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봄 오시는 동네를 산책하다

샌. 2025. 3. 9. 10:27

봄 오시는 발걸음이 느리다. 시베리아의 한기가 늦게까지 한반도를 덮고 있었던 탓이다. 꽃 피는 시기가 예년에 비해 한두 주는 늦는 것 같다. 덩달아 세상살이에도 냉기가 걷히지 않고 있다. 우리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민주주의와 인류애라는 가치를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실감한다.

 

그래도 때가 되면 봄은 온다. 자연의 철리는 어김이 없다. 내복을 벗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

 

 

밖에서 놓아먹이는 닭을 만났다. 장닭 한 마리와 암탉 두 마리가 흙을 파헤치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자유롭고 기운찬 모습이 반가웠다. 특히 장닭의 기세는 지구를 떠받칠 듯 늠름했다. 셋은 기분이 좋은 듯 연신 꼬꼬 거리며 만족스러운 소리를 냈다. 닭장 안이 아니라 이렇듯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닭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밭의 허수아비도 한 살을 더 먹었겠다. 매년 달라지는 패션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동네 산책길에서는 요양병원 앞을 지나간다. 오후가 되어 햇빛이 비치면 병실에는 커튼이 처진다. 방향이 다른 병실에서는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가 보인다. 날씨가 따뜻하면 병원 앞 정원에는 면회 온 방문객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본다.

 

친구 모친은 10년 넘게 요양병원에서 지내신다. 오래전부터 치매를 앓아 지금은 자식도 알아보지 못한다. 돌아가실 준비를 하라는 연락도 여러 차례였다. 그때마다 종합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으며 생명이 연장되고 있다. 요양병원은 장수 사회의 그림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산기슭 응달진 곳에는 잔설이 남아 있지만,

 

 

목련 꽃망울의 솜털은 윤기로 반짝거린다. 산길의 생강나무에도 연노란 꽃색이 드러나고 있다. 이 도도히 흐르는 생명의 흐름을 막을 자 누구인가.

 

 

그저께 탄천에서 갓 피어난 개불알풀꽃을 봤다. 올해 우리 고장에서 본 첫 꽃이었다. 

 

 

"네가 틀렸다"라고 단정하기보다 "너와 나는 다르다" 정도로 이해하려 한다. '틀렸다'는 배척이지만, '다르다'는 공존의 가능성을 열어둔 말이다. 어젯밤에는 수면제를 먹고 나서야 늦게 잠들었다. 안팎으로 생기는 사건들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세월이 약'이 되길 지켜볼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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