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샌. 2025. 5. 14. 10:27

84세의 모리스 씨가 생의 마지막 날에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호텔 바에서 흑맥주와 위스키를 마시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소중했던 사람들을 추억하고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독백 형식의 소설이다. 청자는 미국에 사는 아들 케빈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아일랜드 출신의 앤 그리핀(Anne Griffin)이다. 여성 작가가 80대 남성의 심리를 이토록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오히려 여성의 감성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소설은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장과 끝 장을 뺀 중간 장에 다섯 명의 인물이 나오면서 건배를 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번째 건배: 토니를 위하여(흑맥주)

두번째 건배: 몰리를 위하여(부시밀스 21년 숙성 몰트위스키)

세번째 건배: 노린을 위하여(흑맥주)

네번째 건배: 캐빈을 위하여(제퍼슨 프레지덴셜 실렉트)

마지막 건배: 세이디를 위하여(미들턴 위스키)

이들과의 관계는 주인공과 형, 딸, 처제, 아들, 아내가 된다. 아들 케빈을 제외하고는 모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모리스 씨는 아일랜드에서 보통의 일생을 살았던 남자다. 어려운 소년 시절을 보내다가 사업에 성공한 자수성가형이다. 그런 과정에서 함께 고난과 인간애를 나눈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인 모리스 씨와 비슷한 연배인 나로서는 감정이입을 하며 읽었다. 만약 내가 살아온 과거를 회고한다면 건배할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도 했다. 모리스 씨가 많은 재산을 모았지만 인생의 마지막에 그가 추억하고 간직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과 우애,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의 원제는 'When All Is Said'이다. 직역하면 '모든 것이 말해졌을 때' 쯤 될까. 책을 다 읽고 나니 번역된 제목이 그리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특히 '눈부신'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모리스 씨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추억하며 호텔 바에서 건배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불현듯 위스키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위스키 바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옛날에는 조니 워커, 발렌타인 같은 것을 마실 기회가 가끔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졌다. 주량이 확 떨어졌으니 이젠 향기라도 음미해 보고 싶은 것이다. 

 

모리스 씨는 2년 전에 아내를 잃고 심한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나는 오늘밤에 죽을 것이다." 7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한다. 약을 구해준 사람은 아미오드, 디그, 젭을 으깨어서 술에 타서 먹으라고 했다. 그가 잔을 비우고 마지막으로 부른 이름은 아내 세이디였다.

"세이디, 거기 있어? 준비됐어? 나야... 모리스. 나 이제 집에 가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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