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는 남산길을 산책했다. 10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역에서 내려 한옥마을을 지나 올라가면 산책로에 들어갈 수 있다.
어제는 날씨는 청명했지만 바람이 차고 세게 불었다. 늦가을의 정취를 즐기기에 좋은 때이지만 날씨 탓인지 산책하는 사람들은 드문드문 눈에 띌 뿐이었다.
올해 단풍은 어디에서나 선명하지 못하다. 남산 단풍도 마찬가지였다. 산책길에는 낙엽이 이러 저리 바람에 날리고 있다. 북쪽 산책길은 그늘이 져서 더욱 을씨년스럽다.
한참을 걸어가면 산 위로 오르는 계단길이 나타난다. 옛날부터 이 길은 남산으로 오르는 주통로였다. 벌써 40년 가까이 되었다. 처음 서울에 와서 남산 구경을 따라 나섰던 길도 이 길이었다. 그때는 계단이 아닌 흙길이었고, 벚꽃 만발한 길가에는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파는 행상인들로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8부 능선쯤에 전망대를 하나 새로 마련해 놓았다.
여기서는 나무의 방해를 받지 않고 서울을 내려다볼 수 있다. 북쪽 방향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그저께 내린 비 탓인지 대기가 맑고 깨끗해 시야가 끝없이 열려 있다. 인간의 도시를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막막해진다. 저 거침없는 팽창이 무섭기 때문인지, 아니면 저 빌딩과 집들 중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는 자괴감 탓인지, 하여튼 거대 도시의 규모와 화려함 때문에 더욱 마음은 서늘해진다. 이런 데서도 내 몫을 염려하다니 인간의 탐욕이 무섭게 느껴졌다.
찍은 사진을 두 장 이어 붙여봤더니 별로 자연스럽지는 못하다.
N-Tower 밑에서는 서울의 남쪽 방향을 훤히 볼 수 있다. 깔끔하게 단장된 조망대에서 사람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저 아래 세상을 응시하고 있을까? 가을이어선지 그들의 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렇게 느끼는 것은 실은 내 마음 탓이라는 것을 금방 깨닫는다.
싸늘한 가을바람에 문득 최근에 읽었던 장자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옛날의 지인(至人)은 얽매임 없는 경지에 노닐며, 자기 일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도의 식량을 밭에서 얻고 남을 도와 줄 여유도 없는 조그만 토지로 만족했다. 얽매임 없는 경지에 노니는지라 인위가 없고, 간소한 생활에 만족한지라 살기가 쉬웠으며, 남을 도와주는 일이 없는지라 자기 것을 끌어내는 번거로움도 없었다. 옛날에는 이것을 ’진실에 입각한 놀이‘라고 했다.”
‘간소한 생활에 만족한지라 살기가 쉬웠으며’ - 맞다, 나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 어렵게 살고 있다. 쉽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움켜쥐고 있는 버려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삶이 의무나 짐이 아니라 놀이가 되는 경지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말과 생각은 쉽게 하지만 버린다는 것은 사실 얼마나 어려운가? 그것은 욕심을 절제하는 척하며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는 타협적 태도는 아니다.
버린다는 것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존재들 - 아내를, 자식을, 재물을, 그리고 내가 내심 가장 소중히 하는 것을 거리낌 없이 포기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생각은 괜히 버린다는 흉내만 내면서 얻는 얄팍한 자기 위안에 불과할 뿐인가? 그것은 다른 형태의 이기심이고 집착일 수도 있지 않은가? 소시민으로 적당히 사는 것이 도리어 마음 편하게 사는 길이 아니겠는가?
버스를 타러 내려오는 발걸음이 자꾸 무거워졌다. 옆으로는 젊은 중국인 관광객 한 무리가 맑은 웃음을 날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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