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750

기다려지는 봄

봄기운을 느껴보려고 한강에 나가다. 남쪽의 꽃소식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그러나 이곳 강변의 싸늘한 바람은 몸을 움츠리게 한다. 봄은 마음으로 먼저 찾아와서 애를 태우지만 정작 본인은 느릿느릿 올라오시려는가 보다. 일요일 오후건만 한강 둔치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드문드문하다. 뚝섬유원지의 오리 보트들도 아직 겨울처럼 한데 묶여있다. 곧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저기 오리 가족들도 사람들의 명랑한 웃음을 싣고 한강을 헤엄칠 것이다. 차가운 강변에 서니 봄이 더욱 기다려진다. 그러나 봄의 선발대는 이미 상륙해 있을 것이다. 대기 중에는 선전포고를 앞둔 듯 벌써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하다.

사진속일상 2005.03.20

산길 걷기

산에 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산길을 걷는 것이 가장 좋다. 번잡하고 소란스럽던 마음이 산에 드는 순간 고요히 가라앉는다. 이리저리 방황하며 상처받고 토라진 마음도 산에 들면 어느 순간 넉넉하고 너그러워진다. 서울의 산은 휴일이면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아무리 명산이라지만 사람들이 너무 몰리면 시장통과 다르지 않다. 솔바람소리, 새소리, 작은 짐승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산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는 없다. 이쪽으로 이사를 오니 집 부근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작은 산이 하나 있다. 몇 번의 답사 끝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조용한 오솔길을 하나 발견했다. 어느 산이든 주등산로를 벗어나 샛길로 들면 이런 비밀스런 오솔길이 있기 마련이다. 거기는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아니고 ..

사진속일상 2005.03.14

망치질하는 사람

이 사람은 키가 22m, 몸무게는50t이 되는 거인이다.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하루 종일 내리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 작품은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설치 조형물인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이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대문 쪽으로가다 보면 곧 만나게 된다. 작품이 워낙 커서 아무리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잠시 멈춰서 바라보게 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모양과 규칙적인 동작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처음 이 사람을 보았을 때는 과연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좀 헷갈렸다. 육체 노동의 소중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것 같은데, 다르게 생각하니 쓸쓸한 노동의 종말을 대변해 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수많은 화이트칼라들이 다니는 도심의 한복판에 높..

사진속일상 2005.03.09

남도여행

아이들이 자라는데 따라 여행 패턴도 변하는 것 같다. 어릴 때는 아이들 중심으로 여행지가 결정되고 주로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이 되지만, 그러나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대개 끝이 나버린다. 이젠 부모를 따라다니지 않으려고 하거니와 부모 쪽에서도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다. 학원에 가야하고 공부를 해야 된다는데 그걸 이길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막내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이제 부부만의 오붓한 여행이 시작된다. 이때쯤 되면 인생의 한 고비가 지나갔음을 저절로 느끼게 되는 나이가 되는 것이다. 바쁜 세상살이에서 아내와 떠나는 여행이라야 1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다. 그러나 바쁜 세상살이란 어쩌면 핑계일지 모른다. 여행을 준비하고 떠나는 순간이 되어서야 왜 이런 행복한 시간을 자꾸만 뒤로 ..

사진속일상 2005.02.27

경복궁 돌담길

길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더 아름다운 길이 있다. 광화문에서 영추문(迎秋門)을 지나 청와대까지 이어지는 경복궁의 서편 돌담길은 내가 사랑하는 길이면서 출퇴근로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직장까지 이 길을 따라 걸어 다닌다. 키 높은 돌담과 아름드리 버즘나무가 도열한 이 길은 청와대 앞이라 경비가 삼엄해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호젓해서 좋다. 대개의 경우 사진처럼 길이 텅 비어 있다. 덕수궁 돌담길이 아기자기하고 여성적이라면, 경복궁 돌담길은 시원시원하게 뻗어있다. 이 길에 들면 시선이 단순해지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고달팠던 하루의 일상도 이 길에 서면 스르르 자취를 감추고 내면의 존재감이 다시 살아난다. 나에게는 사색과 성찰의 고마운 길이다. 이 길은 걷는 것이 즐거운 일임을 가르쳐 준다. 어떤 날은..

사진속일상 2005.02.21

아차산에 오르다

설을 고향에서 보내고 온 뒤로 하루를 푹 쉬었건만 몸은 천근같이 무겁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여간 힘든 노릇이 아니다. 예전과 달리 이젠 고향에 내려가도 부모님이나 친척 분들 대개가 연로하시고 병마에 시달리시기 때문에 마음마저 편치 않다. 자격지심인지 몰라도 명절이라고 내려가건만 자식 도리 못하는 걸 확인하는 절차 같아서 회한만 더해서 돌아오곤 한다. 오늘은 더 피곤해하는 아내를 억지로 앞세우고 아차산에 오르다. 아차산은 서울의 동쪽 끝에 있는 산으로 집에서 20분이면 걸어 도착할 수 있다. 해발 300m 정도로 높지 않은 산이기 때문에 가볍게 등산하기에 좋다. 처음에는 어떻게 올라갈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조금 걸으니 몸이 풀리고 발에 힘이 생긴다. 날씨가 풀린 토요일 오후라 등산로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진속일상 2005.02.12

소래 폐염전

외롭고 쓸쓸할 때는 쓸쓸한 풍경과 만나러 가자. 슬픔은 슬픔으로 위로받고, 쓸쓸함은 쓸쓸함으로 인하여 위안을 얻는다. 서해의 소래 포구 폐염전 - 한때는 하얀 소금의 산을 이루며 번성을 누리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갈대만 무성한 황폐한 들판이 되었다. 폐염전이야말로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가장 스산하고 쓸쓸한 풍경이다. 어디 그런 것이 소래 포구만이랴? 우리의 인생살이에서도 한 번의 영화가 지나면 쇠락의 쓸쓸함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다만 영광 뒤에 숨어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더 이상 소금을 생산하지 않는 바닥에는 풀들이 무성하다. 처음에 염전 바닥은 흙으로 된 토판(土板)이었다. 그 뒤에 항아리 등 옹기 깨진 것으로 바닥을 깔았고, 나중에는 검은 타일을 사용함으로써 소금 채취 작업..

사진속일상 2005.01.24

겨울나무

산꼭대기에서 눈꽃을 피우고 있는 겨울나무를 보았다. 기온은 영하 15도 가까이 떨어지고 바람도 거세 서 있기도 힘든 날씨였다. 나뭇가지에 핀 눈꽃도 바람에 쓸려 한쪽으로 피어있다. 동물은 굴속에 숨거나 겨울잠을 자며 이 계절을 견디지만, 나무는 자기 자리에서 한 발도 비켜서지 않은 채 혹한의 계절을 이겨낸다. 미리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고, 몸 안의 물기를 빼낸 뒤 겨울나무는 홀로 서 있다. 철저한 자기 부정과 비움을 통해 차가운 칼바람과 맞서는 것이다. 아마도 겨울나무는 바깥 냉기보다 더 차가운 얼음덩어리 하나 기르고 있을 것이다. 스키장에 가는 동료들을 따라나선 길이었다. 처음 가본 스키장은 예상 외로 규모가 컸다. 스키장 진입로 수 km에 걸쳐 숙박업소, 음식점, 장비 대여업소, 일반 상점들이 빽빽하..

사진속일상 2005.01.22

서해 낙조를 보다

강화에 가서낙조를 보다. 연일 춥던 날씨가 좀 풀리고 양지 바른 곳에서 쬐는 햇볕은 봄햇살처럼 부드러운 날, 친구와 강화도를 나들이를 가다. 갑곶돈대에서는 갯펄에서 졸고 있는 오리들도 보고, 400년이 되었다는 탱자나무도 보고, 그리고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 복고풍이 불었는지 길가 얼음판에는 썰매를 타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어른들도 덩달아 즐거워한다. 철사를 바닥에 깔고 창으로 찍어서 앞으로 가는 얼음썰매를 옛날에 우리는 '씨갯도'라고 불렀다. 그때는 스케이트를 타보근게 소원이었는데 이젠 인기 순위가 바뀌었다. 현대는 원시를 그리워하나 보다. 섬의 서쪽 해안가에는 '조단(照丹)'이라는 찻집이 있다. 저녁 무렵이면 손님이 많아지는 전망 좋은 찻집이다. 밖에서 보는 낙조도 아름답지..

사진속일상 2005.01.15

감기와 복숭아

그저께 안산에 가서 바깥 찬바람을 오래 쐬었더니 코감기가 찾아왔다. 쉼 없이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약간의 미열을 제외하고는 오직 코에만 이상이 나타났다. 특이한 감기다. 그러니 오히려 짜증이 더 난다. 이틀간 나 죽었소 하며 침대에서만 버티었다. 어제 오후에는 겨우 내내 기다리던 눈이 살짝 내렸다는데 그것도 모르고 어두운 방 안에서만 지냈다. 소식을 듣고 창문을 열어보니 눈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오늘은 저도 질렸는지 감기가 슬슬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다. 이때 마지막 아듀의 순서는 복숭아 통조림이다. 감기와 복숭아 통조림과의 연결은 그 연원이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나에게는 역사가 길다. 그것은 영양 보충제이면서 몸살의 특효약이다. 몸이 좋지 않으면 아내의 시장바구니에는 늘 복숭아 ..

사진속일상 2005.01.09

1단이 되다

휴게실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담배 연기 자욱한 속에서 바둑판 앞에 사람들이 늘 모여 있었다. 그러나 요사이는 개인별로 컴퓨터가 보급되고, 같이 모이기 보다는 각자 컴퓨터로 게임을 즐긴다. 그래서 휴게실에도 바둑판이 사라졌다. 바둑을 가끔씩 두는 편인데 아직 컴퓨터 바둑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대부분이 속기여서 생각할 여유가 없어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돌 놓는 소리, 사람들의 훈수하는 소리가 어우러진 바둑판 시절이 그리울 때가 많다. 컴퓨터 바둑에서 1단으로 올랐다. 처음에 2급으로 시작했는데 두 달만에 두 단계가 오른 셈이다. 실제 급수는5급 정도가 되는데 온라인 상에서는 급에 거품이 많이 끼여있는 것 같다. 한때 바둑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이젠 긴 시간 집중이되지 않는다. 수를 읽어내는 능력도..

사진속일상 2005.01.05

북한강의 아침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지는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12월 중순까지만 해도 너무 따스해서 걱정을 했건만, 연일 쉬지도 않고 이어지는 추위가 요놈들나 죽지 않았다는고함 소리처럼 매섭게 들린다. 아침에는 북한강변을 지나갔다. 수면 위로 수증기가 안개처럼 피어 오르고, 강변에 있는 나무에는수증기가 얼어붙어 하얀 얼음꽃을 만들었다. 자꾸만 옆으로 눈길이 가게 되는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자연은 아름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남쪽 아시아 지방에서는 해일로 인해 1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자연의 모습이다. 인간만을 위해 자연이 존재하지는않을 것이다. 또한 자연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헛된 욕망임도 알게 된다. 어디에선가 본 글이 생각난다. '인간은 자연에 굉장히..

사진속일상 2004.12.30

작은 예수

작은 시골 성당에서 성탄 미사를 드리다.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보며 '작은 예수'에 대해 잠시 묵상를 해 본다. 저 모습이 보여주는 것은 한없는 낮아짐이다. 구유 속의 아기 예수 모습은하느님 자신이 가난과 온유함을스스로 선택하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들에 대한 요구이기도 할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낮아지고 작아지라는 가르침으로 들린다. 그러나 가난은 부요함을 정복하고,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긴다. 낮아짐으로써 높아지고, 죽음으로써 생명을 얻는다는 역설의 진리를 아기 예수님은 보여주고 있다. 어느 단체에선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黨同伐異'(같은 사람끼리 무리지어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를 골랐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은 여전히 아우성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싹 트고 있다. 큰 것 보다는 ..

사진속일상 2004.12.25

어린이대공원 산책

주일 미사를 드리고 아내와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하다. 결혼 초 공원 가까이에 살 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놀러온 곳이다. 하나는 유모차에 태우고, 하나는 손을 잡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곳인데, 그때로부터 세월은 훌쩍 20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다 커서 각자 제 갈 길로 가고, 두 부부만이 옛날을 회상하며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제 무대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서 그만 또래의 아이들을 데리고 똑 같은 모습으로 웃고 있다. 긴 시간이 지난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 아이들로부터 해방된 자유가 좋지만, 허전함 또한 없지 않다. 그것은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을 골라 다녔지만, 이젠 둘이의 취향을 찾아 즐길 수 있는 것이 고마운 일이다. 사람들의 ..

사진속일상 2004.12.19

2004 겨울 세종로

퇴근길에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세종로를 따라 걷다. 세상은 불경기로 아우성인데 여기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가로수마다 전구로 장식되어 불꽃나무로 변했고, 마침 ‘루미나리에’(빛의 축제) 행사도 열려 눈을 어지럽게 한다. 사람들은 주광성 생물이라도 되는 양 밝은 빛 아래로 모여들어 즐기고 있다. 잠시일지라도 세상 시름 잊어버릴 만하다. 그러나 빛의 축제장 옆에서는 기아 어린이들을 위한 모금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건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는 못한다. 또 한 쪽에서는 보안법 폐지 촉구를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그 옆으로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 시끄럽고, 분주하고, 그리고 화려한 조명으로 번쩍이는 2004년 겨울, 서울의 모습이다.

사진속일상 2004.12.18

冬來不似冬

집 근처에 있는 둑길에 제비꽃이 피었다. 겨울에 개나리가 피는 것은 가끔씩 볼 수 있었지만, 이렇게 제비꽃이 피어난 것은 처음 보는 일이다. 서울 지방이 이런데 남쪽은 어떨까? 지구의 기후 변화에 대해 이젠 별로 놀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올 겨울은 지나칠 정도로 특이하다. 12월 중순이 지나도록 영하로 내려간 날이 이틀에 불과했다. 그것도 고작 영하 1, 2도에 지나기 않았다. 제대로 된 첫 눈 소식도 없이, 밤에도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며칠 전 인천에서는 17도까지 기온이 올라갔다. 기상 관측 이래 겨울 기온으로는 최고라고 한다. 봄에 피어야 할 꽃이 한겨울에 눈앞에 나타났다. 따스한 겨울을 다행으로 생각하기에는 지구가 말하는 징후가 심상치 않다. 제비꽃 외에 민들레, 개망초, 개나리도 보인다. ..

사진속일상 2004.12.17

커피 반 잔

속이 탈이 나서 일주일째 죽이나 싱거운 밥을 먹으며 지내고 있다. 좋아하는 술과 커피는 입에도 대지 못한다. 일년에 한 두 차례, 알코올과 커피가 과할 때는 꼭 이렇게 탈이 난다. 원래 위와 장이 부실해서 작은 찬 기운에도 설사가 나는데, 사실 술, 고기, 커피 같은 것이 내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다 이런 걸 과용하게 되면 속이 쓰리면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럴 때 상당 기간 기호품을 끊고 음식을 조심하면 다시 원 상태로 회복된다. 오늘은 옆 사람이 마시는 커피 향기를 견디지 못해 반 잔만 타서 마셔본다. 그리고 입안에 감도는 향기를 천천히 음미한다.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이다. 오늘따라 먹고 싶은 것도 많다. 튀김도 먹고 싶고, 크림빵도 먹고..

사진속일상 2004.12.07

따스한 겨울

겨울이 왔건만 봄날처럼 따스하다. 뜰에 있는 목련나무가 보드라운 솜털을 내며 꽃망울을 내밀려고 한다. 12월 초순이 되도록 아직 서울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도 전에 없던 현상이라고 한다. 올 겨울은 큰 추위가 없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겨울의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다. 날씨가 따스하면 겨울나기에는 좋겠지만 지구 기온 상승이 가져다 줄 재앙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 보도에는 북극의 빙하가 눈에 띄게 줄어든 사진이 실렸다. 그리고 중동과 중남미 지방에서는 메뚜기와 나비가 이상 번식을 해서 떼로 몰려다니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바다 속에도 열대성 어류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호주 해안가에서는 고래들이 땅 위로 올라와 때죽음을 했는데 이것도 인간의 해저 ..

사진속일상 2004.12.03

창덕궁의 늦단풍

창덕궁에 갔다가 뜻밖에도 아직 남아있는 단풍을 만났다. 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후원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진홍빛 단풍들이 올해의 마지막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창덕궁은 경복궁에 비해서 조용하고 여성적인 느낌이 든다. 특히 궁궐의 정원으로 조성된 후원은 뒷산의 자연 환경을 그대로 이용해서 만들어 그 안에 들면 엄마 품처럼 포근하다. 단풍나무길을 걸어가는 한 가족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후원에 있는 부용정(芙蓉亭)이다. 임금이 산책하다가 쉬는 장소였다는데 이곳에서 낚시를 하기고 했다 한다. 정자 모양이아담하고 예쁘다. 자연 속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으려 한 선조들의 지혜가 느껴진다. 산기슭의 낙엽이 오색 색종이를 뿌려놓은듯 다채롭다. 인정전(仁政殿). 편액에 쓰여있는대로 정말로 인정(仁政)이 실천되..

사진속일상 2004.11.27

아름다운 서울

어제, 첫눈이 흩뿌리던 날, 한국일보사 13층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먹구름이 몰려와서 눈발을 날리다가 어느새 해가 나기도 하는 변덕스런 날씨였다. 예전에는 이런 날을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서울시의 전망이 내 눈에는 다른 어디보다 제일 좋다. 경복궁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뒤쪽에는 북악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가 유일하게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악산과 인왕산 아래, 효자동을 중심으로 하는 이곳 주거지역은오래된 한옥들과 빌라들이 어우러져 있다. 건물들은 대부분 5층 이하의 낮은 키여서 나무들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상적인 녹색도시의 모습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남산에 오른..

사진속일상 2004.11.27

역마복(驛馬福)이 터진 해

2004년은 우리 가정에 역마복(驛馬福)이 터진 해이다. 역마살(驛馬煞)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전에서 찾아보니 '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된 액운'으로 나와 있는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을 액운으로보다는 복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역마복(驛馬福)이라는 말로 써 보았다. 우선 집이 이사를 했고, 나는 직장을 옮겼다. 이사를 하고 직장을 옮기는 것이 가끔씩 있는 일이지만 묘하게도 금년에 두 가지가 동시에 겹쳤다. 변화는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는 일이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힘든 만큼 얻는 것도 많다. 이사나 전근이 내 뜻대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것도 역마복(驛馬福)이라고 부를 수 ..

사진속일상 2004.11.23

IXY50을 사다

남대문에 나가서 캐논 디지털 카메라 'IXY50'을 샀다. 막내의 카메라가 고장나서 그동안 쓰던 IXUS400을 물려주고 비슷한 기능이지만 훨씬 가벼워지고 얇아진 것으로 바꾼 것이다. 이왕 바꾸는 것 욕심을 내어서 SLR 디카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휴대성을 우선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 카메라 편력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우선 디카는 COOLPIX2500, IXUS400을 거쳐서 지금이 세 번째이다. 모두가 소형 자동카메라인데 사실 고급기종에 대한 욕심은 지금은 없다. 그 전의 필카 때는 카메라나 렌즈에 대해 실력 이상으로무리를 했다. 지금 집에 있는 필름 카메라만도 4개나 된다. 렌즈는 광각 20mm 부터 망원 300mm 까지 7종류이다. 구름을 찍는다고, 별을 찍는다고, 그리고 나중에..

사진속일상 2004.11.20

합격 기원제

수능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수험생이나 가족들의 마음이 무척 초조하고 불안할 것이다. 그 과정을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로 생각하며 견디고 있지만 사실 대학을 향한 경쟁은 전쟁터와 비슷하다. 고3을 경험해 본 당사자나 학부모는 현 입시 제도나 교육 현실에 대하여 비판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뚜렷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까지나 이런 경쟁 체제 속에 우리 아이들을 팽개쳐 둘 것인지 이때가 되면 더 안타까워진다. 오늘 학교에서는 수능 고득점을 위한 기원제가 열렸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행사까지 열리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지켜보는 내내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기원문이 낭독되고, 절을 하고, 돼지머리에는 봉투가 쌓인다. '제신(諸神)들이시여, 우리 아이들이 모르..

사진속일상 2004.11.12

두물머리

터에 가는 길에 두물머리에 잠시 들리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양서면 양수리에 해당되는 곳이다. 그동안 차로 지나다니기만 했지 내려서 강변에 나가보기는 처음이다. 사람이없는 곳을 찾아서 강가에 서니 갈대를 비롯한 수생식물들이 강을 가득 덮고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강에도, 산에도 가을이 잔뜩 익었다. 바로 머리 위를 지나가는 고가도로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음만 아니라면 몇 시간이고 이 고즈넉한 풍경과 같이 있고 싶어진다. 그래도 짧은 시간이지만 도시인의 탁한 눈이 맑게 씻어짐을 느끼며 자리를 뜬다. 인근에 세미원(洗美苑)이라는 수련 전시장이 있다. 이미 철 지난 연못에는 한 생을 마친 연잎이 마른 몸을 물 위에뉘고 편히 쉬고 있다. 오후의 가을 햇빛이 눈부시다. 실..

사진속일상 2004.11.07

작은 전시회

저녁부터 가을비가 내리다. 그림을 그리는 동료의 작품 전시회에 가다. 찻집의 한쪽 벽면을 이용한 작은 전시회이다. 전시된 작품은 다섯 점인데 모두 생소한 기법으로 제작되어 있다. 액자의 유리 표면에도 물감을 칠해서 효과를 낸 것이 인상적이다. 소재는 전원 풍경과 현대 도시의 구조물들이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것은 간소하고 작은 전시회인 것이다. 보통 생각하는 미술 전시회라면 입구에 화환이 늘어서 있고, 부담을 주는 큰 방명록도 펼쳐져 있고, 그리고 관람객의 기를 죽이는 넓은 홀과 환한 조명이 연상된다. 그런 곳에서 나 같은 사람은 괜히 의기소침해진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는 작은 찻집의 벽면을 이용했다. 작품 밑에서 차를 마시며 부담 없이 얘기를 나눈다.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른다. 작가가 아닌 보통 사..

사진속일상 2004.11.05

교정의 가을

가을비가 지나가니 가을 색이 더 깊어졌다. 가을 교정은 빨강, 노랑, 초록의 빛깔로 가득하다. 나무는 물론 땅도 사람 얼굴도 온통 단풍물이 들었다. 가을의 아름다움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11월 초순의 짧은 한 때, 스쳐가듯 우리 마음을 흔들며 가을의 정령이 지나가고 있다. 느티나무 아래에 떨어진 낙엽이 곱고도 포근하다. 복자기나무에도 빨간 물이 들었다. 건물 벽에 매달린 담쟁이 덩굴도 대부분 떨어지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밑에서 올려다 본 층층나무 잎도 은은하게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사진속일상 2004.11.03

가을 나들이

동료들과 경기도 가평에 있는 매봉을 찾았다. 7명이서 지프와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갔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고 외진 산이어서선지 험한 비포장길을 한참을 가야 했다. 결국 승용차는 끝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K와 나는 자원해서 뒤에 처지게 되었다. 그래서 정상에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산 아랫쪽에서 수락폭포라는 비경을 만나서 늦가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었다. 산의 나무들은 벌써 몸의 물을 비우면서 겨울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땅으로 돌아온 나뭇잎들이 발에 밟히는 소리가 유난히 사각거렸다. 특히 계곡의 물 위에 떨어진 잎은 단풍의 선명한 색깔을 그대로 유지한 채 평화롭고 아름답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화려한 단풍철은 지나서마치 잔치가 끝난 자리처럼 아쉽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대신에 늦가을의 산은 삶의..

사진속일상 2004.10.31

사라지는 것은 아름답다

사무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도 가을이 한껏 익고 있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맞으러 멀리 찾아 나서지 않아도 좋다. 단풍이 든 한 그루의 나무, 그 아래에 쌓이는 낙엽, 그리고 청명한 저 하늘과 바람이 온 가을을 다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생명은 사라질 수 있기에 더욱 아름답다. 벚꽃이 1년 내내 피어 있다면 누가 그 아름다움을 찬탄하겠는가? 사라진다는 것은 새 생명에 대한 약속이다. 죽음이 없으면 태어남도 없다. 잎사귀가 떨어진 가지에는 이미 새 눈이 움트고 있다. 그래서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답다. 우리의 사라져 가는 청춘에, 또 지나가는 한 해에 너무 아쉬워 말자. 꽃도 시간도 사랑도 사람도 결국엔 모두 사라져 가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뒤를 따라오는 새..

사진속일상 2004.10.27

귀로

단풍철이어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다. 그래도 도착지를 알리는 저 불빛이 정겹다. 집에는 포근한 가족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따스하다. 가을은 돌아옴의 계절이다. 낙엽이 어머니 대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듯, 길 떠났던 사람들이 지친 몸을 돌려 본향을 찾아 회귀하는 계절이다. 세파에 지치고 상채기가 난 몸을 고향은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위로해 준다. 옛집을 찾아 돌아오는 탕자를 아버지는 마을 어귀까지 마중나와 반기면서 잔치를 베푼다. 이 계절에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떠나왔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 사람들은 아마도 저 세상의 관문에서 따스한 빛의 존재를 만날 것 같다. 그 기쁨과 환희의 마음이 아름다운 저녁 노을이 되어 지상에 남은 우리들에게 비쳐..

사진속일상 2004.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