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어린이대공원 산책

샌. 2004. 12. 19. 19:43

주일 미사를 드리고 아내와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하다. 결혼 초 공원 가까이에 살 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놀러온 곳이다. 하나는 유모차에 태우고, 하나는 손을 잡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곳인데, 그때로부터 세월은 훌쩍 20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다 커서 각자 제 갈 길로 가고, 두 부부만이 옛날을 회상하며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제 무대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서 그만 또래의 아이들을 데리고 똑 같은 모습으로 웃고 있다.

 

긴 시간이 지난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 아이들로부터 해방된 자유가 좋지만, 허전함 또한 없지 않다. 그것은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을 골라 다녔지만, 이젠 둘이의 취향을 찾아 즐길 수 있는 것이 고마운 일이다. 사람들의 북적거림, 원숭이의 재롱, 신기한 동물의 모습도 여전히 흥미롭긴 하지만 그보다는 조용한 숲길, 나무와 풀들, 새들을 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특히 오늘은 비록 우리 안에서긴 하지만 뜻밖에도 재두루미를 만나서 기뻤다. 두루미는 사람 쪽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와서 내 코와 두루미 부리가 맞닿을 정도까지 되었다.

 

철원에 가서 필드스코프로 야생의 두루미를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대면한 것은 처음이다. 부리에 난 구멍, 붉은 눈동자, 둥근 귓털, 그리고 깃털 하나하나까지 세세히 볼 수 있었다. 카메라를 꺼내니 예쁘게 포즈까지 잡아준다. 아무리 보아도귀공자다운 자태는 뭇새들의 으뜸이다. 역시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는 말 그대로이다. 다만 저 푸른 창공과 단절되어 좁은 우리에 갇혀 시원하게 날개짓 한 번 못하는 새의 심정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안타깝다.

한 곳에 가니 ‘소망나무’가 있어 사람들이 적어서 걸어놓은 작은 쪽지로 나무가 하얗다. 아내가 대뜸 우리 아이들을 위해 소망을 적어 걸어두자고 한다. 그래서 나무에는 꿈 하나가 새로 보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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