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모임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반주로 소주 한 병을 겸한다. 뭐니뭐니 해도 술은 낮술이 최고다. 낮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장인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낮술에는 은퇴자라는 우리만의 특권이 있다.
주량이 많이 줄어 지금은 소주 반 병에서 한 병 사이가 적당하다. 반 병은 아쉽고 한 병이 넘으면 과해진다. 음주 실수가 잦은 편이라 절대 한 병은 넘지 않으려 한다. 낮술은 과음할 여지가 적어서 좋다. 식당에서는 마냥 죽치고 앉아 있을 수 없다. 밖에 나서면 환한 대낮인데다 술집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다.
동료와 헤어지고 탄천으로 산책을 나갔다. 알딸딸한 걸음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부드러웠다. 장마 그친 뒤 내리쬐는 염천의 땡볕도 상관 없었다. 여름 한낮의 산책로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길은 나 혼자 전세를 낸 것 같았다.
탄천에 만든 수영장에는 가족 단위 놀이객들이 많았다. 멀리 나가기보다 집 주변의 시설을 이용하는 알뜰 피서파가 아닌가 싶다.
며칠 전에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읽었는데 고독과 절망의 끝까지 밀려나간 바틀비라는 인물에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해졌다. 소설의 끝에 가서야 바틀비의 절망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밝혀진다. 그는 한때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소(Dead Letter Office)' 직원이었다. 바틀비는 천성적으로 창백한 절망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었으리라.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둔감하고 철면피한 사람들인가. 소설의 끝 대목은 이렇다.
"접힌 편지지 속에서 반지를 꺼내는데, 반지의 임자가 되어야 했을 그 손가락은 어쩌면 무덤 속에서 썩고 있을 것이다. 또한 자선헌금으로 최대한 신속하게 보낸 지폐 한 장을 꺼내지만 그 돈이 구제할 사람은 이제 먹을 수도 배고픔을 느낄 수도 없다. 그리고 뒤늦게 용서를 꺼내지만 그것을 받을 사람은 희망을 품지 못하고 죽었으며, 희소식을 꺼내지만 그것을 받을 사람은 구제되지 못한 재난에 질식당해 죽어버린 것이다. 삶의 심부름에 나선 이 편지들이 죽음으로 질주한 것이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눈부신 여름 햇살 속을 걸으며 나는 바틀비를 오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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