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덕수궁을 산책하다

샌. 2006. 10. 13. 12:16


비 없는 가을이 계속되고 있다. 사무실 벽을 덮고 있는 담쟁이덩굴이 제대로 붉은 단풍을 뽐내지도 못하고 말라죽어가고 있다. 대기도 건조해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모래 먼지가 운동장을 휩쓸고 지나간다.


그런데 어제는 모처럼 맑고 파란 가을 하늘이 나타났다. 창 밖 풍경이 문득 야외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밝은 햇살을 받으며 들길을 걷고 싶었다.

 

조금 일찍 자리를 떠서 덕수궁을 찾았다. 문 하나만 들어서면 도심의 번잡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가을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한가로이 경내를 거닐고 있었다. 사람들 표정에서는 가는 계절에 대한 아쉬움이 배어 있으면서도 뭔가 원숙하고 내성적인 분위기가 고궁과 잘 어울렸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느릿느릿 산책을 하기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덕수궁을 찾았지만 묘하게도 사람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나도 알지 못한다.


광화문로를 지날 때 청계천 입구에 세워진 ‘스프링(spring)'이라는 조형물을 보았다. 높이가 20m에 달하는 다슬기 모양의 대형 작품인데 설치 전부터 논란이 많았다. 외국의 유명 예술가에게 맡겨서 34억 원을 들여 제작한 것이라는데 돈도 돈이지만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제작자 말로는 한복의 옷고름과 도자기의 이미지를 빌려 왔다는데 색깔이나 모양 어디에서도 한국적인 느낌을 찾기는 어려웠다. 뾰족탑은 너무 날카로웠고 원색의 색깔은 지나치게 두드러져 보였다. 작자와 서울시 측에서는 아마 부조화의 미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인생도 늘 삐걱거리기만 하는 부조화의 길이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제 멋대로 생긴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덜컹거림을 불평만 하느냐 아니면 즐기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 내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뜨겁고 서걱거리는 상념들 또한 나 자신의 하나이다. 가지고 버리고 할 것 없이 이 가을에는 그 모든 것을 껴안고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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