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큰 걸음으로 한 발자국 성큼 다가왔다. 맑고 상쾌한 가을이 열렸다.
오후에는 아내와 같이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했다. 아내는 지난 한 달 동안 허리 통증으로 고생했다. 여러 군데 병원을 다녔지만 뚜렷한 원인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는데 몸 상태를 확인해 볼 겸 가까운 공원으로 나가 본 것이다. 다행히 허리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그간 집에서 쉬기만 한 탓으로 한 시간여의 걸음에도 쉽게 지쳤다.
두 주일 전에 갔을 때 대공원 정문 가까이 있는 연못에 부레옥잠이 환하게 피어 있었는데 다시 보러 찾아갔더니 벌써 꽃은 다 저버렸다. 공원 안은 좋은 날씨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왠지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도 한 때는 저런 시절이 있었지, 꽃밭에서 뛰노는 가족들을 지켜보노라니 겉 미소와는 다르게 속마음은 왠지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러나 옆의 과수나무에 매달린 탐스런 과실은 지난봄의 새싹과 꽃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새싹은 새싹대로, 꽃은 꽃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아름답다. 수많은 생명체 중 시간을 인식할 줄 아는 인간만이 지나간 날들을 아쉬워할 줄 안다. 그것은 분별의 지혜를 가진 업보이리라.
나는 당나귀가 좋다. 대공원 동물원 우리에는 두 마리의 당나귀가 있다. 여기에 들어올 때 마다 꼭 당나귀는 만나고 간다. 당나귀는 무엇을 얻어먹고 싶은지 늘 관람객 가까이 오기 때문에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손으로 얼굴을 만져볼 수도 한다. 나의 당나귀에 대한 이미지는 프란시스 잠의 ‘당나귀가 나는 좋아’라는 시 때문일 것이다. ‘당나귀는 언제나 생각에 젖어 있고 그 두 눈은 보드라운 비로드 빛이다....’ 당나귀는 크지 않고 아담해서 좋다. 말이 남성적이라면 당나귀는 여성적이다. 순한 눈동자, 큰 귀는 그의 착하고 조심스런 성격을 나타낸다. 그러나 당나귀가 얌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조금만 관찰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야생의 성질을 쉽게 버리지 않는 그런 고집스러움이 있어서 당나귀는 매력이 있다.
나중에 시골 생활을 할 때 당나귀와 같이 살아보고 싶다. 백석의 시에서처럼 눈 내리는 마가리 산골의 밤,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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