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672

봄비의 속삭임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도시의 보도 블록 위로 비가 내린다. 도시의 소음에 묻혀 소리도 없이 비가 내린다. 시멘트 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 작은 생명에게는 단비가 되어 내린다. 그 위를 지나가는한 사람의 발걸음이 바쁘다. 이런 날은 산골에 있는외딴 집 툇마루에 앉아 빗소리만 듣고 싶다. 황토 마당에 구멍을 내며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만 듣고 싶다. 세상에서 멀어지면 더 이상 사람 때문에 외로워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쉼없이 내리는 봄비는 자꾸만 나에게 속삭인다. 이젠 돌아가라고, 무거운 짐 벗고 이젠 홀가분해 지라고..... 일어나 지금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가지 얽고 진흙 발라 조그만 초가 지어 아홉 이랑 콩밭 일구어 꿀벌 치면서 벌들 잉잉 우는 숲에 나 홀로 살리 거기 평화 깃들어 고요히 날개 펴..

사진속일상 2004.05.28

능원사에서

터에 오가는 길에 능원사가 있다. 그 앞으로 지나다니기만 했는데 어제는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축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 능원사에 들렀다. 어릴 때 외할머니를 따라 간 초파일 날의 절 분위기가 내 머리에는 아직 남아있다. 고향 마을에서 산모퉁이를 하나 돌면 청계사라는 작은 절이 있었는데, 평시에는 들어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한적했다. 그런데 사월 초파일이 되면 여러 마을에서 모인 할머니, 어머니들로 좁은 절은 축제터로 변했다. 아이들은 맛있는 것도 얻어먹으며, 무엇이 그리 신났는지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놀았다. 운동회의 만국기처럼 연등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밑에서 사람들은 마음 속 소원을 부처님께 빌고, 그 가피를 믿으며, 이 세상에 오신 부처님을 경축하는 축제의 날, 이 정도가 석..

사진속일상 2004.05.27

나무가 아파요

서울 시내를 걷다보면 가로수에 번호가 적힌 명찰이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못을 박아서 나무에 걸어 놓았는데 바라볼 때마다 영 기분이 꺼림찍하다. 물론 충분히 검토를 하고 나무에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겠지만 그렇더라도 나무에 박힌 못은 왠지 불편하다. 몇 년 전에 소백산을 찾았을 때였다. 순흥 쪽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사라는 작은 사찰이 하나 있다. 그런데 절 경내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소나무 두 그루에 큼지막한 대못이 박혀있는 것이었다. 보통 볼 수 있는 못이 아니고 대형 공사장에서나 쓸 법한 아주 큰 못이었다. 그 광경은 날 얼어붙게 만들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뭔가가 적혀있는 플랭카드를 걸기 위해서 그 짓을 한 것이었다..

사진속일상 2004.05.25

낙화

오가는 출퇴근길의 중간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며 옛날 권력자들의 안가로 사용되었던 집들을 헐고 공원을 조성해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자그마한 공원에는 여러 가지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몇 종류의 꽃들도 자라고 있다. 흠이라면 너무 인공적이고 깔끔한 것인데, 그래도 그곳을 지날 때마다 과거에는 여기가 서슬 퍼렀던 높은 분들의 회식과 밀담 장소였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때 같았으면 감히 옆을 지나다니지도 못했을 것이다. 공원 한 귀퉁이에 모란이 피었다가 얼마 전에 보니까 꽃잎이 모두 떨어졌다. 싱싱한 꽃잎이 시들지 않은 채 그대로 땅에 떨어져 있는 모습이 동백만큼 비장하지는 못해도 왠지 슬픈 감정을 자아낸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사진속일상 2004.05.20

신록

신록의 계절이다. 이양하의 '신록예찬'에서 신록을 유년과 장년과 노년으로 나누었는데 아마 지금의 신록은 유년과 장년의 사이쯤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른 봄, 이제 막 나무에서 새 잎이 나온 직후의 연한 연둣빛 색깔을 좋아하지만 지금처럼 아직 녹음에 이르기 전, 연초록의 빛깔이 나무를 감싸고 그래서 온산이 초록 물감으로 뒤덮인 이 때도 좋다. 사람으로 치면 파릇파릇한 십대의 모습일 것이다. 확실히 신록에는 사람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는 묘한 힘이 있는 듯하다. 지난 주말에 고향을 다녀오며 대둔산에 들렀다. 나이가 들어서 찾는 고향은 이미 예전의 고향이 아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많은 것들이 낡고 허물어지고, 어릴 적 동무들은 그 자리에 없고, 연로하신 부모님은 병과 세월의 무게 앞에서 힘들어 하신다. ..

사진속일상 2004.05.13

서울 광장

서울에 살지만 도심에 나가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 지하철로 이동하기 때문에 지상의 풍경을 보기란 무척 드물다. 그래서 가끔씩 마주치는 서울의 모습이 낯설 때가 많다. 뭐가 그리 쉽게 자주 변하는지 서울 시민이지만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은 며칠 전에 개장했다는 서울 광장을 보고 싶어서 작심하고 시청 앞으로 나가 보았다. 초록 잔디가 시원하게 깔려 있어서 우선 시각적으로 밝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전체 모양은 타원형이라지만 잔디 위에 있으면 너무 넓어서인지 그 윤곽이 들어오지 않는다. 잔디 위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한가로운 평일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유와 평화가 느껴진다. 그리고 온통 빌딩으로 둘러싸인 사방과 대조되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나무나 벤치같은 ..

사진속일상 2004.05.04

외롭고 힘들 때

삶이 외롭고 힘들 때 찾아가 위로받을 수 있는 자기만의 장소가 있나요? 어제 오후에는 서해안의 외진 곳, 신두리 사구(沙丘)를 찾아갔다. 신두리 사구는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보존된 유일한 모래 언덕이라고 하는데, 약 1만년여에 걸쳐 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해안가를 따라 사람 키 높이 정도의 모래 언덕이 바다를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사구 위에는 여러 종류의 키 작은 풀들이 자라고 있는데 동식물이 관련된 생태적으로도 소중한 장소라고 한다. 저녁 무렵, 이 인적 드문 사구에서 바다를 마주보고 앉아 있으면 주변의 황량한 풍경과 어울려,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어떤 마음의 아픈 상처라도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쓸쓸한 들판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그리..

사진속일상 2004.04.30

생명

작년 가을에 이웃에서 꽃잔디 몇 줄기를 꺾어다 집 주위에 심었다. 그 당시 상황이 무척 힘들었을 때라서 꽃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도 못했는데 겨울이 되니 새까맣게 말라 버려서 죽었는가 보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봄이 되니 어느 날 갑자기 한 무더기의 꽃을 피어 올렸다. 이걸 보니 작은 풀꽃에 불과할지라도 그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꽃을 보면 희망을 떠올린다. 또 고맙고 미안하다. 우리가 미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나 작은 풀꽃에 들어있는 이런 생명력을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그것은 인간 속에도 내재하는 생명력과도 동일하며 서로 통하고 있다고 본다. 이 우주는 생명의 바다이다. 어느 책에서 한 스님의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태백산 깊은 암자에서 수행하시던 분인데, 늘 새들이..

사진속일상 2004.04.28

춘색(春色)

터에 다녀오는 길은 봄으로 가득했다. 사계절이 모두 나름대로의 특징과 아름다움이 있지만 일년 중 지금 이 때만큼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취하게 하는 때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터의 집 앞에 앉아서, 또는 오고가는 길에서 봄의 향기에 취하고 또 취했다. 몇 장의 사진을 남겼지만 마음의 감흥을 어찌 다 옮길 수 있을까? 세상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으로 무척 아름답다.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소박하고 겸허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지지 아니할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고귀한 순간의 단풍 또 낙엽송을 보라. 그것이 드물다 하면 이즘의 섶, 밤, 버들 또는 임간(林間)에 있는 이름없는 이 풀 저 풀을 보라. 그의 청..

사진속일상 2004.04.18

봄 강가에서

여주, 양평을 지나는 남한강과 춘천, 청평을 지나는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난다. 흔히 두물머리라고 부르는 곳이다. 여기에서부터 한강이 되어 서울을 지나 서해로 흘러간다. 이 강들을 따라 나있는 도로는 사람들의 생활로이면서 멋진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특히 지금과 같은 때이면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다. 강과 야산의 어우러짐 속에 온갖 봄꽃들이 눈부시고, 갓 돋아난 새 잎들의 연초록 색깔은 사람의 넋을 빼어 놓는다. 눈길 가는 어디든 그림이나 사진의 소재가 되지 않을 곳이 없다. 천변만화하는 풍경이며 산색(山色)이지만 나는일년 중 이 때를 가장 좋아한다. 나무에서 갓 생겨난 이파리들이 만드는 색깔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냥 멍하니 앉아 몇 시간이고 바라보곤 했다. 오늘은 남한강변을 따라 올라오..

사진속일상 2004.04.11

경주의 봄

경주에 출장을 다녀왔다. 남녘 지방이라 역시 봄이 한 발 앞서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길섶에서는 현호색, 꽃다지, 민들레, 괴불주머니 같은 꽃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안압지의 진달래도 환하게 피어났다. 진달래를 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 고향에서는 이 꽃을 참꽃이라고 불렀다. 봄이 되면 마을 뒷산이 붉게 물들었다. 지금처럼 나무가 우거지지 않아서 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산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배 고프면 진달래를따 먹었다. 그러면 손가락에도 발간 물이 들고 입술은 새까매졌다. 진달래는 가장 어린 시절을 추억케 하는 꽃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보문단지의 벚꽃길은 아직 개화 전이었다. 나무들이 볼그스름하게 꽃망울을 달고 있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 곧 터져 나올 듯 보였다. 그 때가 되면 어..

사진속일상 2004.03.28

春來不似春

그저께 저녁부터 내린 눈이 폭설이 되어 중부 지방을 마비시켰다. 3월에 내린 눈으로서는 기상 관측이래 최대라고 한다. 고속도로에 갇힌 사람들에게 헬리콥터로 생필품을 공급하는 모습이꼭 전쟁터 같다. 오늘은 눈이 많이 녹았는데도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스산하다. 바람마저 차서 정말 春來不似春이다. 어찌된 일인지 비나 눈이나 바람이 왔다 하면 기록을 갈아치운다. 쇼킹한 뉴스도 흔해지면 시큰둥해져 버리듯 기상 이변도 이젠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걸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어제 저녁에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이런 눈은 시집 와서 처음이라면서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처마까지 눈이 쌓여 겨우 길 내고 옆 집에 다닌다고 하셨다. 세상이 시끄러우니 날씨마저..

사진속일상 2004.03.06

동생네 집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동해 바다로 갔다. 3시간여를 달려간 곳은 낙산 해수욕장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더니 아침이 되니 고요해 졌다. 가지 가지 사연을 안고선 사람들 너머로 해가 떠올랐다. 어제 밤에는 해안가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돌아보니 아내와의 여행도 근 5년 만이다. 자주 여행을 다닌 편이었는데 터에 미친 뒤로는 발길이 뚝 끊어졌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잃게 되는 터였다.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것이 어느 때가 되면 하찮은 것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리고 반대로 하찮게 여겼던 것의 가치가 새롭게 살아나기도 한다. 내 주위를 스쳐가는 만상들은 상대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그 중 어느 하나에 집착함이 얼마나 우스운 노릇인가! 나는 왜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고 가볍게 살기가 힘..

사진속일상 2004.02.28

봄이 오는 소리

자전거를 타고 집 옆에 있는 공원을 찾다. 며칠 전에 비가 내린 후 기온은 다시 내려갔지만 대기 중에는 이미 봄기운이 완연하다.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나 표정에서도 봄이 오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간지럼 같이 속삭임 같이 봄의 숨결이 잠자고 있던 생명체를 깨우고 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보인다. 관음(觀音)이라고 불리는 부처가 있다는데 `소리를 본다`는 의미를 요즈음 같으면 나같이 아둔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버드나무에도 어느덧 초록의 물이 들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마흔 번 넘게 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기적이고 축복이라고 한 어느 분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이 손님을 지금 몇 번째나 맞고 있는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이 기적의 잔치를 다시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그 외에 더..

사진속일상 2004.02.24

산야초차 선물

몇 달 전에 `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 이야기`라는 책을 샀다. 책을 구매한 사람중에서 추첨을 해서 저자가 직접 덖은 산야초차를 선물한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냥 잊고 지냈다. 그런데 한참 뒤에 당첨되었다는 연락이 왔고, 작은 산야초차 한 봉지가 배달되어 왔다. 뚜껑을 여니 연잎차라고 적혀 있는데, 달여 마시거나 녹차처럼 여러번 우려 마시라고 되어있다. 작은 선물이지만 무척 감사하고 기뻤다. 지리산 어딘가에서 자라던 연잎이 누군가의 정성에 의해 이렇게 만들어져서 내 앞에 놓여있다. 내가 이 차를 마시는 것은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과 동시에 지리산의 정기를 내 속에 모시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전문희님은 특이한 분이다. 서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지내다가 어머니의 암 치료를 위해서고향으로 ..

사진속일상 2004.02.06

자전거 산책

날씨가 포근해졌다. 따스한 햇살에 봄기운마저 느껴진다. 그동안 쉬고 있던 자전거를 닦고 기름친 다음에 한강으로 타러 나간다. 그러나 강변의 바람은 의외로 차다. 가만 있으면 따스한데 달리면 찬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손이 시럽고 눈에서는 눈물도 나온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하다. 도시의 가운데에서그나마 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잘 마련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서울의 동과 서를 완전히 관통할 수도 있고, 또 각 지천을 따라서도 자전거 여행을 할 수가 있다. 욕심이라면 이런 자전거 도로가 일반 거리에도 되어 있어서 누구나 손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시의 인구 밀도가 높고 길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무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앞으로의 교통 정책은 자동차 중심의 구조에서..

사진속일상 2004.01.31

한강이 얼다

며칠간 된추위가 계속되더니 한강이 꽁꽁 얼었다. 설날을 정점으로 해서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씨가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 오늘한강에 나가 보았는데 한낮인데도 강변의 바람은 아직 칼같이 매섭다. 이렇게 기온이 떨어지면 고통받는 것은 대개 서민들이다. 계절로 보아서는 당연히 추워야 하고 또 추운 것이 정상이지만,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혹독한 때이기도 하다. 이번 추위에도 노숙자가 사망하고, 보온이 잘 안된 보일러나 수도관이 얼어터지고 하는 보도들이 안타깝게 한다. 지금 나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스위치 하나만 돌리면 여름이 무색하게지내고 있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실내에서도 내복을 입고 지내보자고 결심한 적도 있지만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그리고 난방비 걱정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골로 내려가면 ..

사진속일상 2004.01.25

Delete!

컴퓨터에는 [Delete] 키가 있어서 원하는 것을 지울 수가 있다. 그런데 세상 일에도 작동되는 [Delete] 키는 없을까? 이 세상을 프로그래밍한 절대 존재의 손에는 이 키가 들려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술봉 같은이 키를 잠시나마 빌릴 수 있다면..... 돈만이 최고라고 외쳐대는 물신(物神)의 우상숭배를 Delete! 개발과 성장에 중독된 자본주의의 탐욕을 Delete! 자본의 부스러기에 기생하는 사이비 설교자들을 Delete!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와 어리석음을 Delete! 차떼기로 주고 받으면서도 뻔뻔하기만 한 저 도적놈들의 소굴을 Delete! 권력에 아부하느라 꼬리치기 바쁜 똥강아지들을 Delete! 이리저리 눈치 보느라 눈만 반들반들해진 영악한 쥐새끼들을 Delete! 돈이 되는 ..

사진속일상 2004.01.19

겨울 산길을 걷다

어제는 직장 동료들과 예봉산(禮峰山)을 올랐다. 예봉산은 경기도 남양주군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683m이다. 옛날에는 겨울 한양의 땔감을 대부분 이 산에서 벌채해 한강을 따라 날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큰 나무는 별로 없고, 다만 군데 군데 눈에 뜨이는 노거목들이 그 때의 정황을 전해주고 있다. 산의 이름이나 생김새는 다르지만 산에 들면 그런 구별은 사라지고 어느 산에서나 공통된 마음의 넉넉함과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산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이런 마음의 여유일 것이다. 그것은 아직 우리가 이해하기 못하는 산의 정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산 기운이 우리 마음을 순화시키고 세상의 욕망을 잠재워 준다고 말이다. 바닥에서 아웅다웅 다투며 속 끓이고 하던 것들이 산길을 걸으면 기이하게도 봄 ..

사진속일상 2004.01.17

동면(冬眠)

한겨울이 되니 자꾸 졸음이 찾아온다. 동면(冬眠)에 들어가야 할 때인가 보다. 일상의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그간 블로그 신세를 많이 졌다. 덕분에 내 본 일기장은 부피가 얇아져 버렸지만..... 또 몇기억에 남는 분과 만난 것도 고마운 일이다. 그래도 눈을 뜨는 틈틈에는 이곳에 들릴 예정이다. 모든 분들, 새해 복(福) 많이 지으시고, 뜻하신 일들 잘 이루어지시길 기도드립니다.

사진속일상 2003.12.29

성탄

"이 세상으로부터 그대의 이름을 떼어버린다면, 세계가 그 근저로부터 뒤흔들리리라." --르낭 오전 성탄 미사에 다녀오다. 성당 마당과 제대 앞에는 아기 예수가 모셔져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예했고, 아기 예수를 경배했다. 역사적 예수가 어떤 분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또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우리 영혼을 일깨우는예수와의 만남은 어느 순간 우리를 찾아온다. 그것은 개인에게전 생애를 변화시키는 특별한 만남이 될 수도 있다. 내 존재와 삶을 변화시키는 그런 실존적 만남이야말로 예수가 이 땅에 찾아온 이유일 것이다. 20대 이후 몇 차례 이분과의 만남을 경험했지만 나는 아직 이분을 잘 모른다. 어느 때는그림자를 보고 이분의 ..

사진속일상 2003.12.25

Happy Christmas!

♡ 올림픽공원의 크리스마스 트리 오전까지 안개가 자욱했다. 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포근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을텐데...... ................................ 오늘은 가난과 낮음을 택하신 그 분을 텅 빈 마음이 되어 맞이하고 싶다. 내 마음 속에 그 분의 따스한 불빛 하나 간직하고 싶다. .............................. 모든 분들, 그리고 아름다운 창조 세계의 뭇 존재들과 함께 Happy Christmas! 를......... .........................

사진속일상 2003.12.24

금강에는 철새가 없다

어제 몇이서 금강 하구로 철새를 보러 갔다. 혹시나 가창오리 떼의 저녁 군무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금강에서는 철새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숫자를 셀 수 있을 정도의 오리류들 만이 수면 위에 작은 점으로 떠있었다. 탐조대의 안내 데스크에 물으니 약 30만 마리가 와 있다고 하는데 다들 어디에 숨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으나 오리 무리의 멋진 비행은 끝내 보지 못했다. 실망한 우리들 머리 위로 예닐곱 마리의 기러기 가족이 북쪽으로 날아갔다. 철새를 본다고 기대에 부풀어 따라나섰던한 사람은 아주 실망한 눈치다. 때를 잘못 선택했기도 있지만 이런 것은 TV를 통해 눈 맛을 버려놓은 탓도있지 않는가 싶다. 우리는화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너무나 멋진 광경을 ..

사진속일상 2003.12.17

월드컵의 추억

어제 일산에 다녀오면서 월드컵 공원에 들렀다. 예전에는 난지도로 불리웠던 섬이었는데 서울 시민들의 쓰레기를 15년 동안이나 쌓아 올려서 지금은 높이 100m의 산으로 변해 버렸다. 그 쓰레기 위에다 흙을 덮고는 공원으로 조성했다. 올라가 보니 주로 억새가 많이 심어져 있다. 그런데 1억t의 쓰레기더미 위에 서 있는 느낌이 묘했다. 지금 발 밑에서는 온갖 쓰레기들이 썩어가고 있을 것이다. 침출수와 가스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 부패 위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화스럽기만 한 풍경이 아이러니칼했다. 이 공원은 현대 문명의 상징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치 희망의 땅이라도 될 듯이 한 쪽에서는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쉽게 갖다 버린 쓰레기는 분명 그만한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

사진속일상 2003.12.13

아내의 내복을 입다

날씨가 추워져서 내복을 입으려니까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아내의 내복을 입기로 했다. 아랫도리 중에서 제일 헐렁한 것을 골라 입으니 그런대로 몸에 맞는다. 여자 옷을 입으면 고추가 떨어진다며 아내가놀린다. 그러나 이젠 별로 쓸데도 없지 않느냐며 같이 웃다. 다른 사람 몰래 바지를 치켜 올리고 보면 무척 재미있다. 분홍색 바탕에는 예쁜 무늬도 들어 있다. 불편한 점이라면 화장실에 가서 거시기할 때 뿐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의아해 하겠지. 만약 안다면 不出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ㅋㅋㅋ......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든 재미있다. 똑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이런 사소한 변화를 즐긴들 누가 탓하랴.

사진속일상 2003.12.10

그림자

어제 밤, 퇴근하는 길 가로등 불빛을 받은 나무 그림자가 벽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물체의 그림자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길 위에 또는 벽에 드리운 그림자들, 특히 앙상한 나무 가지가 만드는 그림자 무늬에는 자주 발길을 멈추게 된다. 플라톤은 동굴 비유로 그림자 현실과 이데아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우리네 삶이란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더 높은 차원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림자가 주는 이미지는 특별하다. 그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무언가를 말하는 듯 하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이다. 罔兩이 景에게 물었다. "당신이 조금 전에는 걸어가더니 지금은 멈추었고, 조금 전에는 앉았더니 지금은 일어섰으니, 왜 그렇게 줏대가 없소?" 景이 대답했다. "내가 딴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런 것 ..

사진속일상 2003.12.06

겨울 나무 아래서

겨울 나무 밑에 앉아 있다. 벌거벗은 나신(裸身)이지만 부끄러움은 없다. 편안하다. 고개를 드니 나무가지가 그리는 기하학적인 선의 그림이 아름답다. 세 나무가 공중에서는 서로 뒤엉켜 마치 한 몸인 듯 사이좋게 어울려 있다. 겉치레를 버린 겨울 나무는 솔직하고 단순하다. 무척 가벼울 것 같다. 그러나 속으로는 추운 계절을 견뎌내려는 스스로의 엄격함이 있을 것이다. 통하는 것이 남녀간에 정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과 나무 사이에도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통하는 기운이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 이른 봄에 후배와 축령산으로 야생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이 친구는 돋보기와 청진기를 들고 왔다. 산에 가는데 왠 청진기인가. 정신없이꽃 사진을 찍다가 둘러보니 친구는 나무 하나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

사진속일상 2003.12.04

김칫독을 묻으며

오늘 아침 고향 마을은 늦게까지 안개가 자욱했다. 고향집 뒤 야산의 나무들도 아침 안개에 오랫동안 젖어 있었다. 어제는 어머니, 동생네 식구들과 같이 겨울 김장을 담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터에 들러 집 뒤안에 김칫독을묻었다. .................... 눈 내리는 날, 집 뒤안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발걸음이 아름다운 그런 그리운 집이 될 수 있을려나..... ...............................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사진속일상 200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