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108

탄천을 산책하다

치과 진료를 받은 뒤 근처에 있는 탄천을 산책하다. 천변은 개나리가 만발하고, 나무는 연초록 색깔로 화사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인간사의 일일 뿐, 자연은 어김없이 봄이다. 산책 나온 사람이 확실히 많아졌다. 코로나19가 바꾼 풍경이다. 멀리 나가지를 못하니 집 가까이서 하는 산책으로 대체한 탓이다. 이참에 우리 삶의 패턴을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천천히, 느리게, 덜 소비하고, 덜 움직이고, 욕심은 줄이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늘리는 방향으로 말이다. 탄천은 깔끔하게 단장이 잘 되어 있는 대신, 우리 동네 경안천과 달리 복잡하고 시끄럽다. 오래 살다 보면 누구든 제 사는 동네를 제일 편하게 여기게 되나 보다. 조금은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 한 시간여 산책하고 돌아오다.

사진속일상 2020.03.23

율동공원 산책

치과 진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율동공원을 산책했다. 율동저수지를 따라 2.5km 길이의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따스한 오후라 산책 나온 시민들이 많았다. 공원을 야트막한 산이 둘러싸고 있다. 이번에는 산길로 들어가 보았다. 걷기 좋은 길이 능선을 따라 얼기설기 뻗어 있는데, 실버 코스로는 최고의 길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가 진정세를 보인다. 어제부터 확진자수가 하루에 백 명 이하로 떨어졌다. 천 명 가까이 치솟았던 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반면에 유럽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초창기는 난리를 쳤지만 매를 먼저 맞은 우리가 지금은 느긋하다. 누구나 제 살 속에 가시 하나는 가지고 살아간다. 아무리 해도 뽑히지 않는 가시다. 가시가 어떠하든 인간이 감내해야 할 고통의 무게는 크..

사진속일상 2020.03.16

팔당 드라이브

집 가까이에 팔당호를 따라 난 342번 지방도가 있다. 분원리, 귀여리, 검천리, 수청리를 지나는데 드라이브하기 좋은 길이다. 특히 봄에는 벚꽃길로 유명하다. 아내와 이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몸이 좋지 않은 아내는 근 열흘 만의 외출이었다. 오늘은 날씨가 더욱 풀려 낮 기온이 14도까지 올랐다. 얼마나 따스한지 반팔 상의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중간에 물안개공원에 들러 한 시간 정도 산책했다. 원래 걸을 계획이 없었는데 간질간질한 햇살의 유혹을 이기기 힘들었다. 공원의 나무들은 벌써 봄물이 오르고 있었다. 살아가는데 제일 큰 스트레스가 윗집 올빼미 가족의 층간소음이다. 방학이 되어선지 겨울이 되면 그 강도가 서너 배는 세진다. 오늘은 새벽 세 시가 되어서야 잠들 수 있었다.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

사진속일상 2020.02.11

어린이대공원 산책

서울의 친지 결혼식에 참석한 뒤 마침 가까이에 어린이대공원이 있어 잠시 산책하다. 거의 15년 만에 들어와 보다. 더 옛날,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자주 놀러 왔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요사이는 갈 데가 많지만 그때는 어린이대공원이 놀이 시설과 동물원이 있는 대표적인 복합 나들이 장소였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옛 생각에 잠긴다. 둘이 유모차를 서로 타려고 싸우다가 언니가 혼이 나서 운 데가 여기였지. 저기쯤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고, 비스듬히 누워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코끼리 우리 앞에서 목말을 태워주면 엄청 좋아하던 아이들이었는데. 가볍게 번쩍 들어올리던, 얘들이 언제 클까 싶던, 그 시절이 좋았어. 놀이동산에서 청룡열차 타는 걸 좋아해서 긴 줄에 서 있곤 했지. 아이..

사진속일상 2020.01.12

서울 산책

친지 결혼식에 참석한 기회를 이용해 서울 길을 산책했다. 명동성당에서 서울시청,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거쳐 안국역까지 걸었다. 잔뜩 흐리다가 눈, 비 섞여 날리는 궂은 날이었다. 결혼식이 명동성당에서 있었다. 성탄절을 앞둔 때라 성당 앞에 아기 예수 구유가 설치되어 있다. 얼마 전에는 아기 예수가 누웠던 구유 조각이 1,400년 만에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허나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초라한 구유와 화려한 빌딩, 사람들은 어디에 경배하는 걸까? 옛 서울시청사는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되어 있다. 여러 문화 시설이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 이런 데 오면 서울특별시민이 부럽다. 세월호 기억의 공간도 있다. 시청 앞 광장은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 스케이트장을 정리하는 ..

사진속일상 2019.12.21

경의선숲길 산책

1906년 개통된 경의선은 용산역과 신의주역을 잇는 518km 길이의 철도다. 일제가 한반도 지배와 대륙 침략을 위해 건설했다. 당시에는 경부선 다음으로 운수교통량이 많았다고 한다. 경의선은 남북 분단으로 끊어졌다가 2003년에 연결식이 군사분계선에서 있었다. 2009년에 광역전철이 개통되면서 경의선 중 용산선 구간 6.3km가 지하화됨에 따라 지상 구역은 공원으로 만들었다. 2016년에 경의선숲길 공원으로 완공되었다. 경떠회원 다섯 명과 경의선숲길을 걷다. 서울로 진입하는데 너무 시간이 지체한 통에 나는 중간에서 합류하다. 철로를 따라 만든 공원이라 띠 모양으로 길게 뻗어 있다. 꽃과 나무로 잘 가꾸었고 도심이지만 숲에 들어 있는 느낌이다. 주변의 가게들도 아기자기하게 예쁘다. 옛 철로 풍경을 재현한 ..

사진속일상 2019.09.07

두물머리 산책

원래는 신원역에서 만나 부용산 능선을 따라 양수역까지 걸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H의 사정으로 취소하고, 가벼운 두물머리 산책으로 대체했다. 미리 연락만 해 주었어도, 시간 조절 등 다른 방법이 가능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쉬웠다. 그렇다고 불뚝한 내 성질도 문제다. 신현회 다섯 명이 같이 했다. 1973년에 준공된 팔당댐으로 이곳은 호수가 되었다. 수많은 마을과 농경지가 수몰되었을 것이다. 원래 강이 흐르던 풍경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한때 여기서 친환경 유기농 운동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것은 딸기 체험장과 아이들이 타고 온 관광버스들이 차고지처럼 북적였다. 두물머리의 중심은 400년 된 느티나무다. 옛날 나루터는 물 아래 어디에 있었을..

사진속일상 2019.06.06

봄 오는 목현천

냇물 졸졸거리는 소리로 봄이 온다. 가벼운 패딩 잠바로 갈아 입고 목현천 산책에 나갔다. 오늘 낮 기온은 14도까지 올랐다.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기운에 끌려 밖에 나와 걷는 사람이 많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하다. 동생네는 또 남쪽에 간 모양이다. 혼자 지내도 괜찮느냐는 물음에 대답이 경쾌하다. "혼자 있으니 신경이 안 쓰이고 훨씬 낫다." 그만큼 정정하시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새로 돋아난 가지에 잎인지 꽃인지 모를 봉오리가 맺혀 있다. 봄을 준비하는 나무는 지금 얼마나 바쁠 것인가. 만물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저녁도 흐리다. 이번 주는 수성이 최대이각이 되는 기간이라 관찰의 적기다. 해 진 뒤 서쪽 하늘에 잠시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헛..

사진속일상 2019.02.27

열이틀 만의 외출

독감 기세가 누그러졌다. 열이틀 만에 밖에 나갔다. 내 멋대로 쉴 수 있는 건 백수의 특권이다. 만약 직장에 다닌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고작 하루 정도 병가를 낼 수 있을까. 눈치가 보여 집에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열이틀은 나같이 게으른 백수에게나 가능하다. 활동적인 사람은 몸이 근질거려 오직 방콕을 견디지 못하리라. 경안천을 30분 정도 산책했다. 햇빛이 자글거리며 얼굴을 간질이는 게 좋았다. 독감이 물러가고 이제 몸이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는 이 안도감과 느긋함이라니. 나한테서 릴레이 받아 시작한 아내는 독감이 현재진행형이다. 하남에 가서 보신탕을 사 왔다. 아내는 기력 회복용으로 보신탕이 최고의 음식이라 믿고 있다. 내가 아프면 먹을거리가 풍성하지만, 아내가 아프면 식탁이..

사진속일상 2019.01.17

남한산성 산책

안양에 사는 G한테서 전화가 왔다. 걱정 되어서 연락한다고 했다. 송년 모임에 나가지 않았더니 엉뚱한 소문이 돈 모양이다. 가족 건강 문제가 심각한 줄 안다. 두문불출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면 안 되겠구나. 사람들은 제 식으로 상대방을 파악한다. 제 앎과 경험의 범위 안에서만 본다. 그게 사람과 사물을 이해하는 인간의 한계다. 그렇다고,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살아갑니다, 라고 변명하기도 뭣하다. G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지 말라고 충고한다. 허허, 하고 웃어넘겼다. 첫째가 와서 남한산성을 셋이서 산책하다. 함께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남한산성 주차비가 3천 원으로 올랐다. 그동안 천 원이어서 싸다 했더니 배포있게 세 배나 인상하며 현실화시켰다. 주차장에서 북문, 서문, 남문을 거쳐 내려왔다...

사진속일상 2018.12.22

남이 봐도 되는 일기

1. 찬바람 속을 걸으면 눈물이 쉴 새 없이 나온다. 손수건 꺼내는 걸 잠깐 잊으면 볼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린다. 내가 이렇게 눈물 많은 사람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런데 정작 울어야 할 때는 절대로 안 나온다.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주책이다. 병원에 가보고 싶지만 의사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노화 현상입니다!" 미세먼지를 막아주는 마스크처럼 눈물을 제어해 주는 투명 마스크는 없을까. 고령화 시대에 대박 상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2.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천년의 세월을 살 것처럼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그렇게 멀리만 보이던 노년이었는데 세월을 나를 어느덧 노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초등 친구 카톡방에 ..

사진속일상 2018.12.12

동구릉의 늦가을

서울 동쪽 지역에서 오래 살았으므로 동구릉과 친근했다. 고등학생일 때 동구릉으로 소풍을 왔고, 훈장 노릇할 때도 학생들을 인솔해서 여기로 소풍을 자주 왔다. 집 아이들을 데리고 가끔 놀러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들러도 동구릉은 정겹다. 동구릉(東九陵)에는 태조 이성계가 묻힌 건원릉을 비롯해 아홉 능이 있다. 정문을 들어서서 반시계방향으로 돈다면 수릉, 현릉, 목릉, 건원릉, 휘릉, 원릉, 경릉, 혜릉, 숭릉을 지나간다. 어제 비가 내리고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이 열렸다. 수릉(綏陵) -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능. 문조(文祖, 1809~1830)는 23대 순조의 아들로 효명세자 시절 대리청정을 시작하여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력했으나 22세에 요절하였다. 건원릉(健元陵) -..

사진속일상 2018.11.09

어느 휴일 하루

경안천을 산책하다가 하늘에 홀려서 석양을 기다리다. 한 시간 산책길이 세 시간으로 늘어났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그림에 가슴이 뛴다. 그냥 흘낏 일별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이 야속하다. 이전, 평화로운 청석공원이다.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가 새로 생겼다. 건너편으로 산책길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새로 걸을 수 있는 길이 생겨 좋다. 가을이 되면 경안천은 억새와 갈대밭이 된다. 여기는 인간이 손 대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아직은 남아 있다. 더 이전, 둘째가 찾아와서 한강변 '강마을 다람쥐'에 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진속일상 2018.09.28

광교저수지 한 바퀴

수원에 다녀오는 길에 광교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광교산 기슭에 있는 광교저수지는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1943년에 건설되었다. 지금은 아래가 전부 주택가로 변했으니 아마 수원시의 상수원으로 사용되지 않나 싶다. 제방 아래는 광교공원이 잘 꾸며져 있다. 광교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좋다. 제방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은 나무 데크로 된 길이다. 벚나무가 있어 한여름에도 그늘이 진다. 한 바퀴 도는 데 3.4km다. 개망초도 꽃밭이 된다. 금계국, 코스모스와 어우러진 모습이 자연스럽다. 저수지 왼편은 산길로 녹음 사이를 걷는다. 흙으로 되어 있고 적당한 오르내림이 있어 나무 데크 길과는 다른 맛이다. 가볍과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광교저수지 둘레길이다. 한 바퀴 도는 데 50분 정도 걸렸다.

사진속일상 2018.06.20

물의정원 산책

신현회 넷이 모여 물의정원을 한 시간 정도 산책하다. 원래는 예봉산 등산 예정이었지만 내 발이 온전치 못한 관계로 가벼운 한강변 걷기로 바꾸다. 물의정원 공원은 아직 꽃양귀비가 피기 전이라 꽃밭은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더없이 청명한 날이다. 언제 미세먼지 걱정이 있었나 싶다. 비 내린 뒤 연사흘 이런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자꾸 심호흡이 깊어진다. 발걸음 가볍다. 그끄저께까지 내린 비로 팔당호 물은 많이 불어나 있다. 애기똥풀이 군데군데 무더기로 피어 있다. 강에 시멘트 바르는 일 말고 이런 수변 공원화 사업은 아주 고맙다.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며 새삼 감탄한다. 늘 이래야 정상 아닐까. 예전에 이곳에는 용진나루터가 있었다. 남양주 조안면 송촌리와 강 건너 양평을 연결하는 나루터다. 조선시대..

사진속일상 2018.05.21

석촌호수 한 바퀴

봄 환절기에는 부음이 잦다. 인천 작은집에 다녀오는 길에 석촌호수에 들렀다. 버드나무 연초록 이파리가 돋아나는 호수길을 한 바퀴 돌았다. 석촌호수 벚꽃축제가 4월 1일부터 시작된다는데 너무 이르지 않나 싶다. 개나리는 피기 시작하는데 벚꽃은 아직 꽃망울 단계다. 공기는 매캐해도 봄을 맞으러 나온 사람은 많았다. 롯데월드타워가 4월 3일 개장을 앞두고 있다. 뒷말이 많았지만 이왕 만들어진 것, 서울의 랜드마크로서 명소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석촌호수 위를 지나는 잠실호수교 아래는 어둡고 칙칙했는데 최근에 예쁜 벽화로 새단장되고 있다. 마침 첫째가 이 작업을 주관하고 있어 유심히 바라보았다. 누수 문제가 잘 해결되어서 천장도 예쁘게 꾸밀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사진속일상 2017.03.31

박물관 산책

전 직장 동료 두 분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났다. 정례적으로 만나던 모임이 흐지부지되고 고작 셋이 모였다. 그것도 1년 반만이었다. 한 분은 여전히 여일한 생활이고, 다른 분은 손주 때문에 삶이 확 바뀌었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건 젊게 사신다는 점이다. 생각이 젊다는 건 옆 사람에게도 생기를 준다. 국립박물관 뜰을 산책하고, 삼각지까지 서울 거리를 걸었다. 쌀쌀해진 맑은 가을날이었다. 도중에 설렁탕으로 점심을 하고,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전쟁기념관까지 한 바퀴 둘러본 다음 헤어졌다. 오랜만의 만남인데 컨디션이 좋았으면 저녁 맥주가 곁들여졌을 것이다. 그런 것이 나이 든 뒤의 달라진 점이다. 마침 한글날이어서 한글박물관도 의미 있게 관람했다. 만약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

사진속일상 2016.10.10

낮술에 환해지다

점심 모임에서 와인으로 반주를 했다. 기분이 들떠서 뒤에 가서는 소주도 추가했다. 햇살 속 낮술에 세상이 환해졌다. 낮술에는 금기를 깨는 짜릿함이 있다는 시인의 권주가를 따라 읊으며.... 낮술에는 밤술에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이라거나, 뭐 그런 것. 그 금기를 깨뜨리고 낮술 몇 잔 마시고 나면 눈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햇살이 황홀해진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아담과 이브의 눈이 밝아졌듯 낮술 몇 잔에 세상은 환해진다. 우리의 삶은 항상 금지선 앞에서 멈칫거리고 때로는 그 선을 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것.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라. 그 선이 오늘 나의 후회와 바꿀 만큼 그리 대단한 것이었는지. 낮술에는 바로 그 선을 넘는 짜릿함이 있어 첫잔을 입에 대는 순간 입술에서부터..

사진속일상 2016.09.23

한 달 만에 외출하다

꼭 한 달 만에 바깥에 나섰다. 느린 걸음으로 뒷산 언저리를 한 시간 정도 돌았다. 산길은 이미 녹음 터널이 되었고, 아까시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살랑거렸다. 몸 상태는 여전히 온전치 못하다. 바람을 쐬면 기침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온다. 폐렴은 진정되었다고 하는데, 아직 남아 있는 편도염 때문인지 모른다. 간 수치도 나쁘다고 하니까 내일 병원에 가서 최종 확인을 받아봐야 한다. 몸이 부실하니 마음도 불안정하다. 책 읽기가 제대로 안 되는 걸 보면 안다. 요사이는 팟캐스트를 통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연속으로 듣고 있다. 이런저런 인생사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찡해진다. 스님의 설법에는 카르마와 과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유익한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다. 둘..

사진속일상 2015.05.18

석촌호수 산보

저놈은 뭐길래 저리 힘차게 솟아오를까. 딱딱하게 발기하는 거시기 같기도 하고, 오만한 정치꾼이 물고 있는 시거를 닮아도 보인다. 바람에 흔들릴 줄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물건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제 키만 높이지는 않을 것이다. 낮술을 식힐 겸 석촌호수를 산보했다. 조그마해진 사람들은 러닝머신에 선 것처럼 종종걸음을 쳤다. 별을 잊어버리고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쓸쓸해졌다. 밤에는 맹수에 쫓기는 꿈을 꿨다. 사자 우리에 갇혀서 도망 다니다가 결국은 먹잇감이 되었다. 비명을 지르다가 깼다. 그 뒤로 잠들지 못했다.

사진속일상 2015.03.24

경안천에 나가다

걷기 위해서 밖으로 나간 게 한 달도 훨씬 더 전이었다. 추위 핑계를 대며 오랫동안 방에서 칩거했다. 눈 내린 뒤로는 산 출입도 삼갔다. 오늘은 작심하고 경안천에 나갔다. 바깥바람은 싸늘하지만 상쾌했다. 폐에 고인 곰팡내 나는 공기가 신선한 공기로 바뀌었다. 비록 완전한 야외는 아니지만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서 걷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경안천 산책로는 눈이 얼어 빙판으로 된 곳이 많아 멀리 나가지는 못했다. 쉬운 길을 따라 두 시간 정도 산책했다. 덤덤하게 지나가는 크리스마스다. 신앙도 거의 냉담 수준이다. 지금 내 마음은 거센 토네이도가 지나가고 난 뒤의 폐허 같다. 얼마 전부터 머리가 띵 하며 아픈 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어쨌든 한 해의 막바지에 와 있다.

사진속일상 2014.12.25

곤지암리조트 화담숲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리조트 안에 있는 화담숲은 LG상록재단에서 만든 수목원이다. 약 23만편의 면적에 17개의 다양한 주제정원이 있어, 사계절내내 다양한 식물과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숲을 지나는 산책 코스도 잘 만들어져 있다. '화담(和談)'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다. 집에서 멀지 않아 아내와 함께 오후에 가볍게 찾아가 보았다. 입장료가 8천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정성들여 잘 가꾸어 놓았고 분위기도 좋았다. 너무 인공적이어서 아쉽지만 자연과 함께 하루를 즐기는 장소로는 괜찮을 듯하다. 우리는 숲속산책길을 걸어 올라가서, 제일 외곽의 힐링숲길 2코스를 돌아 테마원을 구경하며 내려왔다. 거의 4시간 가까이 걸렸다. 길 식물 분재 힐링숲길 2코스에 독바위 전망대가 있었다. 여기서 보면 곤지암 스키장..

사진속일상 2014.10.08

가을 산책

9월의 마지막 날, 광릉수목원과 동구릉으로 아내와 가벼운 나들이를 나갔다.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햇빛과 공기가 먼저 가을이 가까이 와 있다는 걸 전해 주었다. 걷는 게 좋아서 수목원과 동구릉을 한 바퀴 돌았다. 이번에는 광릉수목원에서 전에 가 보지 못했던 동물원까지 다녀왔다. 동구릉은 가족 추억이 쌓인 장소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동구릉에 여러 차례 놀러 왔다. 가을에는 낙엽에서 뒹굴고,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워했다. 아내는 눈사람 만들 때 쓴 소도구까지 기억해 냈다. 가을이라는 계절과 이만큼 된 나이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 아내가 불면증으로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한다. 최근 들어 증세가 심해지고 있다. 고민을 끊으라고 충고하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옆에서 ..

사진속일상 2014.10.01

안산 꽃길

안산 자락길이 꽃길이 되었다. 예년보다 열흘 넘게 빨리 개화하면서 서울 벚꽃은 절정을 지나고 있다. 여의도를 비롯한 벚꽃 축제도 앞당겨 치렀다. 일찍 찾아온 봄이니 쉬이 갈 것이다. 생명이 있기에 유한하고, 유한한 것은 덧없다. 그중에서도 아름다움은 한 순간이다. 봄 꽃길을 걸으며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린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루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꽃들의향기 2014.04.08

짬뽕과 순대국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점심때가 지나면 시장기가 든다. 배는 고프고 집까지 가는 길도 멀면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해야 한다. 그때 내가 선택하는 건 짬뽕 아니면 순대국이다. 뭘 먹느냐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속을 시원하게 하고 싶을 때는 짬뽕, 고기 생각이 날 때는 순대국을 먹는다. 짬뽕과 순대국은 꼭 가는 집이 있다. '홍콩반점'은 짬뽕을 전문으로 하는 중국 음식점이다.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지만 그보다도 실내가 깔끔해서 좋다. 종업원도 여느 중국집과 달리 젊은이들이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으면 카페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집은 음식값을 선불로 받는다. 왜 그러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신선해서 재미있다. 어떤 날은 매운 짬뽕을 먹고 싶을..

길위의단상 2014.02.24

스쳐가는 나그네

스무날 만에 햇볕이 났다. 작은 배낭을 꺼내 뒷산에 들었다. 장마가 시작되고는 출입을 하지 않았으니 한 달이 넘었다. 숲은 물기를 털어내느라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긴 장마에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벽에서는 물방울이 송송 배어 나올 듯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창문을 활짝 열고 뽀송뽀송한 공기를 맞았다. 그동안 화장실에서는 퀴퀴한 곰팡내가 계속 났다. 아내가 제습기를 사야겠다는 걸 겨우 말렸다. 뭐든지 기계에 의존하는 게 싫었다. 산길에서는 모기와 날벌레들이 뜸해졌다. 한두 마리가 달라붙었지만 초여름의 극성스러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산에서 메뚜기를 보았다. 농약 때문에 산으로 피신 온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워낙 날쌔게 뛰어다녀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틀림없는 메뚜기였다. 다..

사진속일상 2013.07.26

징검다리

경안천을 산책할 때면 일부로라도 한 번은 이 징검다리를 건넌다. 옆에 번듯한 다리가 있지만 돌아서라도 이 징검다리를 찾게 된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사이를 사뿐사뿐 건너뛰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어릴 적 고향 마을 앞 개울에도 이런 징검다리가 있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쉽게 물에 잠겨 무릎 위까지 바지를 말아 올리고 건넜다. 심할 때는 아예 바지를 벗어 머리 위에 이고 건너기도 했다. 더 어렸을 때는 아버지 등에 업혀 건넜던 기억도 난다. 여름에 홍수라도 나면 당연히 학교로 가는 길이 끊겼다. 시멘트 다리가 있는 읍으로 해서 돌아가자면 두 시간이나 더 걸렸다. 저학년 아이들은 등교하는 걸 포기했고 학교에서도 말렸다. 학교에 안 가도 되는 동생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 뒤..

길위의단상 2013.06.12

장난감 디카로 찍어본 봄꽃

얼마 전에 값싼 디카를 하나 샀다. 하이마트에 갔더니 10만 원짜리 카메라가 있는 것이었다. 가격으로 치면 딱 장난감 수준인데, 사진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서 재미로 갖고 와 보았다. 카메라는 손에 들었는지도 모르게 작고 가볍다. 기능도 아주 단순하다.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우선 찍힌 사진을 보니 색깔이 너무 칙칙하다. 채도 조절을 해 보지만 한계가 있다. 그리고 초점 잡는데 너무 헤맨다. 꽃 같은 접사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또, 사진 저장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성질 급한 사람은 열 받게 생겼다. 렌즈 탓이겠지만 사진의 선예도도 많이 떨어진다. 하여튼 나에게는 재미있는 카메라다. 그러려니 하고 찍으면 사용 못 할 것도 없다. 사진의 질을 따지지 않는다면 넉넉히 쓸 수 있다. 앞으로 외출..

꽃들의향기 2013.04.08

서촌 산책

서촌(西村)은 조선시대 경복궁 서쪽에 있던 지역으로 주로 중인들이 살았다. 지금의 청운동, 효자동, 통의동, 체부동 일대에 해당한다. 골목 곳곳에는 오래 된 집이나 가게가 그대로 있어 변하지 않는 것의 편안함을 준다. 그중의 하나가 '대오서점'이다. 마침 주인 할머니가 외출하시다가 우리를 보고 구경하고 가라며 문을 다시 열어 주셨다. 한옥은 100년 가까이 되었고, 헌책방을 하신지도 60년이나 된다고 하셨다. 안으로 들어가니 집 내부도 헌책으로 빼곡했다. 집도 굉장히 낡았다. 책이 얼마나 판매되는지는 모르지만 이만큼 지켜오신 것만도 대단하다. 집을 팔려고 내놓으셨다는데 새 주인이 들어오면 이곳에도 아마 현대식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이상(李箱)이 살았던 집이 '제비다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문이 ..

사진속일상 2013.02.19

경안천을 산책하다

오랜만에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다. 봄기운마저 느껴지는 날씨였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경안천에 산책하러 나갔다. 이 겨울 두 달 동안 무등산에 한 번 다녀온 것 외에는 거의 두문불출이었다. 뒷산조차도 찾지 않고 겨울잠 흉내를 내보려고 했다. 둔해진 몸이 금방 느껴졌다. 평지길 걷기도 버거웠다. 저울에 올라 보지는 않았지만 몸무게도 최고 기록을 돌파했을지 모른다. 빈둥거려도 먹는 건 빠지지 않았으니 결과야 뻔하다. 그래도 기지개를 켜고 몸을 움직이면 이내 옛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 그걸 믿으므로 걱정하지는 않는다. 겨울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걸었다. 성남과 장호원을 연결하는 신설 도로가 광주를 지나간다.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상판 연결이 최근에 끝났다. 이 도로가 완공되면 경충대로의 교통 체증이 ..

사진속일상 2013.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