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이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이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고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다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 학살1 / 김남주
어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4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마침 <김남주 평전>을 읽고 있는데 책에 이 시가 실려 있다. 김남주는 남민전 사건으로 5.18 당시에는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는 감옥에서 몰래 시를 써서 외부로 내보내고 있었다. 김남주는 새로 들어오는 수감자들을 통해 광주 학살의 참상을 전해 들었을 테고, 울분과 비통 속에서 이런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학살1'은 네 편의 연작시 중 하나다.
5.18이 끝나고 수 년이 지나도록 광주의 민주화운동 세력은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집단 공황장애 비슷했을 것이다. 그러니 5.18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웠다. 이때 감옥에서 터져나온 김남주의 통곡은 모두를 전율케 했을 것이다. 시는 마치 5.18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생생했다. 김남주는 5.18을 단호하게 '학살'로 규정했다. 사람들은 김남주의 시를 음지에서 돌려보며 5.18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었다. 광주 5.18이 쿠데타 세력의 계획적인 학살이자 그에 맞선 민중의 항쟁이며, 배후에 미국이 있었다는 것, 군인들의 공격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적 폭력은 전적으로 정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김남주는 시인이 아니라 전사(戰士)라 불려지길 바랐다. <평전>을 읽어보니 범인은 감히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의기가 대단하신 분이었다. 만약 김남주가 5.18의 현장에 있었다면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 장렬하게 목숨을 바치지 않았을까 싶다. 되돌아보니 우리는 격동과 파란의 20세기 후반을 지나왔다. 이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험한 세파에 맞서 싸우며 자기희생을 불사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며 감사를 드린다. 그들이 뿌린 피의 과실을 우리는 따먹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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