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산수 시간 / 유금옥

샌. 2024. 6. 16. 10:54

"개 삽니다아 발바리 삽니다아"

시골길에, 확성기를 단

트럭이 돌아다닙니다.

 

순호가 교실 밖으로

살금살금 달아납니다.

 

강아지풀이 꼬리를 흔드는

파아란 밭둑길을 뛰어갑니다.

복슬복슬한 흰 구름도 따라갑니다.

 

"개 삽니다아 발바리 삽니다아"

시골길에, 목쉰 트럭이

기웃기웃 돌아다닙니다.

 

순호가 교실 안으로 살금살금

강아지를 안고 들어옵니다.

 

친구들이 3, 1은 3. 3, 2, 6

3, 3, 9. 구구단을 외우고 있습니다.

목소리를 점점 높여 줍니다.

 

- 산수 시간 / 유금옥

 

어제 관악산에서 초등 동기들 모임이 있었다. 나는 나가지 않았지만 일흔을 훌쩍 넘긴 영감들 사진이 단톡방에 무더기로 올라왔다. 내 눈은 스르르 감기면서 타임머신을 탄 듯 60년 전으로 돌아간다. 아마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었을 것이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여섯 바퀴나 돌았으니 어찌 지금의 세태와 비교할 수 있으리. 뉴스로 접하는 요사이 교실 풍경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그 시절이라고 살아가는 게 팍팍하지 않았겠는가. 인간의 기억이 좋은 것은 떠오르고 안 좋은 것은 침전한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때는 순수와 낭만의 시대였다고 감히 말하련다. 사람의 심성이 지금처럼 오염되고 강퍅하지는 않았다. 

 

'산수' '국민학교'라는 말만 들어도 옛 추억이 소환된다. 이 동시와 비슷한 상황은 많이 일어났다. 수업 중이라도 아버지가 찾으면 책보를 싸들고 집에 가서 일손을 도와야 하던 동무가 있었다. 아예 중학교 진학은 포기했으니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던 그는 젊어서 서울에 올라와 어엿한 사장이 되었고 여전히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과외나 학원을 몰랐던 시절이었고, 전과나 수련장만 갖고 있어도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공부보다는 산과 강에서 뛰어놀고 바쁜 농사철에는 집 일을 도와주어야 했다. 그래봤자 송아지를 데리고 나가 풀을 뜯어먹이거나 꼴을 장만하는 정도였으니 그것도 놀이의 하나였다. 장난이 과해서 부모한테 바가지로 욕을 먹고 얻어터지는 경우도 흔했는데, 그것도 그러려니 하는 일상이었으니 순간만 지나면 그만이었다. 세상의 못된 풍조에 노출될 일이 없으니 하는 짓이나 생각이 어수룩하고 순진했다. 

 

요즈음은 유치원에 다닐 나이만 돼도 어른이 깜짝 놀랄 만한 말을 해서 놀래킨다. 어떤 때는 저 작은 몸뚱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진다. 똑똑한 건지 영악한 건지 모르겠다. TV에서는 상품화된 아이들을 등장시켜 시청률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감탄을 하다가도 때론 두려워진다. 시대가 바뀌면 동심(童心)도 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뭘 잘못 보는지도 모르겠다.

 

동시를 읽으면 마음이 정화된다. 그리고 나의 그 시절을 아련히 추억한다. 다섯 형제가 지지고볶고 했을 망정 그때가 우리의 화양연화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유 시인의 동시를 한 편 더 읽는다.

 

 

나뭇가지에 빈 가게 하나 있었어요 참새 두 마리가 날아와 화원을 차렸죠(햇살 꽃방) 정말 그날부터 햇빛들이 자전거 페달을 쌩쌩 밟았다니까요

 

가게에 봄이 한창일 때는 산들바람도 아르바이트를 했죠 사랑에 빠진 벌 나비가 주 고객이었는데요 창업에 성공한 사례였어요

 

참새들은 날개 달린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요 가위로 꽃대를 자르다 서로 눈이 부딪치면 재재거리며 웃었어요 앗! 그때 여름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갔어요

 

가을이 이삿짐 트럭을 타고 지나간 다음 날 나는 보았죠 양은냄비 브래지어 구도 숟가락들이 낙엽이 되다니 아스팔트 바닥에 나뒹굴다니

 

비 내리던 가을밤 무슨 일이 었었나요? 꽃방은 다시 문을 닫았어요 가랑잎 한 장만한 쪽지를 붙여 놓았지만 겨울 내내 가게는 나가질 않았어요 가게 세 줍니다(연락처: 살구나무)

 

- 가게 세 줍니다 / 유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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