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2월 중순 뒷산

샌. 2019. 12. 16. 16:11

 

한 달 반만에 뒷산을 찾다. 걷기를 위한 걸음도 꼭 그만큼만이다. 올해만큼 걷기를 소홀히 한 적도 없다. 등산은 두세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핑계는 있지만, 그냥 게을러졌다고 해야겠다.

 

며칠 전 모임에 나갔더니 다들 휴대폰으로 걸음수를 체크하며 하루 만 보 걷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옆에 앉았던 Y는 11월의 하루 평균 걸음수가 2만 보가 넘었다며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나도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한 번 발동이 꺼지니 다시 불붙이기 쉽지 않다. 더구나 겨울이 닥쳤으니 해동되는 내년 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

 

오랜만에 걸으니 우선 숨이 차다. 내 몸이 이렇게 무거웠나 싶다. 속도를 늦추고 쉬엄쉬엄 오른다. 등산화를 신고 집 밖을 나서기가 어렵지 어쨌든 나오면 좋다. 맑고 차가운 산기운을 흠뻑 들이킨다. 가끔 내려오는 사람과 만난다. 그중 한 사람이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한다. "어르신, 건강하시네요." 마치 큰형님을 대하는 듯한 공손한 말투다. 내가 볼 때는 그분이 훨씬 나이 많아 보인다. 70대 중반은 되었을 것이다. 도대체 내 나이가 얼마로 보였길래 할아버지한테서 '어르신' 소리를 들어야 한단 말인가. 40대 때까지도 동안(童顔)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젠 글러버렸다.

 

산 아래에는 요양병원이 있다. 겨울이 되니 병원 건물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유리창 너머로 유니폼을 입은 사람의 희미한 모습이 어른거린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언젠가는 나도 요양원 침대에 누워서 가지 못하는 산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해야 하리라. 그런 감정이입을 해 보면 슬퍼진다. 지금은 튼튼한 두 다리로 서서 병원을 내려다보지만 위치가 역전될 날이 미구에 닥칠 것이다. 아닌 척 해보지만 어찌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자랑할 일도, 시기할 일도, 까불 일도 없어라. 오는 것 막지 않고, 가는 것 붙잡지 않으며, 주시는 대로 살아갈 일이다. 지금 여기서 순리대로 아름답게 살면 되지 않겠는가. 미래는 상태가 아니라 그를 맞는 마음가짐으로 열릴 것이니까.

 

 

산길에는 사람 발을 닮은 나무가 있다.

얼마나 걷고 싶었으면 산길로 한 발을 내밀었을까?

나무야,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가고 싶은 데 다 돌아다니며 맘껏 살아보렴.

그러나 인간 중에는 너처럼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단다.

나도 전생에는 너를 꼭 닮은 나무였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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