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여수천의 아침

샌. 2024. 8. 24. 15:41

 

야탑 모임에 나갈 때는 약속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간다. 그리고 예닐곱 버스 정거장 전에 내려 여수천을 따라 걸어서 약속 장소로 간다. 한적한 오전에 한가한 마음으로 걷는 행복한 시간이다.

 

여수천(麗水川)은 탄천의 지류다. 성남시 갈현동에서 시작하여 도촌동과 여수동을 지나 탄천과 합류한다. 길이가 4km 정도 되는 작은 하천이다. 관리를 잘해서 주변 환경이 깔끔하고 수질도 깨끗하다. 민물고기가 보이고 수량이 불어나면 탄천에서 커다란 잉어도 올라온다. 너구리를 주의하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다. 그만큼 야생동물의 서식 환경이 좋아졌다는 뜻이리라. 도시를 관통하는 살아 있는 하천의 존재가 무척 고맙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산책로가 한산하다. 사람이 들어간 사진을 찍자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느릿느릿 걸어도 몸에는 금방 땀이 밴다. 다리 밑 벤치에서 쉬면 서늘한 바람이 열기를 식혀준다. 졸졸 개울물 흐르는 소리와 강약의 장단에 맞추어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어울려 귀가 시원하다. 눈을 감으면 별유천지(別有天地)가 바로 여기인 것을.

 

 

벚나무가 있는 길에는 노랗게 말라버린 잎이 땅에 떨어져 길을 덮었다. 마치 늦가을 풍경 같다. 올여름의 뜨거웠던 기온 탓인지, 아니면 병충해 탓인지 알 수 없다. 미국흰불나방이 다량 번식하며 벚나무를 고사시킨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병충해도 원인을 따지자면 날씨와 연관되어 있다. 이상기후의 경고가 이미 우리 삶 곳곳에 가까이 와 있다.

 

 

여수천의 아침 시간을 사랑한다. 더없이 유유자적한 나만의 시간이다. 사람들로 들끓는 도심의 번화가에 있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비록 아파트에 살고 있긴 하지만 주변에는 아직 옛날 농촌의 흔적이 남아 있어 새벽이면 닭 울음소리에 설핏 잠이 깬다. 새벽을 깨우는 수탉 소리가 기운차고 정겹다. 현대를 살지만 어렸을 때의 원체험은 여전히 우리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다. 

 

유년의 기억이 소환되면 마음은 아늑하고 따스해진다. 나에게는 여수천의 이 아침 시간이 그러하다. 개울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일 없이 건너보고, 역시 나처럼 유유자적한 흰뺨검둥오리 가족을 물끄러미 바라도 본다. 다정했던 시간은 짧아서 더욱 그립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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