번에는 광릉수목원에서 전에 가 보지 못했던 동물원까지 다녀왔다. 동구릉은 가족 추억이 쌓인 장소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동구릉에 여러 차례 놀러 왔다. 가을에는 낙엽에서 뒹굴고,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워했다. 아내는 눈사람 만들 때 쓴 소도구까지 기억해 냈다. 가을이라는 계절과 이만큼 된 나이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 아내가 불면증으로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한다. 최근 들어 증세가 심해지고 있다. 고민을 끊으라고 충고하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옆에서 ..

사진속일상 2014.10.01

안산 꽃길

안산 자락길이 꽃길이 되었다. 예년보다 열흘 넘게 빨리 개화하면서 서울 벚꽃은 절정을 지나고 있다. 여의도를 비롯한 벚꽃 축제도 앞당겨 치렀다. 일찍 찾아온 봄이니 쉬이 갈 것이다. 생명이 있기에 유한하고, 유한한 것은 덧없다. 그중에서도 아름다움은 한 순간이다. 봄 꽃길을 걸으며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린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루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꽃들의향기 2014.04.08

짬뽕과 순대국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점심때가 지나면 시장기가 든다. 배는 고프고 집까지 가는 길도 멀면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해야 한다. 그때 내가 선택하는 건 짬뽕 아니면 순대국이다. 뭘 먹느냐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속을 시원하게 하고 싶을 때는 짬뽕, 고기 생각이 날 때는 순대국을 먹는다. 짬뽕과 순대국은 꼭 가는 집이 있다. '홍콩반점'은 짬뽕을 전문으로 하는 중국 음식점이다.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지만 그보다도 실내가 깔끔해서 좋다. 종업원도 여느 중국집과 달리 젊은이들이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으면 카페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집은 음식값을 선불로 받는다. 왜 그러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신선해서 재미있다. 어떤 날은 매운 짬뽕을 먹고 싶을..

길위의단상 2014.02.24

스쳐가는 나그네

스무날 만에 햇볕이 났다. 작은 배낭을 꺼내 뒷산에 들었다. 장마가 시작되고는 출입을 하지 않았으니 한 달이 넘었다. 숲은 물기를 털어내느라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긴 장마에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벽에서는 물방울이 송송 배어 나올 듯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창문을 활짝 열고 뽀송뽀송한 공기를 맞았다. 그동안 화장실에서는 퀴퀴한 곰팡내가 계속 났다. 아내가 제습기를 사야겠다는 걸 겨우 말렸다. 뭐든지 기계에 의존하는 게 싫었다. 산길에서는 모기와 날벌레들이 뜸해졌다. 한두 마리가 달라붙었지만 초여름의 극성스러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산에서 메뚜기를 보았다. 농약 때문에 산으로 피신 온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워낙 날쌔게 뛰어다녀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틀림없는 메뚜기였다. 다..

사진속일상 2013.07.26

징검다리

경안천을 산책할 때면 일부로라도 한 번은 이 징검다리를 건넌다. 옆에 번듯한 다리가 있지만 돌아서라도 이 징검다리를 찾게 된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사이를 사뿐사뿐 건너뛰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어릴 적 고향 마을 앞 개울에도 이런 징검다리가 있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쉽게 물에 잠겨 무릎 위까지 바지를 말아 올리고 건넜다. 심할 때는 아예 바지를 벗어 머리 위에 이고 건너기도 했다. 더 어렸을 때는 아버지 등에 업혀 건넜던 기억도 난다. 여름에 홍수라도 나면 당연히 학교로 가는 길이 끊겼다. 시멘트 다리가 있는 읍으로 해서 돌아가자면 두 시간이나 더 걸렸다. 저학년 아이들은 등교하는 걸 포기했고 학교에서도 말렸다. 학교에 안 가도 되는 동생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 뒤..

길위의단상 2013.06.12

장난감 디카로 찍어본 봄꽃

얼마 전에 값싼 디카를 하나 샀다. 하이마트에 갔더니 10만 원짜리 카메라가 있는 것이었다. 가격으로 치면 딱 장난감 수준인데, 사진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서 재미로 갖고 와 보았다. 카메라는 손에 들었는지도 모르게 작고 가볍다. 기능도 아주 단순하다.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우선 찍힌 사진을 보니 색깔이 너무 칙칙하다. 채도 조절을 해 보지만 한계가 있다. 그리고 초점 잡는데 너무 헤맨다. 꽃 같은 접사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또, 사진 저장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성질 급한 사람은 열 받게 생겼다. 렌즈 탓이겠지만 사진의 선예도도 많이 떨어진다. 하여튼 나에게는 재미있는 카메라다. 그러려니 하고 찍으면 사용 못 할 것도 없다. 사진의 질을 따지지 않는다면 넉넉히 쓸 수 있다. 앞으로 외출..

꽃들의향기 2013.04.08

서촌 산책

서촌(西村)은 조선시대 경복궁 서쪽에 있던 지역으로 주로 중인들이 살았다. 지금의 청운동, 효자동, 통의동, 체부동 일대에 해당한다. 골목 곳곳에는 오래 된 집이나 가게가 그대로 있어 변하지 않는 것의 편안함을 준다. 그중의 하나가 '대오서점'이다. 마침 주인 할머니가 외출하시다가 우리를 보고 구경하고 가라며 문을 다시 열어 주셨다. 한옥은 100년 가까이 되었고, 헌책방을 하신지도 60년이나 된다고 하셨다. 안으로 들어가니 집 내부도 헌책으로 빼곡했다. 집도 굉장히 낡았다. 책이 얼마나 판매되는지는 모르지만 이만큼 지켜오신 것만도 대단하다. 집을 팔려고 내놓으셨다는데 새 주인이 들어오면 이곳에도 아마 현대식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이상(李箱)이 살았던 집이 '제비다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문이 ..

사진속일상 2013.02.19

경안천을 산책하다

오랜만에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다. 봄기운마저 느껴지는 날씨였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경안천에 산책하러 나갔다. 이 겨울 두 달 동안 무등산에 한 번 다녀온 것 외에는 거의 두문불출이었다. 뒷산조차도 찾지 않고 겨울잠 흉내를 내보려고 했다. 둔해진 몸이 금방 느껴졌다. 평지길 걷기도 버거웠다. 저울에 올라 보지는 않았지만 몸무게도 최고 기록을 돌파했을지 모른다. 빈둥거려도 먹는 건 빠지지 않았으니 결과야 뻔하다. 그래도 기지개를 켜고 몸을 움직이면 이내 옛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 그걸 믿으므로 걱정하지는 않는다. 겨울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걸었다. 성남과 장호원을 연결하는 신설 도로가 광주를 지나간다.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상판 연결이 최근에 끝났다. 이 도로가 완공되면 경충대로의 교통 체증이 ..

사진속일상 2013.01.19

가벼운 산책

볼 일이 있어 서울에 나간 길에 시간 여유가 생겨 남산 언저리에 들었다. 순환도로 산책로를 짧게 걸었다. 늦단풍이 아직도 선연했다. 일부는 여전히 초록색인 걸 보니 청단풍인 것 같다. 단풍 구경 하러 멀리 갈 필요 없이 내년에는 이곳으로 와야겠다. 동국대학교 캠퍼스에도 들어가 보았다. 대학 졸업하고 이곳에서 학생으로 잠시 적을 두었으니 인연이 있다. 군대에 가기 싫어 행정대학원을 1년 간 다녔다. 37년 전인 1975년의 일이었다. 캠퍼스 안에 무슨 나무가 있나 두리번거리다가 중앙광장에서 볼썽사나운 은행나무를 보았다. 꼭 이렇게 가지치기를 해야 했을까? 장충단공원에서는 수표교(水標橋)가 낯익었다. 오래된 조선 시대의 다리다. 원래는 청계천에 있었는데 복개 공사를 하면서 1959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투박..

사진속일상 2012.11.16

가을물 드는 뒷산

뒷산도 가을물이 들고 있다. 유명한 산처럼 가을이 화려하게 찾아오진 않지만 수수해서 오히려 좋다. 명절날 때때옷을 마련하진 못했어도 입던 옷 곱게 빨아서 차려 입었다. 드러나지 않으면서 항상 곁에 있는 푸근함이 뒷산의 매력이다. 단풍 구경 하느라 사람들은 멀리멀리 떠나가도 뒷산은 그 자리에서 묵묵하다. 집 뒤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사진속일상 2012.10.22

탄천 산책

분당에 간 길에 두 시간 정도 탄천을 산책했다. 오리역에서 이매역까지 천을 따라 내려가며 걸었다. 탄천(炭川)은 이름값을 하려는 건지 물이 너무 탁했다. 상류 쪽에 있는 안내문에는 오염이 아니라 철 성분이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냄새도 심하고 부유물도 많았다. 특이한 점은 잉어가 무척 많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물을 맑게 하는 게 우선인 것 같다. 탄천 주변은 시민의 운동과 휴식처로 예쁘게 꾸며 놓았다. 천을 따라 조성된 녹지가 건물들과도 잘어울렸다. 도시를 걸으며 아름답다는 감정을 오랜만에 느껴 보았다. 이런 녹지축이 사방팔방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훨씬 더 살 만한 도시로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 마음도 여유롭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한 도시를 상상해 본다. 인구는 10만을 넘지 ..

사진속일상 2012.05.17

서대문독립공원과 안산을 산책하다

서대문에 사는 첫째를 찾아간 길에 독립공원과 안산을 산책했다.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는 날이었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鞍山)은 높이가 296m로 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조망이 뛰어난 산이다. 옛날 서대문형무소가 있던 자리에 독립공원을 만들었다. 다른 어느 공원보다도 역사적 의미가 강한 곳이다. 원 위치에서 이전된 독립문이공원 한 켠에 있다. 공원에서 만난 나무와 꽃들. 흰제비꽃이 반가웠다. 안산으로 오르는 길. 조금만 올라가도 서울 시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서울 가까이에 이런 좋은 산이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휴일인데도 산길은 사람이 별로 없이 한적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왕산과 북한산 풍경을 파노라마로 찍어 보았다. 뒤에 있는 북한산 줄기의 봉우리들은 왼쪽부터 차..

사진속일상 2012.04.29

두 주일 만에 산책을 하다

발꿈치를 찌르던 통증이 마침내 가셨다. 두 주일 만에 뒷산길을 조심스레 산책했다. 영상으로 올라간따스한 날씨에 벌써 봄이 다가온 듯 했다. 한 달 이상 계속되었던 혹한을 지낸 터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밝다. "한 달 넘게 집안에 갇혀있다가 오늘 처음 나온거야." "이러다가 곧 반팔 옷을 입게 될 걸." 하긴 어제가 입춘이었으니 절기상으로는 이미 봄이 시작되었다. 봄, 가만히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뭔가좋은 일들이 마구 생길 것 같다. 마음은 괜히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꽃술이 떨리는 매화 향기 속에 어서 일어나세요, 봄 들새들이 아직은 조심스레 지저귀는 나의 정원에도 바람 속에 살짝 웃음을 키우는 나의 마음에도 어서 들어오세요, 봄 살아있는 모든..

사진속일상 2011.02.05

까치산공원

투표를 하고 아내와 함께 인근에 있는 까치산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까치산은 집에서 걸어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늘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다가 이번에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국립현충원이 있는 서달산과 이 까치산이 힌깅과 관악산을 연결하고 있다. 주택가를 조금만 통과하면 숲길을 따라서 한강과 관악산이 만난다. 다음에는 이 녹지축을 따라서 걸어봐야겠다. 오늘은 집에서 삼일공원을 지나 까치산에 이르렀다. 입구에는 동작구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도 있었다. 산은 일자로 길게 뻗어있는데 완만한 흙길이 걷기에 매우 편했다. 남부순환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지나면 관악산과 바로 이어진다. 오늘은 관악산 아래까지만 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어느덧 여름이 불쑥 다가왔다. 반팔 차림으로 나..

사진속일상 2010.06.02

선유도를 산책하다

꽃샘추위가 오늘에야 수그러들면서 따스한 봄햇살이 반갑다. 올들어 처음으로 한강을 나가선유도를 산책하다. 작년 이맘때는꽃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올해는 아직 소식이 없다. 작년에는 살구꽃도 활짝 피었었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 꽃소식이 늦는 것 같다. 3월 들어서는 겨울이 다시 찾아온 듯 눈이 잦았고 기온도 낮았다. 그래도 대기에는 봄기운이 가득하다. 대지의 생명들이 온통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 가슴도 덩달아 설레면서 괜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콧노래라도 흥얼거리고픈 날이다. 작년 내내 양화대교에서 공사를 하더니 다리 위에 '아리따움'이라는 카페가 만들어졌다.한강 둔치에서 바로 다리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도 있다. 또 카페 앞에는 버스 정류장도 만들어져 있다. 이젠 다리가 단순히 자동차로 강을..

사진속일상 2010.03.19

거꾸로 보는 세상

뒷산을 산책하다가 쉼터 나무 아래에 눕다. 고개를 젖히니 거꾸로 보이는 세상이 재미있다. 땅은 위로 올라가고 나무도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벤치가 신기하다. 가끔은 이렇게 거꾸로 세상보기를 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겠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의미의 뒤집기를 해 보는 것이다. 사고(思考)의 물구나무서기다. 그런 눈으로 보면 코끼리도 하늘을 난다. 인생의 무게에 짓눌린 마음도 깃털처럼 가벼워질지 모른다. 또는 제일 많이 TV에 나오는 보기 싫은 사람도 이쁘게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누워서 쳐다보는 나무도 느낌이 새롭다. 나무의 친구는 하늘과 바람임을 알겠다. 같은 가지에 달린 나뭇잎이더라도 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어쩌면 다들 생채기를 갖고 있는지, 온전한 잎은 찾아보기..

사진속일상 2009.08.31

뒷산을 산책하다

대도시에 살면서 대문을 나서면 바로 이런 아름다운 산길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그 축복을 자주 누리지는 못하지만 언제고 날 기다려주는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오늘도 가벼운 운동화 꺼내 신고 산길에 든다. 일요일인데도 길은 호젓하다. 사람들은 유명 관광지나 축제에는 몰리지만 이런산은 잘 찾지 않는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도리어 그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한다. 아니면 걷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탓도 있으리라.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걷기의 가치를 많이 깨달아가고 있다. "나는 걸을 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루소가 '고백록'에서 한 말이다. 또 니체는 말했다.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

사진속일상 2009.06.07

봄볕을 쬐고 기운을 되찾다

며칠간 슬럼프가 계속되었다. 삶의 의욕을 앗기고 무기력증에 빠졌다. 별 이유도 없이 이런 손님이 찾아오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동안 헤매게 된다. 그래서 어제는 작심하고 일찍 직장에서 나와 교외로 나갔다. 강바람을 맞으며 봄볕을 쬐야 이 불쾌한 손님이 떠날 것 같아서였다. 하남의 한강변으로 가서 당정생태공원 길을 걸었다. 일부러 모자도 쓰지 않고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강가의 초록이 싱싱했고 강바람도 시원했다. 풀과 나무 사이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꽉 막혔던 마음은 대개 저절로 열린다. 자연은 가장 훌륭한 마음의 치유사이다. 당정생태공원은 아직 사람의 손길이 덜 미쳐서 야생 상태 그대로의 분위기가 있어 좋다. 둔치는넓은 억새밭이고 그 사이로 난 흙길이 예쁘다. 강변을 따..

사진속일상 2009.05.15

국립현충원의 가을

아내와 첫 외출을 했다.수술을 받은지 한 달 반만이다. 처음에는 집 주변을 가볍게 산책했으나 그것마저 무리가 되는 것 같아 포기하고 아내는 집에서만 지냈다. 가볍게 운동을 했으면 싶지만 찬바람을 쐬면 자꾸 머리가 아파오니 어쩔 수가 없었다. 집 뒤의 국립현충원에 가을이 한껏 익었다. 전 같으면 가볍게 운동화를 신고 나갔겠지만 이번에는 차를 이용했다.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던 길을 차를 타고 지나야 되니 괜히 슬퍼졌다. 단풍이 멋진 곳에서는 내려서 조금씩 주변을 산책했다. 올들어 처음 보는 가을 단풍에 아내는 환호성을 질렀다. 도심에 이런 멋진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러나 휴일인데도 사람들은 별로 없이 한산했다. 아마 묘지라는 인식이 사람들을 꺼리게 만드는 것 같다. 아내는 이 정도라..

사진속일상 2008.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