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관악산에 오르다

샌. 2006. 11. 19. 09:03



아내와 관악산에 올랐다. 서울대 정문에서 시작해 4 야영장을 거쳐 연주암을 지나 사당동으로 내려오는 산길을 걸었다. 아내와 함께 이렇게 정상까지 올라가는 온전한 등산을 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전에 관악산은 서울 근교 산 중에서 가장 자주 찾던 산이었다. 아마 관악산에 난 등산로의 대부분은 걸어보았을 것이다. 토요일에는 퇴근길에 관악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관악산을 오르게 된 것이 거의 6년 만이다. 등산로 초입은전의 모습과 달라져낯이 설었다. 갈림길에서는 방향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길이 나타나고 예전 그대로의 포근함이 느껴졌다. 전에 비해 나무들이 크고 많아진 것 같고,주말 오후여서인지 등산객들이 줄을 이어 지나갔다.

 

늦가을의 날씨는 마침 아주 좋았다. 땀이 적당히 나지만 서늘한 공기가 체온을 식혀주는 탓으로 쉽게 지치지는 않았다. 지난 여름에 허리를 다친 아내는 그동안 바깥 나들이를 못한 탓에 마지막 깔딱고개에서 무척 힘들어했다.

 

정상을 지나 내려가는 길, 우리 나이쯤 되는 곳, 길에서 떨어진 아늑한 곳에 자리를 펴고 준비해 온 따스한 도시락을 먹었다.

 

앞에 온 수만 번의 가을, 그리고 뒤에 올수만 번의 가을, 그 중의 한 가을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그러나 얼마 뒤면 두 사람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또 다른 사람들이 여기를 지나며 똑 같이 가을을 얘기할 것이다.

 

온갖 사연들을 가슴에 품고 산에게 묻지만 산은만년의 세월 그 모습 그대로 묵묵부답이다. 사람들은 산에게 의탁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것이다. 그럴 때 산은 거울이 된다.

 



산길을 내려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오늘 따라 유난히 쓸쓸하게 보였다.

 

어느 때나 그랬겠지만 세상은 보통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도록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의 변덕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넘어진다. 힘 없는 사람들의 무력한 발버둥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 모든 것은 욕(慾)과 욕(慾)의 충돌에서 생긴다.

 

예전에 들었던 천국과 지옥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가 생각 난다. 천국이나 지옥의 식탁이 다른 점은 없다. 차려진 음식도 그릇도 모든 것이 똑 같다. 다만 수저의 길이가 굉장히 길 뿐이다. 천국 사람들은 긴 수저로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먹여주며 배 부르게 지내는데, 지옥 사람들은 서로 자기 입에 넣으려고만 하니까 하나도 먹지 못하고 굶어 죽더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가정과 가정 사이에, 국가와 국가 사이에 서로 자기들 것만 챙기고 자기 욕심만 부리려다 모두가 허기지고 허덕이고 있다. 물질적 풍요 뒤에 숨은 정신적 빈곤과이기심이 그렇다는 말이다.

 

산을 내려와 저 말 없는 큰 산을 묵묵히 바라본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자문해 보는 마음 한 곁으로 옛 선사의 말씀이 스치며 지나간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처럼 바람 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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