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볼록유리로 보이는 가을

샌. 2006. 11. 3. 09:15

어릴 때 만화경을 보며 무척 신기해 하던 기억이 난다.

작은 유리 기둥 안에서 생기는 온갖 색깔의 변화에 홀린 것이다. 그러나 그 현란한 색깔의 요술이 단지 색종이 몇 조각이 부리는 장난이라는 것을 알고는 실망을 했다.

천변만화의 현상들 배후에 숨어있는 원리는 만화경처럼 단순하리라고 본다. 과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앞으로 발견될 대원리는 만화경 속의 색종이 몇 조각으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복잡해 보이는 세상의 실상도 알고 나면 이렇듯 단순하고 무미건조할 것이다. 거기에 인간은 여러가지 의미를 붙이고 채색을 한다. 인간이 진실을 외면하는 이유는 맞닥뜨릴 진실이 너무 단순해서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을이 익어가는 풍경이 볼록유리를 통해 흐릿하게 보인다.

하나하나의 유리가 각기 하나씩의 풍경을 안고 있다. 인간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차피 수많은 겹안경을 쓴 채보이는 내면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각자가 쓴 안경의 도수 또한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진실을 찾기 위해 안경을 벗으려 하고, 어떤 사람은 만화경의 세계를 즐기기 위해 기꺼이 도수 높은 안경 쓰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그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두터운 안경을 쓴 사람이든 얇은 안경을 쓴 사람이든, 모두들 자기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식대로 세상을 보고 세상을 만든다. 여기에 누구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다는 것을 판별하려는 것은 헛된 일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가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서로가 연결된 또 다른 큰 세계를 만든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다시 새 달을 맞는다.

무언지 모를 갈증 때문에 이 가을은 더 쓸쓸하고 스산하다. 저 유리 너머의 세상을 맨눈으로 보고 싶어 나는 자꾸 밖으로만 고개를 돌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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