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하나 듣겠나. 아인슈타인이 죽고나서 눈을 떠보니 천국이었지. 자기 바이올린도 있었어. 그는 기뻤지. 바이올린을 사랑했거든. 물리학보다 여자보다 더. 천국에서 연주 실력은 어떨지 알아보고 싶었어. 바이올린을 조율하는데 천사들이 급히 그에게 왔어.
- 뭐하는 건가?
- 연주하려고요.
- 관두게. 신께서 싫어하실 거야. 색소폰 연주자시거든.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멈췄어. 그런데 높은 곳에서 색소폰 연주가 들려와. 아인슈타인은 생각했지. 신과 함께 연주하겠어. 우리 합주는 근사할 거야. 그러고는 그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색소폰 연주가 멈추고 신이 나타났어. 신은 아인슈타인에게 다가와 사타구니를 뻥 찼어. 그가 사랑해 마지 않는 바이올린도 박살났지. 아인슈타인이 바닥에 누워 몸부림치는데 천사가 와서 말했지.
- 우리가 경고했지 않나. 신의 연주에 끼어들지 말라니까."
드라마 '삼체'에서 예원제가 사울에게 한 말이다. 예원제는 믿고 따랐던 삼체가 조직을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자살하려고 마음먹고는 사울에게 진심이 담긴 말을 한 것이다. 농담의 형식을 빌렸지만 의미심장한 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예원제는 지구 문명에 환멸을 느끼고 외계문명인 삼체와 접촉하면서 그들의 지구 점령을 돕는 역할을 한다. 삼체가 지구에 도착하는 동안 400년이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에 지구의 과학기술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주요한 임무다. 예원제가 과학자인 사울에게 한 말은 아마도 그런 의미일지 모른다.
소설을 읽지 않아 전체적인 내용은 모르겠으나 '삼체'는 우주 생명체와 그들이 만든 문명 상호간의 충돌에 얽힌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거의 무한한 크기와 무한한 시간을 가진 우주에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존재해야 정상이다. 우주인이 없는 게 도리어 이상하다. 그런데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인류가 다른 외계 문명과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우주 문명간의 접촉이 필연적으로 한쪽의 멸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다. 우주에 다수의 문명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다. 드라마의 분위기로 보건대 '삼체'가 다루는 주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류에 의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외계로의 진출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여기 있소"라고 선전하며 스스로 먹잇감이 되는 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간을 3차원으로 인식하지만 만약 고차원의 존재가 있다면 어느 날 마술 같은 현상을 보이며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지고서.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류는 문명의 유년기조차 지나지 못하고 잠시의 어리둥절을 남기고는 흡수 소멸되고 말 것이다.
내가 볼 때 외계문명과의 접촉 이전에 문명은 스스로 파멸할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모든 문명은 자기파괴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외계에서 지적 생명체를 발견하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문명이 어느 단계에 이르러 제어할 수 없는 임계치를 지나면 어떤 내부 모순에 의해 순식간에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인류의 과학기술도 그런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인공지능(AI)이 인류 문명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 될 수 있다,라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의 연주에 끼어들지 말라니까."
'삼체'의 이 대사는 우리 시대의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파라다이스일까, 아니면 지옥일까. 인간은 신의 영역을 넘어 스스로 신이 되려 하고 있다. 앞으로 인류가 나가는 길은 이제까지 인류 역사상의 어떤 변화보다도 근본적인 것이 될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볼 겨를도 없이 어느 순간 신세계가 열려 있을지 모른다. 아인슈타인이 신의 연주에 끼어들었다가 한 방 먹은 것은 차라리 애교였다고, 인류는 마지막 숨을 들이키며 통탄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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