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서울 산책

샌. 2019. 12. 21. 20:44

친지 결혼식에 참석한 기회를 이용해 서울 길을 산책했다. 명동성당에서 서울시청,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거쳐 안국역까지 걸었다. 잔뜩 흐리다가 눈, 비 섞여 날리는 궂은 날이었다.

결혼식이 명동성당에서 있었다. 성탄절을 앞둔 때라 성당 앞에 아기 예수 구유가 설치되어 있다. 얼마 전에는 아기 예수가 누웠던 구유 조각이 1,400년 만에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허나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초라한 구유와 화려한 빌딩, 사람들은 어디에 경배하는 걸까?

옛 서울시청사는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되어 있다. 여러 문화 시설이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 이런 데 오면 서울특별시민이 부럽다.

세월호 기억의 공간도 있다.

시청 앞 광장은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 스케이트장을 정리하는 시간에는 심심하지 않도록 공연이 열린다. 촌사람이 볼 때는 민을 위한 배려가 지나치다 싶기도 하다. 혼자 있을 틈을 안 주는 게 발달한 문명의 특징이 아니던가.

오늘이 토요일이다. 세종로에서는 태극기 부대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들과 같이 걷고 그들 틈에 끼여 구경하면서 졸지에 그들의 일원이 되었다.

TV로만 보던 집회 장면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광화문에서 시청가지 세종로 거리 전체가 고함과 저주의 말로 가득했다. 주 집회 외에 군데군데 소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70대 이상 노인이었다.

그들도 촛불 집회를 보며 광기를 느꼈을까. 그때 억눌린 울분이 이제 터져나오는 걸까. 봉기가 일어나야 할 때인데, 무지몽재한 국민이 많아 답답하다고 침 튀기며 어느 연사가 말했다. 나도 그 무지몽매한 국민 중의 한 사람이다. 백 번을 양보해서 그들 주장이 옳더라도 이런 방식은 아니다. 언어며 행동이며 너무 천박하고 막무가내다.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생각 다름을 탓하는 게 아니다. 연륜 있는 노인의 품위를 바라는 건 아무래도 인간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탓일 게다.

역사박물관 옥상에 서면 경복궁과 북악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옥상에서는 태극기 부대 집회 장면이 바로 내려다 보였다. 오후 2시 무렵이다. 무대 사회자는 오늘도 150만 명이 모였다고 큰소리치던데, 위에서 보니 만 명도 채 안 돼 보였다. 머릿수로 하는 세 대결은 이제 삼가자. 진보 쪽도 마찬가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들렀으나 마땅한 전시가 없어 잠시 머물다 나왔다.

2019년의 연말에 오랜만에 서울 거리를 걸었다. 주말 서울 도심은 분주하고 시끄러웠다. 시민이 누려야 할 광화문 광장은 특정 세력에 의해 점령 당했다. 그러나 불편을 참는 게 민주주의이고, 너와 나의 목소리로 시끄러운 게 민주주의다. 정(正)과 반(反)이 부딪치면서 합(合)을 향해 나아나는 게 역사의 진로가 아니던가. 받아들이는 관점을 바꾸면 인간사는 한 편의 코미디로 볼 수도 있다. 그저 허허~ 웃어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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