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672

작은 연못

교정에 작은 연못이 있다. 수면에는 꽃 그림자가 비치고, 물에는 금붕어와 잉어들이 살고 있는 언제 보아도 평화로운 작은 세계이다. 금붕어는 수면 근처에서 아기자기하게 놀고 있고, 잉어는 속에서 의젓하게 돌아다닌다. 자신들이 놀고 있는 영역이 있지만 그러나 그 사이에 경계는 없다. 가끔씩 잉어가 수면으로 떠올라와도 금붕어는 개의치 않는다. 금붕어는 이름 그대로 노는 양이 귀엽고 재미있다. 물에 비친 꽃잎과도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금붕어는 움직이는 꽃잎이다.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

사진속일상 2005.06.24

동생은 재주꾼

동생은 재주꾼이다. 뭐든 못하는 일이 없다. 동생은 어느 날 갑자기 도시 생활을 접고 가족과 강원도 산골로 들어갔다. 벌써 4년이 되었다. 그동안 자신의 손으로몇 년에 걸쳐 흙집을 지었다. 그동안은 주변이 어수선했는데 이번에 갔더니 많이 정리가 되고, 생활도 안정되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농사도 짓고, 산으로 약초도 뜯으러 다니며 재미있게 사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리고 이제 마음의 여유도 많이 생긴 것 같았다. 집 입구에 있는 장승도 동생이 직접 만든것이다. 또 서각을 배우더니 자신의 집을 '達屯煙家'라 칭하고멋지게 글자를 새겨 길 옆에 걸어 두었다. 민박을 겸하고 있으니 집의 간판인 셈이다. 동생은 이웃들과도 잘 어울린다. 귀농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웃과의 관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데 동생은 처신을..

사진속일상 2005.06.16

그리움

무엇이 그리운지 풀은 갈 수 없는 땅 위로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여기는 인간의 땅이야, 너희들은 오지 마. 너와 나의 경계를 가르는 백색의 선 - 그 너머도 예전에는 풀들의 고향이었다. 변방으로 내몰린 인디언들처럼 나중에는 풀들도 쫓겨나 야생풀 보호구역에서나 볼 수 있게 될지도 몰라. 그리움에 몸을 흔들며 자꾸만 키가 크고픈 고요한 한낮.

사진속일상 2005.06.09

경복궁 향원정

퇴근하며 옆의 동료와 경복궁에 들리다. 평일의 늦은 오후여서인지 고궁은 조용하다. 늘 단체 관람객들로 시끌벅적하던 경복궁이 인적이 그치니 제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문을 닫는 오후 6시가 가까워지니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고궁은 적막 속에 잠긴다. 경복궁의 뒤에 있는 향원정은 그래서 더욱 고즈넉하다. 1870년 대에 향원지라는 연못을 파면서 지었다는데 나무로 만든 저 다리가 향기에 취한다는 취향교(醉香橋)이다. 이곳은 왕실 전용 휴식공간으로 아마도 가장 은밀한 곳이었을 것이다. 향원정 둘레의 연못에는 노랑어리연꽃과 수련이 곱게 피어있다. 이 어리연꽃을 구경하러 찾아온 사람들이 연못 둘레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풍경이 평화롭다. 어느 분은 햇빛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연꽃의 색깔을 본다며 몇 시..

사진속일상 2005.05.30

손맛

지난 주에 남대문에 나가서 니콘 D70을 샀다. 디카로 넘어오면서 그동안 소형의 자동 카메라를 사용했는데 휴대성이 좋고간편해서 마음에 들었지만내 의도대로 사진을 만들지 못하는 단점이 점점 크게 느껴졌다. 전에 SLR 필카를 썼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이번에 큰 마음 먹고 DSLR인 D70 바디를 산 것이다. 필카 때 쓰던 렌즈가있어서 그냥 이용할 수 있기에 선택에망설임은 없었다. 렌즈는 18-35mm, 80mm, 105mm 마크로, 180mm가 있으니 지금으로서는 부족함이 없다. 아쉽다면 이 디카에서는 거의 1.5배 정도 망원쪽으로 편향이 되어 광각 효과가 약화된다는 사실이다. 낚시꾼들은 종종 손맛이라는 말을 쓴다. 오랜만에 손에 꽉 차는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어보니 똑딱이에서는 느낄 수 없..

사진속일상 2005.05.24

건설공화국

대한민국은 건설공화국이다. 과거에는 시장의 별명이 '불도저'인 때도 있었다. 그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파괴한 청계천을 복원 시키느라고 다시 몇 년째 대공사를 벌이고 있다. 도시고 농촌이고 어디를 가나 허물고 파헤치느라 국토는 망신창이가 되었다. 특히 고속철도의 고가 구조물은 아무리 보아도 흉물스럽기만 하다. 특히 새만금 방조제, 지방 공항등 정치나 경제 논리에 의해 시행된 대규모 사업들의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본은 멀쩡한 아파트도 헐어 버린다. 말 그대로 '공사를 위한 공사'로 보이는 쓸데없는 짓거리들이 널려져 있다. 오직 고용 창출과 성장지수를 높이기 위해서 벌어지는 것이다. 자연의 훼손과 생명 파괴는 안중에도 없다. 집 앞에서 대형 주상복합 빌딩이 올라가고 있다. 몇 ..

사진속일상 2005.05.17

조계사 연등

퇴근길에 조계사에 들러 연등을 구경하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빨강, 분홍, 초록, 노랑, 파랑의 무수한 연등들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조계사에서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기대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저 연등 하나 하나에 깃들어 있는 사람들의 기원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부처님이 왕궁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구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분이 도달한 구경각(究竟覺)의 경지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불교의 사상은 심오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특히 공(空)이라든가 무심(無心), 무소유(無所有)의 지향은 늘 내 가슴을 설레게한다. 비록 지금은 기복적인 경향이 커졌지만, 그러나 깨침에 이르려고 하는 불교의 기본 정신은..

사진속일상 2005.05.10

운동의 즐거움

작년과 달리 금년에는 운동을 자주 하고 있다. 업무에서 많은 부분 해방이 되어 올해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편이다. 주로 하는 운동은 테니스인데 동료들과 땀을 흘리며 공을 맞추다 보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린다. 통쾌하게 웃고, 고함을 지르는 유일한 시간이 이 때이다. 하루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운동을 하지 못해서 몸무게가 4 kg이나 불어났다. 그러나 3, 4월 두 달간 열심히 땀을 흘린 덕분인지 2 kg을 감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몸 컨디션이 아주 좋다. 몸은 정신에 비해 무척 단순하다는 것을 느낀다. 신경을 쓰고 다듬는 것만큼 그대로 반응한다. 비하여 정신세계는 아직 내적 법칙을 몰라서인지 난해하고 불가해하기만 하다. 원하는 대로 반응하지를 않는다. 햐얀 길..

사진속일상 2005.05.04

M51

- 허블망원경이 찍은 나선은하 M51 (사진출처; hubblesite.org) 오늘 신문에 일제히 허블망원경이 찍은 아름다운 은하 사진이 실렸다. 특히 경향신문에는 1면에 M51 은하의 대형 사진이 실렸다. 최근에 허블이 찍은 것인데, 지금껏 인간이 촬영한 최고 해상도의 M51 사진이라고 한다. M51은 지구에서 37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로 지름이 10만광년 정도이며, 1천억 개의 항성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은하와 크기나 모양이 비슷하며, 나선은하 중 아름답기로 이름난 은하이다. 이제 허블망원경은 15년 간의 활동을 끝내고 곧 기능이 상실될 예정이라고 한다. 지름 240cm의 렌즈를 달고 지구 궤도를 돌면서 그동안 70만 장의 선명한 사진을 찍어서 우주의 경이를 우리들에게 전해 주었다. ..

사진속일상 2005.04.27

황사가 찾아오다

전국에 황사주의보가 내려졌다. 올들어 우리나라에 찾아온 다섯 번째 황사라는데 주의보가 발령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황사는 아무래도 봄의 불청객이다. 몇 가지 유익한 점도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결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1시간 정도 시내에 나가 있었는데 눈이 따갑고 목도 칼칼하다. 테크노마트 9층에서 바라본 한강과 강남 지역이 온통 뿌연 먼지로 덮여 있다. 보통날 같으면 멀리 관악산까지도 보이는데 오늘은 강 건너에 있는 빌딩들만 겨우 보인다. 그리고 바람까지 세차서 절로 호흡이 가빠진다. 우리나라가 이런데 황사의 발원지인 중국의 사막지대는 과연 어떠할까? 중국 내륙 지방의 사막화가 점점 심화된다고 하는데 앞으로 그에 대한 대가를 점점 더 심하게 치러야 될 것 같다. 나에게는 저 바람과 먼지가 자연의경고..

사진속일상 2005.04.20

꽃길

선운사 주위의 산길은 가볍게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절집도 좋지만 나무와 계곡이 있는 이 산책로를 나는 사랑한다. 선운사에 갈 때는 절을 지나 선운산으로 난 이 길을 가 보기를 권하고 싶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선운산을 오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선운산 정상은 두 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이 산길에 지금 현호색이 한창이어서 꽃길을 이루고 있다. 길 가운데에도 꽃이 피어있어 발을 디디기가 조심스럽다. 산수유, 매화, 벚꽃 등 눈을 화려하게 하는 봄꽃의 향연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몰려 다지지만, 이렇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발밑에서도 작은 꽃들의 잔치가 한창이다. 현호색 외에도 댓잎현호색, 제비꽃, 양지꽃, 산자고, 자주괴불주머니, 개불알풀, 개별꽃, 냉이꽃, 꽃다지 등이 눈에..

사진속일상 2005.04.10

고향집

고향집에 자주 들러야 하건만 그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은 늘 무언가에 빚 진 것처럼 무겁기만 하다. 자식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다른 데에 아무리 신경 쓴들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이번에 내려가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사는 게 지옥 같다.”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내가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악화된 상황이 몇 년째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지만 어떨 때는 야속하기도 하다.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밖과 일에만 매달리는 어머니가 충분히 이해된다. 한식을 맞아 허물어진 산소를 손보다. 밭에다 만든 산소라서 땅이 단단하지 못해 비만 오면 비탈이 무너진다. 석축을 쌓아야 ..

사진속일상 2005.04.06

기다려지는 봄

봄기운을 느껴보려고 한강에 나가다. 남쪽의 꽃소식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그러나 이곳 강변의 싸늘한 바람은 몸을 움츠리게 한다. 봄은 마음으로 먼저 찾아와서 애를 태우지만 정작 본인은 느릿느릿 올라오시려는가 보다. 일요일 오후건만 한강 둔치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드문드문하다. 뚝섬유원지의 오리 보트들도 아직 겨울처럼 한데 묶여있다. 곧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저기 오리 가족들도 사람들의 명랑한 웃음을 싣고 한강을 헤엄칠 것이다. 차가운 강변에 서니 봄이 더욱 기다려진다. 그러나 봄의 선발대는 이미 상륙해 있을 것이다. 대기 중에는 선전포고를 앞둔 듯 벌써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하다.

사진속일상 2005.03.20

산길 걷기

산에 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산길을 걷는 것이 가장 좋다. 번잡하고 소란스럽던 마음이 산에 드는 순간 고요히 가라앉는다. 이리저리 방황하며 상처받고 토라진 마음도 산에 들면 어느 순간 넉넉하고 너그러워진다. 서울의 산은 휴일이면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아무리 명산이라지만 사람들이 너무 몰리면 시장통과 다르지 않다. 솔바람소리, 새소리, 작은 짐승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산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는 없다. 이쪽으로 이사를 오니 집 부근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작은 산이 하나 있다. 몇 번의 답사 끝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조용한 오솔길을 하나 발견했다. 어느 산이든 주등산로를 벗어나 샛길로 들면 이런 비밀스런 오솔길이 있기 마련이다. 거기는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아니고 ..

사진속일상 2005.03.14

망치질하는 사람

이 사람은 키가 22m, 몸무게는50t이 되는 거인이다.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하루 종일 내리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 작품은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설치 조형물인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이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대문 쪽으로가다 보면 곧 만나게 된다. 작품이 워낙 커서 아무리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잠시 멈춰서 바라보게 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모양과 규칙적인 동작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처음 이 사람을 보았을 때는 과연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좀 헷갈렸다. 육체 노동의 소중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것 같은데, 다르게 생각하니 쓸쓸한 노동의 종말을 대변해 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수많은 화이트칼라들이 다니는 도심의 한복판에 높..

사진속일상 2005.03.09

남도여행

아이들이 자라는데 따라 여행 패턴도 변하는 것 같다. 어릴 때는 아이들 중심으로 여행지가 결정되고 주로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이 되지만, 그러나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대개 끝이 나버린다. 이젠 부모를 따라다니지 않으려고 하거니와 부모 쪽에서도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다. 학원에 가야하고 공부를 해야 된다는데 그걸 이길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막내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이제 부부만의 오붓한 여행이 시작된다. 이때쯤 되면 인생의 한 고비가 지나갔음을 저절로 느끼게 되는 나이가 되는 것이다. 바쁜 세상살이에서 아내와 떠나는 여행이라야 1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다. 그러나 바쁜 세상살이란 어쩌면 핑계일지 모른다. 여행을 준비하고 떠나는 순간이 되어서야 왜 이런 행복한 시간을 자꾸만 뒤로 ..

사진속일상 2005.02.27

경복궁 돌담길

길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더 아름다운 길이 있다. 광화문에서 영추문(迎秋門)을 지나 청와대까지 이어지는 경복궁의 서편 돌담길은 내가 사랑하는 길이면서 출퇴근로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직장까지 이 길을 따라 걸어 다닌다. 키 높은 돌담과 아름드리 버즘나무가 도열한 이 길은 청와대 앞이라 경비가 삼엄해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호젓해서 좋다. 대개의 경우 사진처럼 길이 텅 비어 있다. 덕수궁 돌담길이 아기자기하고 여성적이라면, 경복궁 돌담길은 시원시원하게 뻗어있다. 이 길에 들면 시선이 단순해지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고달팠던 하루의 일상도 이 길에 서면 스르르 자취를 감추고 내면의 존재감이 다시 살아난다. 나에게는 사색과 성찰의 고마운 길이다. 이 길은 걷는 것이 즐거운 일임을 가르쳐 준다. 어떤 날은..

사진속일상 2005.02.21

아차산에 오르다

설을 고향에서 보내고 온 뒤로 하루를 푹 쉬었건만 몸은 천근같이 무겁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여간 힘든 노릇이 아니다. 예전과 달리 이젠 고향에 내려가도 부모님이나 친척 분들 대개가 연로하시고 병마에 시달리시기 때문에 마음마저 편치 않다. 자격지심인지 몰라도 명절이라고 내려가건만 자식 도리 못하는 걸 확인하는 절차 같아서 회한만 더해서 돌아오곤 한다. 오늘은 더 피곤해하는 아내를 억지로 앞세우고 아차산에 오르다. 아차산은 서울의 동쪽 끝에 있는 산으로 집에서 20분이면 걸어 도착할 수 있다. 해발 300m 정도로 높지 않은 산이기 때문에 가볍게 등산하기에 좋다. 처음에는 어떻게 올라갈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조금 걸으니 몸이 풀리고 발에 힘이 생긴다. 날씨가 풀린 토요일 오후라 등산로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진속일상 2005.02.12

소래 폐염전

외롭고 쓸쓸할 때는 쓸쓸한 풍경과 만나러 가자. 슬픔은 슬픔으로 위로받고, 쓸쓸함은 쓸쓸함으로 인하여 위안을 얻는다. 서해의 소래 포구 폐염전 - 한때는 하얀 소금의 산을 이루며 번성을 누리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갈대만 무성한 황폐한 들판이 되었다. 폐염전이야말로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가장 스산하고 쓸쓸한 풍경이다. 어디 그런 것이 소래 포구만이랴? 우리의 인생살이에서도 한 번의 영화가 지나면 쇠락의 쓸쓸함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다만 영광 뒤에 숨어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더 이상 소금을 생산하지 않는 바닥에는 풀들이 무성하다. 처음에 염전 바닥은 흙으로 된 토판(土板)이었다. 그 뒤에 항아리 등 옹기 깨진 것으로 바닥을 깔았고, 나중에는 검은 타일을 사용함으로써 소금 채취 작업..

사진속일상 2005.01.24

겨울나무

산꼭대기에서 눈꽃을 피우고 있는 겨울나무를 보았다. 기온은 영하 15도 가까이 떨어지고 바람도 거세 서 있기도 힘든 날씨였다. 나뭇가지에 핀 눈꽃도 바람에 쓸려 한쪽으로 피어있다. 동물은 굴속에 숨거나 겨울잠을 자며 이 계절을 견디지만, 나무는 자기 자리에서 한 발도 비켜서지 않은 채 혹한의 계절을 이겨낸다. 미리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고, 몸 안의 물기를 빼낸 뒤 겨울나무는 홀로 서 있다. 철저한 자기 부정과 비움을 통해 차가운 칼바람과 맞서는 것이다. 아마도 겨울나무는 바깥 냉기보다 더 차가운 얼음덩어리 하나 기르고 있을 것이다. 스키장에 가는 동료들을 따라나선 길이었다. 처음 가본 스키장은 예상 외로 규모가 컸다. 스키장 진입로 수 km에 걸쳐 숙박업소, 음식점, 장비 대여업소, 일반 상점들이 빽빽하..

사진속일상 2005.01.22

서해 낙조를 보다

강화에 가서낙조를 보다. 연일 춥던 날씨가 좀 풀리고 양지 바른 곳에서 쬐는 햇볕은 봄햇살처럼 부드러운 날, 친구와 강화도를 나들이를 가다. 갑곶돈대에서는 갯펄에서 졸고 있는 오리들도 보고, 400년이 되었다는 탱자나무도 보고, 그리고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 복고풍이 불었는지 길가 얼음판에는 썰매를 타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어른들도 덩달아 즐거워한다. 철사를 바닥에 깔고 창으로 찍어서 앞으로 가는 얼음썰매를 옛날에 우리는 '씨갯도'라고 불렀다. 그때는 스케이트를 타보근게 소원이었는데 이젠 인기 순위가 바뀌었다. 현대는 원시를 그리워하나 보다. 섬의 서쪽 해안가에는 '조단(照丹)'이라는 찻집이 있다. 저녁 무렵이면 손님이 많아지는 전망 좋은 찻집이다. 밖에서 보는 낙조도 아름답지..

사진속일상 2005.01.15

감기와 복숭아

그저께 안산에 가서 바깥 찬바람을 오래 쐬었더니 코감기가 찾아왔다. 쉼 없이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약간의 미열을 제외하고는 오직 코에만 이상이 나타났다. 특이한 감기다. 그러니 오히려 짜증이 더 난다. 이틀간 나 죽었소 하며 침대에서만 버티었다. 어제 오후에는 겨우 내내 기다리던 눈이 살짝 내렸다는데 그것도 모르고 어두운 방 안에서만 지냈다. 소식을 듣고 창문을 열어보니 눈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오늘은 저도 질렸는지 감기가 슬슬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다. 이때 마지막 아듀의 순서는 복숭아 통조림이다. 감기와 복숭아 통조림과의 연결은 그 연원이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나에게는 역사가 길다. 그것은 영양 보충제이면서 몸살의 특효약이다. 몸이 좋지 않으면 아내의 시장바구니에는 늘 복숭아 ..

사진속일상 2005.01.09

1단이 되다

휴게실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담배 연기 자욱한 속에서 바둑판 앞에 사람들이 늘 모여 있었다. 그러나 요사이는 개인별로 컴퓨터가 보급되고, 같이 모이기 보다는 각자 컴퓨터로 게임을 즐긴다. 그래서 휴게실에도 바둑판이 사라졌다. 바둑을 가끔씩 두는 편인데 아직 컴퓨터 바둑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대부분이 속기여서 생각할 여유가 없어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돌 놓는 소리, 사람들의 훈수하는 소리가 어우러진 바둑판 시절이 그리울 때가 많다. 컴퓨터 바둑에서 1단으로 올랐다. 처음에 2급으로 시작했는데 두 달만에 두 단계가 오른 셈이다. 실제 급수는5급 정도가 되는데 온라인 상에서는 급에 거품이 많이 끼여있는 것 같다. 한때 바둑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이젠 긴 시간 집중이되지 않는다. 수를 읽어내는 능력도..

사진속일상 2005.01.05

북한강의 아침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지는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12월 중순까지만 해도 너무 따스해서 걱정을 했건만, 연일 쉬지도 않고 이어지는 추위가 요놈들나 죽지 않았다는고함 소리처럼 매섭게 들린다. 아침에는 북한강변을 지나갔다. 수면 위로 수증기가 안개처럼 피어 오르고, 강변에 있는 나무에는수증기가 얼어붙어 하얀 얼음꽃을 만들었다. 자꾸만 옆으로 눈길이 가게 되는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자연은 아름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남쪽 아시아 지방에서는 해일로 인해 1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자연의 모습이다. 인간만을 위해 자연이 존재하지는않을 것이다. 또한 자연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헛된 욕망임도 알게 된다. 어디에선가 본 글이 생각난다. '인간은 자연에 굉장히..

사진속일상 2004.12.30

작은 예수

작은 시골 성당에서 성탄 미사를 드리다.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보며 '작은 예수'에 대해 잠시 묵상를 해 본다. 저 모습이 보여주는 것은 한없는 낮아짐이다. 구유 속의 아기 예수 모습은하느님 자신이 가난과 온유함을스스로 선택하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들에 대한 요구이기도 할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낮아지고 작아지라는 가르침으로 들린다. 그러나 가난은 부요함을 정복하고,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긴다. 낮아짐으로써 높아지고, 죽음으로써 생명을 얻는다는 역설의 진리를 아기 예수님은 보여주고 있다. 어느 단체에선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黨同伐異'(같은 사람끼리 무리지어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를 골랐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은 여전히 아우성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싹 트고 있다. 큰 것 보다는 ..

사진속일상 2004.12.25

어린이대공원 산책

주일 미사를 드리고 아내와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하다. 결혼 초 공원 가까이에 살 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놀러온 곳이다. 하나는 유모차에 태우고, 하나는 손을 잡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곳인데, 그때로부터 세월은 훌쩍 20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다 커서 각자 제 갈 길로 가고, 두 부부만이 옛날을 회상하며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제 무대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서 그만 또래의 아이들을 데리고 똑 같은 모습으로 웃고 있다. 긴 시간이 지난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 아이들로부터 해방된 자유가 좋지만, 허전함 또한 없지 않다. 그것은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을 골라 다녔지만, 이젠 둘이의 취향을 찾아 즐길 수 있는 것이 고마운 일이다. 사람들의 ..

사진속일상 2004.12.19

2004 겨울 세종로

퇴근길에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세종로를 따라 걷다. 세상은 불경기로 아우성인데 여기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가로수마다 전구로 장식되어 불꽃나무로 변했고, 마침 ‘루미나리에’(빛의 축제) 행사도 열려 눈을 어지럽게 한다. 사람들은 주광성 생물이라도 되는 양 밝은 빛 아래로 모여들어 즐기고 있다. 잠시일지라도 세상 시름 잊어버릴 만하다. 그러나 빛의 축제장 옆에서는 기아 어린이들을 위한 모금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건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는 못한다. 또 한 쪽에서는 보안법 폐지 촉구를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그 옆으로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 시끄럽고, 분주하고, 그리고 화려한 조명으로 번쩍이는 2004년 겨울, 서울의 모습이다.

사진속일상 2004.12.18

冬來不似冬

집 근처에 있는 둑길에 제비꽃이 피었다. 겨울에 개나리가 피는 것은 가끔씩 볼 수 있었지만, 이렇게 제비꽃이 피어난 것은 처음 보는 일이다. 서울 지방이 이런데 남쪽은 어떨까? 지구의 기후 변화에 대해 이젠 별로 놀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올 겨울은 지나칠 정도로 특이하다. 12월 중순이 지나도록 영하로 내려간 날이 이틀에 불과했다. 그것도 고작 영하 1, 2도에 지나기 않았다. 제대로 된 첫 눈 소식도 없이, 밤에도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며칠 전 인천에서는 17도까지 기온이 올라갔다. 기상 관측 이래 겨울 기온으로는 최고라고 한다. 봄에 피어야 할 꽃이 한겨울에 눈앞에 나타났다. 따스한 겨울을 다행으로 생각하기에는 지구가 말하는 징후가 심상치 않다. 제비꽃 외에 민들레, 개망초, 개나리도 보인다. ..

사진속일상 2004.12.17

커피 반 잔

속이 탈이 나서 일주일째 죽이나 싱거운 밥을 먹으며 지내고 있다. 좋아하는 술과 커피는 입에도 대지 못한다. 일년에 한 두 차례, 알코올과 커피가 과할 때는 꼭 이렇게 탈이 난다. 원래 위와 장이 부실해서 작은 찬 기운에도 설사가 나는데, 사실 술, 고기, 커피 같은 것이 내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다 이런 걸 과용하게 되면 속이 쓰리면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럴 때 상당 기간 기호품을 끊고 음식을 조심하면 다시 원 상태로 회복된다. 오늘은 옆 사람이 마시는 커피 향기를 견디지 못해 반 잔만 타서 마셔본다. 그리고 입안에 감도는 향기를 천천히 음미한다.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이다. 오늘따라 먹고 싶은 것도 많다. 튀김도 먹고 싶고, 크림빵도 먹고..

사진속일상 2004.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