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온 지 마흔해가 넘었어도
나는 지금도 산비알 무허가촌에 산다
수돗물을 받으러 새벽 비탈길을 종종걸음치는
가난한 아내와 부엌도 따로 없는 사글셋방에서 산다
문을 열면 봉당이자 바로 골목길이고
간밤에 취객들이 토해놓은 오물들로 신발이 더럽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얼려 공중화장실 앞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잠에서 깬다
지금도 꿈속에서는 벼랑에 달린 달개방에 산다
연탄불에 구운 노가리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는
골목 끝 잔술집 여주인은 한쪽 눈이 멀었다
삼분의 일은 검열로 찢겨나간 외국잡지에서
체 게바라와 마오를 발견하고 들떠서
떠들다 보면 그것도 꿈이다
지금도 밤늦도록 술주정 소리가 끊이지 않는
어수선한 달동네에 산다
전기도 안 들어와 흐린 촛불 밑에서
동네 봉제공장에서 얻어온 옷가지에 단추를 다는
가난한 아내의 기침 소리 속에 산다
도시락을 싸며 가난한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내가 불쌍해
오히려 눈에 그렁그렁 고인 눈물과 더불어 산다
세상은 바뀌고 또 바뀌었는데도
어쩌면 꿈만 아니고 생시에도
번지가 없어 마을사람들이 멋대로 붙인
서대문구 홍은동 산 일번지
나는 지금도 이 지번에 산다
- 가난한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 신경림
지난 22일에 신경림 시인이 향년 89세로 영면에 드셨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분이어서 갑자기 들린 부음에 놀랐다. 선생은 80대에도 등산을 하시고 여행을 즐기시는 등 무척 건강하다고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시인을 떠올리면 억눌리고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 "못난 놈" -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 하신 분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특히 붕괴되는 농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누구라도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시를 쓰셔서 더욱 공감이 되었다. 시인의 일생에서 대학을 마치고 충주로 낙향해서 지낸 10년이 시의 뿌리가 되지 않았나 싶다. 당시에 유행하던 서정시와 모더니즘에 등을 돌리고 리얼리즘에 기초한 참여시로 사회 변혁을 꿈꿨다. 7, 80년대 민주화운동에 큰 기여를 한 결과 당국으로부터는 불온시인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이 시는 가난하게 살던 시절의 아내를 회상하며 쓴 것이다. 시인은 충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홍은동 산동네에서 살림을 차리고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다. 60년대 가난한 시인의 삶이란 이 시에 묘사한 대로 너무나 빈궁했다. 하지만 아내는 7년 정도 함께 살며 고생만 하다가 일찍 세상을 뜨고 만다. 시인에게 아내는 평생에 잊지 못할 가여운 인연이었으리라.
선생의 시 두 편을 찾아 읽어본다. 시인의 시는 전반기와 후반기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전반기에는 시를 통한 사회 변혁의 꿈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홍수' 같은 시다.
혁명은 있어야겠다
아무래도 혁명은 있어야겠다
썩고 병든 것들을 뿌리째 뽑고
너절한 쓰레기며 누더기 따위 한파람에 몰아다가
서해바다에 갖다 처박는
보아라, 저 엄청한 힘을.
온갖 자질구레한 싸움질과 야비한 음모로 얼룩져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벌판을
검붉은 빛깔 하나고 뒤덮는
들어보아라, 저 크고 높은 통곡을.
혁명을 있어야겠다
아무래도 혁명은 있어야겠다
더러 곳곳하게 잘 자란 나무가 잘못 꺾이고
생글거리며 웃는 예쁜 꽃목이
어이없이 부러지는 일이 있더라도,
때로 연약한 벌레들이 휩쓸려 떠내려가며
애타게 울부짖는 안타까움이 있더라도,
그것들을 지켜보는 허망한 눈길이 있더라도.
- 홍수 / 신경림
노년이 되면 시인은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에 대한 달관의 자세를 보인다. 인생을 관조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7, 80년대의 정치 상황이 저항시를 쓰게 만들었다면, 90년대 이후에는 현실을 초월한 세상과 인생을 통찰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나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다시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 떠도는 자의 노래 / 신경림
선생을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사진으로 만나는 시인의 인상으로 보건대 마음이 착하고 순수한 분이였음에 틀림없다. 천상병 시인이 연상되기도 한다. 무슨 의미인지 해독이 안 되는 난해한 시에 짜증이 나다가 선생의 시를 만나면 한여름에 등목을 하는 것처럼 상쾌해진다. 선생님, 그동안 좋은 시를 만나게 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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