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내가 싫어지는 날

샌. 2019. 12. 24. 18:43

 

내가 싫어지면서 우울한 날이 있다. 그런 때는 운동화 끈을 매고 집 밖으로 나간다. 집안에 있으면 어두운 감정의 늪에 점점 빠져들기 때문이다. 정처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타박타박 걷다 보면 토닥토닥 나를 다독여주는 손길을 느낀다. 그리고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다 괜찮아."

"아무렇지 않은 거야."

 

 

 

오랜만에 걸어보는 경안천이다. 경안천에는 한낮이 되었는 데아침 서리가 남아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 겨울 햇빛을 정면으로 쬐며 남쪽으로 내려간다. 시간이 지날 수록 햇볕에 서리가 녹듯 마음 속 응어리가 풀어진다. 못난 '나'가 내 안에서 그제야 미소를 짓는다.

 

 

두 시간여를 걷고 시장 안에 있는 단골 순댓국집에 들어간다. 점심때가 한참 지난 오후라 식당 안은 손님 너덧 명이 있을 뿐 조용하다. 순대 없는 순댓국에 참이슬 한 병을 주문한다. 맞은편 벽에 걸린 TV에서는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한일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하다. 제 혼자 떠들어대지만 혼자 온 사람에게 TV는 다정한 벗이 된다.

 

시장의 허름한 순댓국집은 찾아오는 사람들도 편안하다. 늦은 점심을 하는 시장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락거린다. 다들 나처럼 소주 한 병씩 옆에 두고 있다. 느긋한 오후 시간이다. 앞자리에 앉은 한 분은 종업원에게 슬그머니 안 호주머니에서 꺼낸 음료수를 건네준다. "고마워유" 하고 받는 종업원이나 손님이나 별다른 표정이 없다. 심플하다. 식당은 금방 고요를 되찾는다.

 

뜨끈한 순댓국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이면 소시민이 누리는 즐거움으로 그만이다. 말 그대로 '만 원의 행복'이다. 나는 휴대폰으로 내 마음을 전한다. 결코 알코올 기운 때문은 아니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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