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672

따스한 겨울

겨울이 왔건만 봄날처럼 따스하다. 뜰에 있는 목련나무가 보드라운 솜털을 내며 꽃망울을 내밀려고 한다. 12월 초순이 되도록 아직 서울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도 전에 없던 현상이라고 한다. 올 겨울은 큰 추위가 없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겨울의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다. 날씨가 따스하면 겨울나기에는 좋겠지만 지구 기온 상승이 가져다 줄 재앙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 보도에는 북극의 빙하가 눈에 띄게 줄어든 사진이 실렸다. 그리고 중동과 중남미 지방에서는 메뚜기와 나비가 이상 번식을 해서 떼로 몰려다니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바다 속에도 열대성 어류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호주 해안가에서는 고래들이 땅 위로 올라와 때죽음을 했는데 이것도 인간의 해저 ..

사진속일상 2004.12.03

창덕궁의 늦단풍

창덕궁에 갔다가 뜻밖에도 아직 남아있는 단풍을 만났다. 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후원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진홍빛 단풍들이 올해의 마지막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창덕궁은 경복궁에 비해서 조용하고 여성적인 느낌이 든다. 특히 궁궐의 정원으로 조성된 후원은 뒷산의 자연 환경을 그대로 이용해서 만들어 그 안에 들면 엄마 품처럼 포근하다. 단풍나무길을 걸어가는 한 가족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후원에 있는 부용정(芙蓉亭)이다. 임금이 산책하다가 쉬는 장소였다는데 이곳에서 낚시를 하기고 했다 한다. 정자 모양이아담하고 예쁘다. 자연 속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으려 한 선조들의 지혜가 느껴진다. 산기슭의 낙엽이 오색 색종이를 뿌려놓은듯 다채롭다. 인정전(仁政殿). 편액에 쓰여있는대로 정말로 인정(仁政)이 실천되..

사진속일상 2004.11.27

아름다운 서울

어제, 첫눈이 흩뿌리던 날, 한국일보사 13층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먹구름이 몰려와서 눈발을 날리다가 어느새 해가 나기도 하는 변덕스런 날씨였다. 예전에는 이런 날을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서울시의 전망이 내 눈에는 다른 어디보다 제일 좋다. 경복궁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뒤쪽에는 북악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가 유일하게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악산과 인왕산 아래, 효자동을 중심으로 하는 이곳 주거지역은오래된 한옥들과 빌라들이 어우러져 있다. 건물들은 대부분 5층 이하의 낮은 키여서 나무들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상적인 녹색도시의 모습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남산에 오른..

사진속일상 2004.11.27

역마복(驛馬福)이 터진 해

2004년은 우리 가정에 역마복(驛馬福)이 터진 해이다. 역마살(驛馬煞)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전에서 찾아보니 '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된 액운'으로 나와 있는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을 액운으로보다는 복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역마복(驛馬福)이라는 말로 써 보았다. 우선 집이 이사를 했고, 나는 직장을 옮겼다. 이사를 하고 직장을 옮기는 것이 가끔씩 있는 일이지만 묘하게도 금년에 두 가지가 동시에 겹쳤다. 변화는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는 일이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힘든 만큼 얻는 것도 많다. 이사나 전근이 내 뜻대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것도 역마복(驛馬福)이라고 부를 수 ..

사진속일상 2004.11.23

IXY50을 사다

남대문에 나가서 캐논 디지털 카메라 'IXY50'을 샀다. 막내의 카메라가 고장나서 그동안 쓰던 IXUS400을 물려주고 비슷한 기능이지만 훨씬 가벼워지고 얇아진 것으로 바꾼 것이다. 이왕 바꾸는 것 욕심을 내어서 SLR 디카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휴대성을 우선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 카메라 편력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우선 디카는 COOLPIX2500, IXUS400을 거쳐서 지금이 세 번째이다. 모두가 소형 자동카메라인데 사실 고급기종에 대한 욕심은 지금은 없다. 그 전의 필카 때는 카메라나 렌즈에 대해 실력 이상으로무리를 했다. 지금 집에 있는 필름 카메라만도 4개나 된다. 렌즈는 광각 20mm 부터 망원 300mm 까지 7종류이다. 구름을 찍는다고, 별을 찍는다고, 그리고 나중에..

사진속일상 2004.11.20

합격 기원제

수능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수험생이나 가족들의 마음이 무척 초조하고 불안할 것이다. 그 과정을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로 생각하며 견디고 있지만 사실 대학을 향한 경쟁은 전쟁터와 비슷하다. 고3을 경험해 본 당사자나 학부모는 현 입시 제도나 교육 현실에 대하여 비판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뚜렷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까지나 이런 경쟁 체제 속에 우리 아이들을 팽개쳐 둘 것인지 이때가 되면 더 안타까워진다. 오늘 학교에서는 수능 고득점을 위한 기원제가 열렸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행사까지 열리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지켜보는 내내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기원문이 낭독되고, 절을 하고, 돼지머리에는 봉투가 쌓인다. '제신(諸神)들이시여, 우리 아이들이 모르..

사진속일상 2004.11.12

두물머리

터에 가는 길에 두물머리에 잠시 들리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양서면 양수리에 해당되는 곳이다. 그동안 차로 지나다니기만 했지 내려서 강변에 나가보기는 처음이다. 사람이없는 곳을 찾아서 강가에 서니 갈대를 비롯한 수생식물들이 강을 가득 덮고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강에도, 산에도 가을이 잔뜩 익었다. 바로 머리 위를 지나가는 고가도로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음만 아니라면 몇 시간이고 이 고즈넉한 풍경과 같이 있고 싶어진다. 그래도 짧은 시간이지만 도시인의 탁한 눈이 맑게 씻어짐을 느끼며 자리를 뜬다. 인근에 세미원(洗美苑)이라는 수련 전시장이 있다. 이미 철 지난 연못에는 한 생을 마친 연잎이 마른 몸을 물 위에뉘고 편히 쉬고 있다. 오후의 가을 햇빛이 눈부시다. 실..

사진속일상 2004.11.07

작은 전시회

저녁부터 가을비가 내리다. 그림을 그리는 동료의 작품 전시회에 가다. 찻집의 한쪽 벽면을 이용한 작은 전시회이다. 전시된 작품은 다섯 점인데 모두 생소한 기법으로 제작되어 있다. 액자의 유리 표면에도 물감을 칠해서 효과를 낸 것이 인상적이다. 소재는 전원 풍경과 현대 도시의 구조물들이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것은 간소하고 작은 전시회인 것이다. 보통 생각하는 미술 전시회라면 입구에 화환이 늘어서 있고, 부담을 주는 큰 방명록도 펼쳐져 있고, 그리고 관람객의 기를 죽이는 넓은 홀과 환한 조명이 연상된다. 그런 곳에서 나 같은 사람은 괜히 의기소침해진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는 작은 찻집의 벽면을 이용했다. 작품 밑에서 차를 마시며 부담 없이 얘기를 나눈다.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른다. 작가가 아닌 보통 사..

사진속일상 2004.11.05

교정의 가을

가을비가 지나가니 가을 색이 더 깊어졌다. 가을 교정은 빨강, 노랑, 초록의 빛깔로 가득하다. 나무는 물론 땅도 사람 얼굴도 온통 단풍물이 들었다. 가을의 아름다움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11월 초순의 짧은 한 때, 스쳐가듯 우리 마음을 흔들며 가을의 정령이 지나가고 있다. 느티나무 아래에 떨어진 낙엽이 곱고도 포근하다. 복자기나무에도 빨간 물이 들었다. 건물 벽에 매달린 담쟁이 덩굴도 대부분 떨어지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밑에서 올려다 본 층층나무 잎도 은은하게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사진속일상 2004.11.03

가을 나들이

동료들과 경기도 가평에 있는 매봉을 찾았다. 7명이서 지프와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갔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고 외진 산이어서선지 험한 비포장길을 한참을 가야 했다. 결국 승용차는 끝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K와 나는 자원해서 뒤에 처지게 되었다. 그래서 정상에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산 아랫쪽에서 수락폭포라는 비경을 만나서 늦가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었다. 산의 나무들은 벌써 몸의 물을 비우면서 겨울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땅으로 돌아온 나뭇잎들이 발에 밟히는 소리가 유난히 사각거렸다. 특히 계곡의 물 위에 떨어진 잎은 단풍의 선명한 색깔을 그대로 유지한 채 평화롭고 아름답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화려한 단풍철은 지나서마치 잔치가 끝난 자리처럼 아쉽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대신에 늦가을의 산은 삶의..

사진속일상 2004.10.31

사라지는 것은 아름답다

사무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도 가을이 한껏 익고 있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맞으러 멀리 찾아 나서지 않아도 좋다. 단풍이 든 한 그루의 나무, 그 아래에 쌓이는 낙엽, 그리고 청명한 저 하늘과 바람이 온 가을을 다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생명은 사라질 수 있기에 더욱 아름답다. 벚꽃이 1년 내내 피어 있다면 누가 그 아름다움을 찬탄하겠는가? 사라진다는 것은 새 생명에 대한 약속이다. 죽음이 없으면 태어남도 없다. 잎사귀가 떨어진 가지에는 이미 새 눈이 움트고 있다. 그래서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답다. 우리의 사라져 가는 청춘에, 또 지나가는 한 해에 너무 아쉬워 말자. 꽃도 시간도 사랑도 사람도 결국엔 모두 사라져 가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뒤를 따라오는 새..

사진속일상 2004.10.27

귀로

단풍철이어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다. 그래도 도착지를 알리는 저 불빛이 정겹다. 집에는 포근한 가족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따스하다. 가을은 돌아옴의 계절이다. 낙엽이 어머니 대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듯, 길 떠났던 사람들이 지친 몸을 돌려 본향을 찾아 회귀하는 계절이다. 세파에 지치고 상채기가 난 몸을 고향은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위로해 준다. 옛집을 찾아 돌아오는 탕자를 아버지는 마을 어귀까지 마중나와 반기면서 잔치를 베푼다. 이 계절에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떠나왔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 사람들은 아마도 저 세상의 관문에서 따스한 빛의 존재를 만날 것 같다. 그 기쁨과 환희의 마음이 아름다운 저녁 노을이 되어 지상에 남은 우리들에게 비쳐..

사진속일상 2004.10.25

테니스 대회

직장 테니스 대회가 열리다. 20명이 A, B조로 나누어 복식 시합을 하다. 그런데 파트너를 잘 만나서 B조에서 우승을 하다. 20대때 테니스를 시작했으니 경력은 오래되었으나 중간에 공백이 많아 지금도 시작할 때 실력 그대로다. 더구나 금년 들어서는 라켓을 잡는 것이 두 번째이다. 운동을 즐길 여유가 그만큼 없었다. 그러나 맑은 가을 하늘 아래서 동료들과 같이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다. 웃음 소리, 고함 소리에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버린다. 끝나고 저녁 식사자리에서 소주 맛이 너무 좋아 여러 잔을 마시다. 몸은 뻐근하지만 고였던 찌꺼기가 빠져나간 듯 몸도 정신도 개운하다. 바쁘더라도 운동을 즐길 여유를 되찾아야겠다.

사진속일상 2004.10.14

이사를 하다

2년 만에 다시 이사를 하다. 도시에 내 집이 없는 사람은 현대판 유목민이다. 어떨 때는 집주인과의 관계에서 서러운 일을 겪기도 한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악착같이 내 집을 가질려고 애쓰는구나 하고 긍정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변화가 두려워진다. 정든 장소,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되는 것이 부담이고 스트레스다. 변화란 젊은 때는 희망이지만 나이가 들면 두려움이 된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한 장소에 안주하는 대신 변화는 신선한 자극을 주고 삶의 의미를 깨우쳐 준다. 이사를 자주 할수록 생활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살림이 간소해진다. 너무나 많은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음을 이사를 통해서 깨닫게 된다. 사람들을 깊이..

사진속일상 2004.10.07

2004 추석

넷이서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다. 하나는 송편 빚는시범을 보여주는 어머님의 손이고, 하나는 딸 아이의 손이고, 나머지는 조카 둘의 손이다. 우리 집에서 송편 만들기는아이들 몫이다. 내 어린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추석 송편 만들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그런데 모양이 이쁘게 안 나온다고 몇 개 만들다가는 쫓겨나곤 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면서 동시에 농작물을 말리는 계절이다. 마당에도 마루에도 방에도 정성스레 수확한 곡식들이 널려있다. 저 고추는 한낮의 햇살을 쬐다가 밤이 되면 군불을 땐 방으로 들어가 다시 몸을 말린다. 곡식을 가꾸는 것도 힘들지만 뒷 손질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걸 안다면 작은 곡식 한 알도 헤프게못 할 것 같다. 가을 하늘에 눈이 시리다. 집 마당에서 무심결에 쳐다본 하늘이 너무 파래서 ..

사진속일상 2004.09.29

날씨가 너무 좋아요

계속 흐리고 비 내리는 날씨 뒤에 찾아온 맑은 하늘이 더욱 밝고 환하다. 이런 날은 일과는 좀 제쳐두고라도 자리를 뜨고 싶어지는 법이다. 고개는 자꾸만 하늘바라기를 한다. 그래서 옆 사무실의 K를 불러내 같이 뒷산에 오른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길 주위에서 만나게 되는 풀과 나무 이름도 배운다. 조금 올라가다가 소나무 그늘 아래 너른 바위에 앉는다. 나무 사이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고 서늘한 가을 공기가 상큼하다. 지상은 복잡하지만 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도 없다. 우리는 '자족(自足)'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다. 산 속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한 시간을 경험한다. 나무와 풀과 푸른 하늘이 그리고 잠시의 일상에서의 해방이 날 이렇게 자유롭게 해준다. 내 가슴은 ..

사진속일상 2004.09.23

꿈의 달

'꿈의 달'을 보러 일산 호수공원에 갔다. 작품에도 호기심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꿈'과 '달'이라는 말이 주는 울림이 컸기 때문이다. 그 말들에서는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슬픈 느낌이 들고 그곳에 가서 다른 사람의 꿈들이나마 확인하고픈 마음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의 규모는 거대하지만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지름 15m의 대형 풍선에 세계 140여개 국가의 어린이들이 '나의 꿈'이라는 주제로 그린 작은 그림 13만장을 붙여서 호수에 띄워 놓았다. 밤이 되면 밖에서 여러 색깔의 조명을 비추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구촌 어린이의 수많은 꿈이 모여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강익중 님의 작품이다. 실제 달처럼 하늘에 띄워놓는다면 더욱 멋있을 것 같은데 지구..

사진속일상 2004.09.15

태풍이 지나간 하늘

태풍 '송다'가 지나간 하늘이 유난히 푸르다. 커튼을 열듯 태풍이 지나가면서 칙칙한 하늘의 장막을 걷어 갔다. 가려져 있던 하늘의 본래 면목이 눈 앞에 펼쳐지고 사람들의 시선은 자꾸 하늘을 바란다. 작은 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람들 마음도 가을 하늘을 닮아 파랗게 물들어가는 것 같다. 저녁이 되니 서쪽 하늘에 걸린 노을이 또한 곱다. 오늘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부자가 되다.

사진속일상 2004.09.08

인왕산에 오르다

어제는 가을 하늘이 높고 파란게 너무 좋았다. 동료 셋이서 오늘 오후에 짬을 내어 뒷산을 오르기로 약속했는데 오늘은 구름이 온 하늘을 덮었다. 청명한 하늘 구경은 못했지만 대신에 산길을 걷기에는 적당한 날씨였다. 일터에서 약 10여분을 걸어가면 인왕산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인왕산은 그동안 쭉 폐쇄되어 있다가 문민정부 들어서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별로 높지는 않지만 사방으로 서울을조망하는데는 가장 좋은 산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산의 등산로를 따라 철조망과 초소가 있고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지만 그걸 무시한다면 가벼운 산책으로 나서기에는 알맞은 산이다. 다만 시멘트로 만든 계단이 많아서 걷기에는 불편하다. 개인적으로는 산에 오른 것이 참 오랜만이다. 작년 가을에 북한산을 찾은 후로는 처음이니 꼭 1년..

사진속일상 2004.09.03

막내가 어학연수를 떠나다

막내가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있는데 직접 중국에서 어학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를 1년 휴학하고 출국한 것이다. 지난 겨울에 배낭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준비도 하고 수속도 다 마쳤다. 그래도 장기간의 해외 생활에 대한 부담이나 두려움은 어찌할 수 없는지 평상시와는 다른 낌새가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주에는 몸살도 진하게 앓았다. 나는 집안에서 아이들과 대화가 부족하다. 부족한 것이 아니라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은 많건만 서로 마음을 나누는 대화는 부녀지간이건만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해 아내와 아이들은 아주 가까이 잘 지낸다. 모녀지간이 아니라 마치 친구 사이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질투..

사진속일상 2004.09.01

놀이터의 아이들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명랑하다. 늘 텅 비어있기만 한 아파트 단지의 작은 놀이터인데 오늘은 왠일인지 아이들로 북적댄다. 기구에 매달려 깔깔거리는 아이도 있고, 이러저리 쫒고 쫒기며 달음질치는 아이들도 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깔깔거리는 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들려오는 그 소리가 병아리들의 지저귐 같다. 오랜만에 만나는 풍경이 정겨워서 절로 미소가 인다. 그러나 당연한 풍경이 이젠귀하게 느껴지는 세태가 된 것 같아 씁쓰름하기도 하다. 방과 후의 학교 운동장에도 뛰어노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쯤 되면 한낮인데도 운동장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예전 우리 때만해도 자리를 잡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요즘은 시분을 다투는 학생들 스케줄이 어른들보다 더 바쁘다. ..

사진속일상 2004.08.29

둘이서 한 마음

태풍 '메기'가 데리고 온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고 비도 간간이 내리는 날이다. 마음이 울적해서 아내와 같이 올림픽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나타나고 그렇게 계속 허덕거리며 언덕길을 올라가야 하는게 인생살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개마루에서 잠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휴식하는 기쁨도 있지만 그런 즐거움은 보통 오래 가지는 않는다. 산책로 옆 잔디밭에 미루나무(?)가 서 있다. 멀리서 보면 한 나무로 보이는데 가까이 가보면 두 그루가 사이좋게 자라면서 마치 한 나무와 같은 수형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나 스스로 '부부목(夫婦木)'이라고 이름붙여 놓은 나무이다. 키를 같이 맞추면서 그리고 서로 양보하는 건지 묘하게도 가운데로는 가지도 뻗지 않고 있다. 설마 인공적으로 잘라내고 ..

사진속일상 2004.08.19

목계 나루

목계 나루터에 다녀왔다. 신경림 시인의 시 중에서도 '목계장터'는 절창의 노래이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예전에 이 시를 만나고 자주 읊조리고 했는데 그래서 목계 나루터는 언젠가 가 보리라 마음에 담고 있었는데 이제야 ..

사진속일상 2004.08.13

서울의 매미

오랜만에 서울에 돌아오니 매미 소리가 제일 반긴다. 오늘 아침에는 아파트의 방충망에도 한 마리가 찾아왔다. 왠일인지 소리는 내지 않고 가만히 붙어있다. 손으로 건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다. 나무 대신에 철망에 매달린 모습이 기괴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서울의 매미 소리는 무척 극성스럽다. 무리가함께 울어댈 때는 마치 한꺼번에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를 듣는 것처럼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특히 도로변이 심해서 자동차 소음과 경쟁이나 하려는지 너무 시끄러워서 이건 또 하나의 소음 공해라는 생각도 든다. 옛날 느티나무 아래서 땀을 식힐 때 '매앰- 매앰-'하고 울며 여름의 정취를 더하던 그 소리는 이미 아니다. 세상이 각박해지니 번성하는 매미 종류도, 매미 소리도 변해가는가 보다. 서울의 매미 소리는 차가운 금속성의..

사진속일상 2004.08.04

강가에서

헉헉거리며 산에 오르고, 온천탕에서 몸 담그고, 폭포도 맞고, 한 숨 늘어지게 자기도 하고, 그러다가 저녁 무렵에는 강가에 앉다. 남한강변 - 가파른 절벽에 나무 두 그루가 사이좋게 자라고 있는 벼랑 끝 바위 - 조망이 무척 좋은 곳이다. 천년 만년 변함 없을 것 같은 바위 덩어리를 핥으며 강물은 쉼없이 흘러간다. 쉬이 흘러가는가 싶다가도 소용돌이를 치고, 맴돌이를 하다가 곤두박질치기도 하고, 한 걸음에 내달리다가 바위에 부딪쳐 비명을 지르기도 하면서,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없이 흘러간다. 대해에 다다르기 위해서 그들은수도 없이 넘어지고 엎어지며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천년 전, 백년 전, 앞서 살았던 선인들도 이 자리에 앉아 넋 놓아 저 강물을 바라본 사람 있었으리라. 그들은 삶의 ..

사진속일상 2004.07.11

비 개인 인왕산

며칠간 비가 계속 내리더니 오늘에야 그친다. 사무실에서 바라보이는 비 개인 인왕산이 아직 물기를 잔뜩 머금은 모습으로 앉아있다. 인왕산(仁王山)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산으로 풍수적으로는 우백호에 해당되는 화강암질의 크지 않은 산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인왕산 호랑이라는 말도 아마도 이런 풍수적 의미가 담겨있지 않은가 싶다. 요즈음은 자주 떠오르는 단어가 무상(無常)이다. 아무리 심한 장대비라도 한 나절을 넘길 수 없듯 성하면 쇠하고, 쇠했다가는 성하는 것이 인간사 뿐만 아니라 만물의 원리가 아닌가 싶다. 전에는 세상을 본질과 현상으로 나누고, 변하지 않는 본질과 쉼없이 운동하고 변하는 현상으로 구분하여 생각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런 구분조차 모호해진다. 과연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는..

사진속일상 2004.06.21

저녁 한강에서

오랜만에 저녁 한강에 나가 보다. 집이 한강변에 있어 몇 발자국만 걸으면 한강에 나갈 수 있지만 무엇에 그리 바쁘게 쫓기며 살았는지 저녁 산책을 나간 것이 몇 달 만이다. 넓은 강을 따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낮의 열기를 식혀준다. 강가에 걸터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나이 지긋한 부부들, 젊은 연인들부터 다이어트를 하는지 강변 길을 따라 열심히 걷는 사람들로 저녁 한강은 활기가 가득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하늘을 난다. 그리고 탁 트인 시야가 마음까지 넓게 열어준다. 낮 동안 답답하고 폭폭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는 위무를 받는다. 강을 바라보며 아내와 나란히 앉는다. 이럴 때는 아내가 친구같다. 어려울 때 옆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기만 하다. 참된 친구란 그런 관계가 아닐까 한다. 점점 어두워지며 건너..

사진속일상 2004.06.12

묵주

터에 찾아온 J 수녀님에게서 묵주를 선물 받았다. 돌아가신 언니 수녀님이 사용하셨던 묵주인데, 수녀님이 보관하고 계시다가 기도를 많이 하라면서 내 손에 건네 주셨다. 아마 최근에 침체된 내 상태를 전해 들으시고 자극을 주시려는 것 같다. 묵주는 황색의 묵주알에 나무 십자가가 달려있는 작고 소박한 것이다. 손때가 묻고 닳아있는 것이 오랜 기간 수녀님의 기도와 함께 했었음을 알아볼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T 수녀님으로부터도 사용하던 묵주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묵주는 전부 나무로 된 것이었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했는지 십자가의 귀퉁이는 닳아 없어지고 나무 색깔도 까맣게 변해 있었다. 기도가 생활화된 수녀님들이지만 이 정도까지 되자면 보통 세월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분신처럼 묵주가..

사진속일상 2004.06.07

길상사의 오후

날씨가 더워졌지만 활짝 개인 푸른 하늘이 자꾸 밖을 바라보게 만든다. 오후에는 동료와 짬을 내어 길상사와 간송미술관에 들러 보다. 불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길상사는 요정을 하던 보살님이 기증을 해서 조성된 사찰이라고 알고 있고, 그리고 도심에 있지만 불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해서 한번 가보고 싶었던 절이었다. 어느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종교의 세계에서는 내부적이든 아니면 외부로 부터든 새로운 바람이 늘 불어 들어와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전통의 고수나 옳음에 대한 확신은 진리 자체의 싱싱한 생명력을 잃게 될 위험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길상사는 새로운 자극을 주는 사찰이라고 알고 있는데, 짧은 시간 겉모습만 둘러보았지만 평소에 느꼈던 이..

사진속일상 2004.06.01