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벌인 이벤트 중 하나가 청와대의 용산 이전이었다. 돌격작전 하듯이 급작스럽게 시행되어 어리둥절했고 논란도 많았다. 어쨌든 슬로건대로 '청와대가 국민 품으로' 돌아왔다.
청와대가 일반에 개방되었지만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굳이 찾아가 볼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에 다녀온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보다가 경내에 있는 나무들에는 호기심이 일면서 직접 만나고 싶었다.
전 직장 동료와 북악산 트레킹을 계획하다가 청와대에서 시작하는 새로 난 코스로 오르기로 했다. 청와대 구경도 겸할 수 있게 되었다. 셋은 경복궁역에서 만났다. 비 그친 뒤 더욱 맑고 화창한 봄날이었다.
전에 왔을 때보다 경복궁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외국인들이 엄청 많아지고 대부분이 한복을 입고 있었다. 서울 관광의 트레이트 마크가 된 것 같다. 솔직히 경복궁보다 이런 외국인들 구경하는 재미가 더 있었다.
함화당 담 곁에 핀 부처꽃.
근정전 주변이 북적였으나 안으로 들어가니 조용해졌다.
경회루, 향원정을 거쳐 2007년에 복원된 건청궁을 둘러봤다. 건청궁(乾淸宮)은 고종 10년(1873)에 자신의 처소로 쓰기 위해 지은 건물로 사대부의 집과 모양이 비슷하다. 1895년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기도 하다. 툇마루에 앉아 곤녕합(坤寧閤) 주련에 대한 S형의 해설을 감상했다.
청와대는 대기 없이 입장할 정도로 한산했다. 더구나 65세 이상은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바로 들어갈 수 있다. S형의 안내로 청와대를 구석구석 알차게 돌아보았다.
본관 앞뜰에서는 구조물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어제 KBS의 열린음악회 공연이 있었단다.
청와대 뒤 북악산 기슭에 일명 '미남불'로 불리는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9세기 경 통일신라 시대 작품이라고 한다.
청와대는 경복궁 후원의 일부였다. 오운정(五雲亭)도 궁궐 안에서 휴식을 위해 지은 정자였을 것이다.
때죽나무꽃과 공조팝나무꽃.
청와대 관저로 대통령과 가족이 생활했던 공간이다. 탁 트인 앞과 달리 산으로 막힌 뒤는 습하면서 음침한 기운이 강했다. 이처럼 격리된 곳에서 어떤 이는 외로움을 느꼈을 수도 있었겠다.
침류각(枕流閣) 앞마당에 있는 감나무가 인상적이었다. 가을에 와 보면 더 멋질 것 같다.
산길을 걷는 중에 아카시꽃 사이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청와대에서 너무 시간이 지체되어 북악산에 오르려던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를 가벼이 봤는데 의외로 볼거리나 생각할거리가 많았다. 이왕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으니 잘 꾸며서 시민들의 휴식과 문화 공간으로 잘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북악산은 다음으로 미루고 삼청동 수제비집에서 수제비와 감자전, 막걸리로 늦은 점심을 했다.
북촌 골목길을 기웃거리다가,
열린송현녹지광장도 찾아보았다. 예전에 안국동에서 경복궁으로 갈 때는 오른쪽으로 높은 담장이 둘러싸고 있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늘 궁금했다. 미군 관련 시설이라는 대답만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열린 광장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월대(月臺)가 복원된 광화문 광장에도 들렀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에서 내려다본 경복궁과 청와대.
그 후부터가 문제였다. 이곳 근처에서 직장 생활할 때의 추억이 떠올라 술이 댕긴 것이다. 마침 자주 다니던 빈대떡 집이 가까이 있었다. 한 병 두 병 들이킨 막걸리가 과했다.
필름이 끊어졌고 집에 찾아오지 못해 헤맸다. 통제되지 못한 오줌이 흘러 바지가 흠뻑 젖었다. 이곳저곳 전화해 헛소리도 지껄였다. 술이 오버하면 나타나는 증상이다. 술기운을 빌려 괜히 시비를 거는 나쁜 습성도 있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을 모아보건대 버스 정류장의 그 사람은 왠 이런 미친 노인이 있는가,고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절주가 안 된다면 도리가 없다. 다시 금주를 결심한다!
사고 없이 집에까지 찾아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더 이상 노추(老醜)를 부리지 말자. 아, 한참이나 더 진중하고 겸손해야겠다. 오늘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의 날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