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20권 읽기를 마쳤다. 작년 12월 초순에 시작했으니 넉 달 정도 걸린 셈이다. 통영에 있는 박경리 기념관을 찾았을 때 읽기를 결심했고, 다 읽은 뒤에는 하동 박경리 문학관에서 마무리했다.
소설 후반부는 일제강점기 말의 가혹한 탄압을 견뎌내야 하는 민초들의 삶이 그려진다. 영웅 중심의 서사가 아니라 이 강산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계층의 고군분투하는 삶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땅의 현실을 이만큼 구체적으로 기술한 소설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작가는 1969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25년이 지난 1994년에 이 소설을 완성하였다. 처음에는 최참판댁으로 대표되는 봉건적 사회제도와 신분질서의 해체를 다루는 1부로 끝낼 계획이었지만, 나중에 일제강점기 전체를 다루는 5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 문학계에 대단한 성과로 남게 되었다. 작가는 <토지>에 나오는 각양각색의 인간상을 통해 역사 속 인간의 한계와 극복하려는 노력, 그리고 삶의 의미를 장대한 파노라마로 펼쳐 보인다.
<토지>를 읽고난 뒤 같은 일제강점기 시대 민족의 애환을 다룬 장편소설을 읽고 있는데 워낙 거대한 산맥을 접하고 난 뒤라선지 밍밍하고 허술한 느낌이다. <토지>를 완성한 박경리 작가를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토지>의 마지막 장면이다.
"라지오에서 천황이 방송을 했소이다."
양현은 발길을 돌렸다. 집을 향해 달린다. 참, 참으로 긴 시간이었으며 길은 멀고도 멀었다.
"어머니! 어머니! 어디 계세요!"
빨래를 하고 있던 건이네가 놀라며 일어섰다.
"어머니! 어디 계세요!"
"저기, 벼, 별당에 계시는데."
양현은 별당으로 뛰어들었다. 서희는 투명하고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를 입고 푸른 해당화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양현을 입술을 떨었다. 몸도 떨었다. 말이 쉬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어머니! 이, 이 일본이 항복을 했다 합니다!"
"뭐라 했느냐?"
"일본이, 일본이 말예요, 항복을, 천황이 방송을 했다 합니다."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다음 순간 모녀는 부둥켜안았다. 이때 나루터에서는 읍내 갔다가 나룻배에서 내린 장연학이 둑길에서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며 걷고 있었다. 모자와 두루마기는 어디다 벗어 던졌는지 동저고리 바람으로,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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