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670

행복한 시간

자전거를 세워 놓고 강변에 앉아 석양을 본다. 퇴근할 때 자주 만나는 저녁 풍경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시간, 한낮의 분주함과 소란함이 서서히 잦아들고 모든 사물이 무채색 속으로 스며드는 안식과 평화의 시간, 비록 하찮은 하루였을지라도 상처 입고, 상처를 주며 아쉽기만 한 하루였을지라도 어쩐지 모든 걸 다 사랑하고 용서할 것 같은 넉넉한 마음이 되는시간,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 비록 도시의 한가운데지만 이런 저녁 무렵이 나는 가장 좋다.

사진속일상 2003.11.14

솔직한 급훈

어느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 걸려 있는 급훈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설명을 듣고는 이해가 되었지만 그러나 뒷 맛이 씁쓸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주위에는 유명 대학들이 여럿 있다. 연대, 이화여대, 서강대, 홍익대, 서울대, 건국대, 한양대 등등..... 여기에 다니는 학생들은 주로 2호선을 타고 등하교를 한다. 결국 `2호선을 타자`란 말은 이런 유명 대학들에 진학하자는 뜻일게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겉으로는 전인 교육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은 입시 학원에 다름없다. 교육 과정이나 활동이 지적 분야의 경쟁에만 편중되어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성실이라든가 노력, 착함 같은 인성적 측면을 강조했는데 이젠 노골적으로 입시 경쟁에 내몰고 있다. 그나마 솔직하다고 인정해주어야 할 것인지..

사진속일상 2003.11.07

쓸쓸해서 아름다운 계절

터에 다녀오는 길에 영릉에 들리다. 쓸쓸해서 도리어 아름다운 계절..... 가을은 쓸쓸함과 아름다움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루는 계절이다. 오늘은 눈물이 날 정도로 햇살이 눈부시다. 낙엽 지는 나무 아래서 어린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푸르다. 옆의 한 아주머니 왈 "불경기라더니 그렇지도 않네." 그만큼 나들이 인파가 경내에 가득하다. 아무리 사는게 폭폭할지라도 이런 여유마저 없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그런데 연못의 잉어는 전혀 딴 세상이다. 관람객들이 한 봉지에 천원씩 사서 던져주는 먹이가 계속 하늘에서 떨어진다. "와, 쟤들은 배 터져서 죽겠다." 그냥 이리저리 지느러미만 움직이면 된다. 먹이를 구하기 수월해서인가, 쉼없이 먹어대기만 한다. 그래서 길이가 3m나 되는 놈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 ..

사진속일상 2003.10.26

따스함이 그립다

날씨가 싸늘해졌다. 따스한 온기가 그리운 때가 왔다. 그러나 물리적 온기보다는 마음의 온기, 인정의 따스함이 더욱 그리운 때이다. 인사동 찻집에서 저 등불을 보았다. 가스등 모양을 한 작은 등이었는데 참 따스하게 느껴졌다. 우리속에도 저런 마음의 등불이 들어 있을까? 때가 낀 유리문도닦고 주위도 깨끗하게 청소한 뒤에 기름도 알맞게 채워서 내 마음의 등불도 저렇게 따스한 불 밝히고 싶다. 우리 모두 욕심과 미움과 다툼을 버리고 마음 속에작은 빛 하나씩 밝히고 산다면 그래서 각자의 불빛이 밖으로 피어나와 서로를 비추어 준다면 이 세상이 훨씬 더 밝아지고 따스해 질 것 같다. ----------------------------------------------------- 다와는 무엇이 즐거운지 계속 콧노래를 ..

사진속일상 2003.10.24

가을엔 편지를 띄우세요

가을비가 내린다. 도시의 아스팔트 길도, 노랗게 물들어가는은행나무 가로수도 비에젖고 있다. 내 마음도 비에 젖는다. 아침부터 분주하던 마음이 가을비에 젖어 차분해진다. 이러다가는 너무 가라앉을까 봐서 걱정이다. 또 우울증이 찾아 오면 어떡하나..... 그러나 적당한 우울과 쓸쓸함은 정신의 보약이 될 수도 있다. 자연과 차단된 여기 사무실 가운데서도 빗소리는 나를 가을의 스산한 늪 속으로 빠지게 한다. [반가운 분이 보내준 갈대 사진 중 하나] 한참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분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 아름다운 가을에... 행복하세요.....` 짧은 내용이었으나 따스했다. 그리고 서정 가득한 가을 풍경 사진 여러 장을 같이 보내 주었다. 나도 오늘은 뜸했던 친구들에게 편지를 띄어야겠다. 오해로 소원해진 여러 사..

사진속일상 2003.10.21

코스모스 씨를 받다

잠실 쪽 한강 둔치에는 긴 코스모스 길이 있다. 두 달 가까이 아름다운 꽃을 피어 주어서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잎도 시들고, 꽃들도 대부분 지고 그 자리에는 까만 씨가 맺혔다. 퇴근하면서 며칠동안 이 씨를 받았다. 날카로운 끝 부분에 찔리기도 하고, 손가락에서는 코스모스 냄새가 배어 버렸다. 내년 봄에는 내 시골 터에다 코스모스 씨를 뿌릴 계획이다. 집과 마당이 코스모스로 둘러싸여 있는 모양을 그려보면 즐겁다. 욕심이라면 동네 길도 코스모스 길을 만들고 싶다. 온 동네가 코스모스 꽃밭인 시골 마을, 이것 역시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친구들은 씨를 맺고 벌써 땅에 떨어져 내년을 약속하고 있는데, 어떤 친구는 이제야 꽃잎을 활짝 피우고 ..

사진속일상 2003.10.17

국화 전시회

코엑스 앞에서 열리고 있는 국화 전시회장을 찾다. 국화의 종류나 색깔은 상상 외로 다양하고 많았다. 보통은 노란 색의 많은 잎이 중앙으로 뭉쳐진 모양이 연상되는데 그러나 크기나 모양이 각양각색이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이는 파란 색 국화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국화에 대한 고정된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초보자를 위해서 품종 이름과 특성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다. 바른 명칭은 아니지만 통상 들국화라고 부르는 우리 야생화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구절초얼마가 한 쪽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었다. 1500여년 전 도연명의 손에 들려 있었을 국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괜히 쓸데없는 게 궁금해 진다.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아득히 남산을 바라보네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

사진속일상 2003.10.11

감나무

감나무 바라보기 김광섭 (.........) 멍청하니 오랫동안 감나무를 바라보면 어떨까 바쁘게 달려가다가 힐끗 한 번 쳐다보고 재빨리 사진 한 장 찍은 다음 앞길 서두르지 말고 그 자리에 서서 또는 앉아서 홀린 듯 하염없이 감나무를 바라보면 어떨까 우리도 잠깐 가을 식구가 되어 작년 늦가을, 친구와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이 많이 남아서 경복궁에 들어가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북쪽 어느 모퉁이에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아마도 관상용으로 감은 따지 않고 그냥 두었는가 보다. 덕분에 까치 두 마리가 포식하고 있었다. 까치밥이 아니라 까치의 잔칫상이었다.

사진속일상 2003.10.10

어느 묘비석

산길을 가는데 묘비석 하나가 길에 나뒹굴고 있었다. 까만 돌에 정성들여 음각한 글자가 선명한데 어쩌다 제 자리에 있지 못하고 길에 파묻혀 등산객들 발길에 밟히고 있는지 안타깝기만 했다. 그 비문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기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하여 평생을 바쁘게 일 속에서 사시다 가신 아버님께서 잠드시다. 우리들이 짐을 벗겨드리기 전에 먼저 가셨다. 이제 무거웠던 짐을 다 벗어놓으시고 편히 쉬시옵소서. 가을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처럼, 선인들처럼 바쁜 걸음 멈추고 저 흙으로, 고요로 돌아가리라.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사진속일상 2003.10.09

개업 선물

밤새 대전 상가에 다녀온 후 새로 개업한 사우나에 들렀다. 개업 선물로 휴대용 화장지를 주는데 업주 지음이라고 적힌 참승리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꿈은 금이요, 그 성취는 은이며 또한 실패는 다이아몬드니 좌절뒤 도전은 이 모두를 다 갖는 것이다. 아마 이분도 실패와 좌절을 겪으셨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다짐으로 이런 글귀를 적지 않았을까? 업주님, 사업의 번창을 기원합니다.....

사진속일상 2003.10.03

남이섬에 다녀오다

[남이섬의 메타세콰이어 길 - 멀리 찍힌 다정한 연인이다가오더니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 하늘에 이끌려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도시를 벗어나니 가을이 성큼 가까이 와 있었다.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자연의 순환 -- 고달픈 인생사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야속할 정도로 자연의 변화는 냉정하다. 우리나라 자살자 수가 노인만 하루에 7명이 넘는다고 하는 보도를 어제 신문에서 보았다. 그렇다면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하루에 얼마나 되는 걸까? 수십명? 수백명? 그들의 절망감은 얼마나 컸던 것일까? 막상 자살을 결행하지 못하는 같은 고통의 또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것은 동시에 나의 아픔에 대한 위로도 된다. 누구 하나 가..

사진속일상 2003.09.30

가을 유감

가을이다. 시름 가득한 세상 가운데로 가을이 오고 있다. 몇 달간 지루하게 계속된 장마가 농부들의 애를 태우더니 명절날 찾아온 `매미`의 날개짓으로 남부 지방은 쑥대밭이 되었다. Exodus Korea의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한국을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살아가는게 폭폭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그건 비단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악질적인 투기와 싸움박질, 있는 사람은 더욱 부자가 되고없는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기고 있다. 누구는 소주 한 잔 마시기도 힘든데, 누구는 천만원짜리 양주잔을 홀짝인다. 이 정권에 걸었던 작은 희망마저 이젠 접어야할까 보다. 어제 저녁에 TV로 백기완님의 노나메기 강의를 들었다. `노나메기`란 같이 일하..

사진속일상 2003.09.16

어머니의 송편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고, 어머니는 가마솥에서 떡을 찝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은 저의 몫이죠. 이내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구수한 떡 내음이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언제 느껴도 풍성하고 따스한 추석 풍경..... 그러나 세월은 많은 것을 떠나 보내고, 낡게 만들고, 지금은 어머니의 등마저 휘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어머니가 쪄 주시는 송편 맛을 볼 수 있을런지... 정다운 것과 만나는 기쁨 속에는 떠나 보내야 하는 슬픔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사진속일상 200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